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말하는 초보 영업인의 20개월 갈무리
1년 8개월 동안의 길지 않은 회사 생활을 마무리했다.
퇴사했다, 나왔다, 그만뒀다 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그 동사가 줄 수 있는 아주 약간의 부정적인 느낌이라도 덧씌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600여 일의 웃고 울었던 나날들을 한순간의 굿-바이 인사로 압축하기가 쉽지는 않다.
스타트업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새로이 시작했던 일은 '가구 영업'이다.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을 만나서 상담하고 계약을 하는 일. 많게는 하루에 대여섯 건의 상담을 하며 10만원을 하기도 1000만원을 하기도 하는 일.
매장의 면적이 수백 평이다 보니 매일 일만 보가 넘게 걷는 일이 허다했고, 집에 와서 다리를 뻗고 누우면 내 다리가 아닌 것 같은 감각에 머리가 닿자마자 잠드는 일상이었다.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울리는 전화에 일관되고 정제된 '친절'한 목소리로 응답해야 하는 것은 어느새 습관처럼 익숙해져서 전화가 오지 않으면 도리어 어색해지는 나날들이었다.
나는 왜 영업을 했을까
영업을 하며 무엇을 배웠을까
왜 그만두기로 결심했을까
사는 것이, 모든 것이 영업이라 제대로 부딪혀 보고 싶었다. 연구 개발을 하는 것도, 밤을 새워 마케팅 전략을 기획하는 것도, 멋들어지게 차려 입고 발표를 하는 것도 결국은 고객에게 '영업'하기 위해서라면 비약일까. 하지만 직전까지 일했던 조그마한 회사에서 단 한 푼의 매출을 내기 위해 하루에 열댓 시간을 쏟아부었던 그 나날들을 기억하면 내게는 틀린 말도 아니다.
한 해를 여는 짐짓 거대한 목표가 분기, 월, 주, 하루로 빠르게 쪼개지며 구체화되는 과정은 영업을 떠나서 나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럴듯한 목표를 세우기는 좋아했지만 정작 하루의 일로 쪼개는 과정은 뒷전이었던 내게, 오늘 작성하는 '200만원짜리 계약서와 3건의 견적서'가 한 달 나의 1억, 팀의 8억, 매장의 20억을 만들어주는 과정은 가끔은 신성하게까지 느껴졌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인지라,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매 순간 만나는 고객에게 '최선'을 다 해야 했다. 물론 매장까지 품을 내어 방문한 사람이라 하면 기본적으로 구매하기 위해 온 사람은 맞다. 하지만 당신이 지불할 금액보다 이 제품의 가치가 훨씬 크다는 확신을 영업사원이 주지 못한다면 그 계약은 결코 성사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영업은 마음이 8할이었다.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선 100%가 아닌 120, 130%의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매장에 배치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신입사원이었던 내게 상담을 받고 계약한 후, 5만 원을 손에 쥐어주셨던 고객님이 떠오른다. "매니저님, 상담받는데 신경을 많이 써주신 게 티가 나요. 감사합니다. 꼭 커피 한 잔 하세요." 그때의 내가 가진 것은 오로지 진심뿐이었다.
마음이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차치하고, 이 마음으로는 고객을 감동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만두어야 할 때가 지금이라 생각했다.
힘들다, 빡세다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행복했다.
언닌 언제나 당당하고 긍정적인 모습이 참 매력적이야. 주변 사람들을 늘 웃게 하는 모습이 본받을 점이라 생각해왔어.
어딜 가든 무얼 하든 잘 해낼 내 친구, 늘 봄날 불어오는 바람처럼 설레고 따뜻한 2021년 되길 바랄게. 안녕. 잘 가! 또 보자!
선배님이 말씀한 것처럼 좋은 날 커피 한 잔 들고 후배 얘기 가만히 들어줄 수 있는 선배가 될게요. 1년 동안 저와 함께 해주시고 잊지 못할 추억 선물해주셔서 감사해요.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겨울이 다 지나고, 불어오는 바람이 더 이상 싸늘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은 큰 선물이다. 더 이상 내게 '소속'은 없지만, 끝이 나야 또 다른 시작이 있다는 것을 믿는 만큼 '퇴사' 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