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으로 이사를 했다. 결혼 후 다섯 번째 이사다. 어쩌다 보니 서울과 지방을 오고 가는 장거리 이사만 네 번을 했다. 작년 이사는 서울로 ‘컴백’하는 이사였다. 이사를 하는 데엔 저마다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고, 나 또한 그랬다. 말 못 할 복잡한 사연이야 어떻든 이사란 내가 가진 소유물의 전부를 옮겨 살아감의 익숙함을 등져야 하기에 못내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편에선 새로이 둥지를 틀어야 하는 낯선 곳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음이 한껏 설레기도 한다. 그 설렘 때문이었을까. 나는 이사가 좋다.
11년 전, 지방의 어느 한 반촌 도시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29살의 나는, 주변에 작은 편의점 하나 없던 낯선 그곳에서 살아가기 위해 많은 것들에 욕심을 부리며 살았다. 아주 작은 사소한 물건에서부터 1년에 한두 번 쓸까 말까 한 물건에 이르기까지 전부 소유해야만 했던 그때의 나. 그것이 신혼의 단꿈이었는지, 서울살이의 그리움이었는지, 시골살이의 답답함이었는지... 이젠 그 이유가 좀처럼 생각나진 않지만, 어쨌거나 연고도 없는 그곳에서의 삶을 핑계로 많은 것을 채우며 살았던 것만은 또렷이 기억한다. 그렇게 꼬박 2년을 살았다.
첫 번째 이삿날. 2년 차 신혼부부의 살림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많은 물건들이 집안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숱한 추억과, 절대적인 필요와, 즐거움의 원천과, 끝없는 욕심으로 차곡차곡 모아진 것들이었으리라. 그런데 이런. 집채만 한 이사 트럭에 이삿짐을 더는 실을 수가 없다. 내가 쌓은 소유의 결과가 낳은 참담함이었다. 거실 중앙에 덩그러니 쌓인 채 갈 곳 잃은 이삿짐을 쳐다보고 있자니, 지금껏 내가 살아온 생활방식이 꽤나 후회스러웠다. 그 순간 머릿속에 ‘나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렇게 나는 라이프스타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변화의 시작은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불현듯이 찾아올 수 있다.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이사를 네 번이나 더했고, 거듭되는 이사에 살림살이가 꽤나 간소해졌다. 특별히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거나 비움을 실천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집의 크기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이사를 자주 했을 뿐이다. 돌이켜보니 소유에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데엔 이사만 한 것도 없지 싶다. 집안에 켜켜이 쌓인 물건을 통째로 꺼내 모두 흐트러트린 후, 새로운 공간에 잘 들어맞도록 질서를 찾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에, 나와 물건 간에 이어진 관계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공간에 질서를 찾는 방법은 이사 상황에 따라 매번 바뀌기 마련이다. 작년에 치른 마지막 이사에서는 무엇보다 (1) 10년 차 살림임에도 낯설게 느껴지는 물건들은 내 것이 아니라 여겼다. (2) 있으면 좋고 없으면 없는 대로인 물건들은 그냥 없는 것이 낫다고 여겼다. (3) 손님용이라며 가지고 있던 물건들은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사용할 일이 없을 거라고 여겼다. (4) 예뻐서 샀지만 그것과 어울리는 것이 없어 또 다른 무언가를 사야겠다 마음먹게 만드는 물건이라면 그냥 없애는 편이 현명하다고 여겼다. (5) 한정된 수납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만큼만 물건들을 남겨두겠다 다짐했다. (6) 올려두고, 담아두고, 꽂아둘 수 있는 작은 가구들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고 여겼다. (7) 집의 크기에 비해 크고 묵직한 가구들은 하루라도 빨리 없애는 편이 좋다고 여겼다. 작년 이사 때 세운 내 나름의 질서 찾기 기준이, 다른 이들이 보았을 때 맞든 틀리든 그것은 상관없다. 이전에 살던 집보다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해야 했던 나로서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일 수밖에 없었기에.
살다 보면 인간관계에서조차 정리가 필요한 법인데, 물건과의 관계 정리는 오죽할까. ‘꼭’ 필요한 것, ‘죽어도’ 있어야 하는 것, ‘자주’ 사용하는 것, ‘진짜’ 좋아하는 것, ‘도대체’ 어디에 써야 할지 모르겠는 것, ‘쓸데없이’ 사둔 것, ‘그냥’ 넣어둔 것, ‘언젠가’ 쓸모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것 등등. 그동안 물건에 붙여둔 관계 수식어만도 여럿. 이 중 여러 개를 없애보았지만, 결코 삶이 불편하거나 힘들게 변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오히려 비워낸 만큼 채울 수 있는 심적/공간적 여유가 생겼으니 이 또한 즐거운 일이다.
경험컨대 내게 있어 물건과의 관계 정리는 무조건적인 비움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내겐 비우는 일만큼이나 채우는 일 또한 중요하다. 세상엔 아름답고 매력적인 물건들이 넘쳐나고, 그중 원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 또한 행복의 원동력이 될 테다. 따라서 넘치는 관계는 줄이고, 부족한 관계를 다시 쌓는 것이 진정한 물건과의 관계 정리라고 단언할 수 있겠다.
나는 운이 좋게도(?) 남들에 비해 이사를 자주 함으로써 내 소유물과, 라이프스타일을 돌아볼 기회가 많았다. 나는 결코 미니멀리스트는 아니지만, 주기적인 물건과의 관계 정리를 통해 간소하고 단정하게 사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또 애써 ‘비움’을 실천하지 않아도 내가 사는 모습이 충분히 바뀔 수 있음을 스스로 터득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쯤에서 이전보다 조금 더 근사한 삶을 위한 물건과의 관계 정리를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사를 앞두고 있다면 급진적 관계 정리를 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기회다. 지금 당장 이사를 하지 않더라도 고민할 필요는 없다. 마음만 있다면 천천히 물건과의 관계 정리를 할 수도 있다. 그것은 그저 나의 선택의 문제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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