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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페코 Dec 25. 2019

semi 미니멀라이프를 사는 중

미니멀라이프가 시대의 화두다. '비움', '정리', '적게 소유' 등 관련 키워드도 다양하다. '불필요한 물건이나 일 등을 줄이고,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적은 물건으로 살아가는 단순한 생활방식(출처: '미니멀라이프', 네이버 지식백과사전)'을 미니멀라이프라 한다면, 나는 시대가 정의하는 미니멀라이프를 살고 있지는 않음이 분명하다. 나는 지금도 불필요한 물건을 많이 소유하고 있고, 필요 유무와 관계없이 꽤나 많은 물건을 사들이며, 시각적 충동에 의해 물건을 고르기 일쑤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삶에 꼭 필요한 적은 물건만을 소유하고 살아갈 자신이 없다. 나는 소유의 기쁨을 누리며 살길 원한다.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내가 사는 삶의 모습이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 같아 조금 부담스럽다. 어떤 이들은 나를 '미니멀리스트'라 불러주기까지 한다. (이런. 큰일이다) 오랫동안 디자인을 공부한 나는 '미니멀리스트'라는 단어에서 느끼는 무게감이 남다르다. 단순 미학을 통해 예술의 본질을 표현하려 했던 여러 예술분야의 실천가들이 진정한 20세기를 지탱한 '미니멀리스트'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저드'같은 현대미술 작가에서부터, 마천루로 상징되는 초고층 건물의 효시를 알린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 이제는 일반인들에게도 매우 친숙해진 디자이너 '디터 람스'까지. 이런 거장들이야말로 진정한 미니멀리스트라 명명할 수 있다. 때문에 심플한 살림을 산다고 일개 주부인 나를 미니멀리스트라 칭하는 것은 (아휴;) 어불성설이다.


그나저나 도대체 미니멀라이프가 무엇일까? 소유물건을 비워내고, 색을 쏙 빼낸 인테리어의 선호? 그건 분명 아닐 것이다. 미니멀라이프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필요했다. 몇 권의 책을 통해 미니멀라이프란 담백한 삶을 살기 위한 개인의 노력 과정이자 대가임을, 특히 '비움'은 삶의 군더더기를 빼기 위한 가장 강력한 개인의 실천의지 중 하나임을 알게 됐다. 결국 진정한 미니멀라이프를 살기 위해서는 삶을 변화시키려는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이 철저히 뒷받침되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특별히 비움을 실천하지도 않고 삶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싶은 확고한 의지가 없다. 다만 군더더기를 쏙~뺀 담백한 삶을 살기 위한 여러 생각을 실천하며 산다. 소유의 절대적 양이 아닌 '소유의 상대적 질'을 따지고, 비움이라는 실천의지가 아닌 '정리정돈이라는 생활습관'으로 매일의 삶을 다듬으려 노력 중이다. 이것은 반쪽짜리 미니멀라이프라도 되는 걸까? 혹시 semi 미니멀라이프? 계속 곱씹어볼수록 이름이 마음에 든다. 이제 당당히 얘기해야겠다. 나는 'semi 미니멀라이프'를 살고 있다고...


저는 semi 미니멀라이프를 삽니다.


우리는 자신의 장점을 찾기 위해 발버둥 치다가 이내 찾지 못하면 포기해버리기 일쑤다. 그리고는 평생 '나는 잘하는 게 별로 없어'라고 말하며 내 삶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진짜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장점', 즉 잘하는 것을 가지고 태어나긴 했을까. 더욱이 전문성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 그저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태도를 찾는데 장점이 필요할까 싶다. 하지만 '장점'이 아닌 '강점'은 좀 다른 얘기일 듯하다 사소하더라도 남들과 비교해 아주 조금이라도 뛰어난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 내게 꼭 맞는 라이프스타일을 찾는 지름길이 되지 않을까? '남들과 비교해' 누구는 요리를 잘하고, 누구는 글을 잘 쓰고, 누구는 사진을 잘 찍고, 누구는 물건을 싸게 잘 사고, 누구는 정리를 잘하고, 누구는 옷 코디를 잘하고...등등. 우리는 각자 저마다의 '강점'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이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노력의 결실이든 아니든지 간에 말이다.


나는 오랜 디자인 연구생활로 '물건(특히 일상생활에 관계한 제품)'에 대한 누적 정보가 많음과 더불어, 과거 능력 있던(? 있었다고 치자) 리서처답게 서치 능력이 좋은 편이다. 또한 전공의 영향으로 오래전부터 군더더기 없는 심플한 스타일과 화이트/그레이 같은 무채색을 주로 선호하지만 좋아하는 컬러에 대한 확실한 취향도 가지고 있다. 이에 더해 유난히 깨끗한 걸 좋아하는 '엄마 딸'로, 유별나게 정리정돈을 잘하는 '아빠 딸'로 태어나는 바람에 청소와 정리정돈을 남들보다 조금 잘하는 편에 속한다. 더 나아가 결혼살이 십 년간 의도치 않게 다섯 번의 이사를 하느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소유물건을 줄여나가는 현실적 노하우를 습득했다. 이것이 나만의 미니멀라이프, 'semi 미니멀라이프' 실천에 유리한 나만의 강점 이리라.


나는 지금, 오랜 디자인적 취향과 불가항력적 엄마 아빠로부터의 DNA, 효율적 이사를 위한 반강제적 비움 등이 점철된 나만의 'semi 미니멀라이프'를 살고 있다. 이것은 내 자랑이 아닌,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하는 것을 찾아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이자 미래를 향한 내 의지를 반영한다. 나는 비움이 아닌 채움으로 일관된 삶일지라도 내가 좋아하는 취향을 마음껏 드러내며 흐트러짐 없이 반들반들한 살림을 살기를 원한다. 때문에 유행은 따르되 꼭 취향을 담은 물건을 선택하고, 지출 가능한 소비 범위 안에서만큼은 물건의 가격보다 물건의 가치에 선택의 기준을 둔다. 더 나아가 평생 살아가는 동안 좋아하는 디자이너의 작품 몇 개 정도는 살림살이로 들일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의 여유를 품고 산다. 또한 저마다의 물건에 어울리는 자리를 찾기 위해 살림살이의 위치를 매일 조금씩 옮기며, 살림의 모습은 주부인 나를 드러내는 또 다른 내 얼굴이란 생각에 매일 말끔한 모습을 유지하려 애쓴다. 이것이 내가 사는 'semi 미니멀라이프'다.


우리의 삶은 늘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살림 또한 마찬가지일 테다. 아무리 좋아 보이는 것들도 내게 맞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때문에 번번이 시행착오를 거듭할지라도 나와 내 가족에게 어울리는 라이프스타일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지금 모습의 살림을 살기까지 10년이란 시간을 들였다. 아마 시간이 또 흐르면 또 다른 모습의 살림을 살고 있을 테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늘 담백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었고, 지금도 노력 중이고, 앞으로 계속 노력할 거라는 거다. 때문에 다른 이들의 눈에 내가 사는 살림이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는 실천가의 모습이 아닌 '단정한 살림'을 사는 평범한 주부로 순간이 기억되길 바란다.


-end-




@mrs.pe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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