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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스타킹 Feb 08. 2022

별이 빛나는 밤에

런던 라이프



10  , 알마티 살던 시절 동네에 가끔 들르던 갤러리가 있었다.  때마다 대롱이 기다란 브론즈 주전자에  커피를 끓여 손잡이가 달린 작은 잔에 내어 주었다. 테이블에는 항상 터키쉬 딜라이트가 놓여 있어 겨우  맛을 달랬다.


아르메니아 출신 갤러리 주인은 자국 출신의 무명작가들을 데려다 전시도 하고, 그림도 팔고, 방문객에게 그림 수업도 소개했다. 그렇게 갤러리 뒤편 허름한 아파트 1 스튜디오에서 블라디미르에게 데생과 정물화 배우게 되었다.


그림이 팔리지 않으면 고정 수입이 없던 그는 그림 수업으로 생활비를 충당했다. 나는 그가 계속 작품 활동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외국인 친구  명을  모아 함께 그림을 그리며 그를 도왔다.


러시아어를 모르는 친구들과 영어를 모르는 그 사이에서 나는 어쭙잖은 실력으로 통역을 했다. 우리는 의욕은 있으나 재능은 없는 학생들이었다. 블라디미르는 언제나 웃고 친절했지만 항상 우리가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다는 표정으로 안타까워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외국인과의 수업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에게 모작을 하자고 했다. 우리는 무언가 더 배우고 싶었지만 늘지 않아 흥미를 잃는 것보다 각자 좋아하는 그림을 골라 모작하는 것에 동의했다.


누구는 모딜리아니, 누구는 칸딘스키, 누구는 피카소의 작품을, 나는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선택했다.


주로 우리가 엉성한 스케치를  놓으면 그는 모딜리아니로 칸딘스키로, 피카소로, 고흐로 빙의되어 군더더기 없는   개로 라인을 잡아 주었다. 우리가 붓으로 망쳐 놓은 자리는 터치  번으로 ‘마스터 피스’처럼 만들어 놓았다. 그의 손과  끝이 캔버스에 닿으면 무슨 마술이 벌어지는  같았다. 그렇게 나는 ‘별이 빛나는   같은 그림 하나를 얻었다.


블라디미르의 그림이 팔리기 시작하고 커미션 작품이 많아지면서 그는 점점 바빠졌다. 그리고 우리의 그림 수업은 끝이 났다. 아쉽긴 했지만 그가 자신의 작품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된 것이 기뻤다.


몇 년 후, 그의 작품이 런던 소더비 옥션에서 예상가를 넘어 거래되었다는 이야기며 월드 투어 전시로 알마티에 없다거나 유럽 어딘가 레지던시 작가가 되어 작품 활동만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흐 자화상 특별전’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문득 블라디미르와 알마티에 두고 온 시간들, 그리고 나의 (진품 같은) 첫 작품 ‘별이 빛나는 밤’ 기억에 마음이 좀 사무친다.


<블라디미르와 그의 가족 딸과 부인 엘레나 (현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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