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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웅 Jan 28. 2024

familiar unfamiliarity

정체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서울에 대한 요즘 내 인상은 familiar unfamiliarity, 너무나 익숙한 곳에서 낯섦을 마주한다.


찬란한 추억뿐만 아니라 모든 흑역사까지 담긴, 그래서 애틋하면서도 징글징글한 이곳이지만 출장 오면 의외로 편안한 불편을 준다. 더이상 거주지가 아닌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평생을 살아도 이방인이라는 정체성을 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19살 끄트머리에 만난 서울은 동경이었고 29살 크트머리의 서울은 자괴감과 실패의 그림자였고 39살 크트머리의 서울은 지치고 늙어 있었다.


얼마 전 동향 사람이 내게 “닌 이제 대구 낯설제? 대구 사람이라고 하겠나? 그냥 서울 사람이지. 아니, 제주 사람인가?!”라고 물었다.


물론 서울과 달리 대구에서의 난 네비가 없으면 운전할 수도 없고 다니던 학교 말고는 추억이 없다. 어머니가 얼마 전 이사한 집은 당연히 나의 어린 시절이 없다. 자주 가던 오락실은 주인이 바뀌었고 비디오 가게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늘 한결 같아왔다. “대구 사람.”


부심 같은 거들먹 거리는 의미가 아니라 정체성, 그리고 생존을 담은 대답이다. 세상에 두 발 붙이고 살 수 있게 해주는, 내가 나일 수 있는 그런 생존말이다. 오래 살면 익숙해질 뿐이고, 살기 좋으면 행복할 뿐. 그렇다고 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익숙한 낯섦은 여기에서 온다.

이는 세계를 확장해 인종이나 국적에 빗대도 비슷하다. 그렇다고 단순히 생물학적 데이터에 대한 것은 아니다. 나를 두 발 단단히 버티게 해주는 정체성에 기반한 인식의 문제.


지리멸렬한 취준생 시절 회기역 입구에서 난민 후원 사인을 하던, 쥐뿔 돈 한 푼 못버는 놈이 부리는 월 5만원짜리 호기는 그들을 위한 응원이 아닌 스스로에 대한 구제였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서울 난민 알렐루야.


이제 제주 이주민으로 세 번째 해를 시작했다. 제법 안착을 해가는 느낌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제주 사람이 될 수 없다. 여생을 다 보낸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뭐가 좀 다르다. 지난 2년동안의 이방인의 삶과 그 전의 20년동안의 이방인의 삶이 다르게 느껴진다. 이 차이를 밝혀내면 새로운 메시지를 담은 볼캡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이주민, 귀향민, 외노자, 난민 등 네이티브가 아닌 낯선 곳에서 열심히 사는 우리 모두를 응원하는 그런 모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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