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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스타킹 Sep 09. 2022

헤어질 결심

아들과 나


큰 아이는 단 하루도 엄마를 떨어지지 못하는 껌딱지였다. 워킹맘이었던 내가 지방 출장을 가면 아이는 밤새 울었다. 한 번은 자정이 넘어 남편이 아이와 나의 엄마를 모시고 출장지로 찾아왔다. 남편은 다음날 출근을 위해 고속도로를 달려 다시 서울로 올라갔고 아이는 비로소 내 옆에서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출장의 남은 며칠 동안 나의 엄마는 내 아이와 낯선 도시에 머물렀고 나는 일정을 마치고 밤이 되면 호텔로 돌아와 아이를 끌어 앉고 잠이 들었다.


출장이 아니라면 나는 단 하루도 아이와 떨어진 적이 없었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큰 아이가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생각했다. 이제는 아이가 내 품에서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고. 겨우 3주간의 여름 캠프였지만 옷과 양말, 속옷을 한 세트로 만들어 하루치씩 포장해 넣고 모든 소지품에 이름을 새겨주고, 비상약을 챙기고, 당부할 주의 사항을 A4용지 가득 적어 주었다. 그리고 짧은 이별을 위한 긴 편지도 썼다.


그렇게 떠난 아이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매일 밤 전화를 했고 나는 내 결정을 후회했다. 데리러 가야 하나 잠시 망설였지만 그냥 두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아이가 돌아올 날 만을 기다렸다. 다행히 캠프 퇴소식에서 만난 아이는 밝은 표정이었고 좋은 선택이었다고 말해 주었다. 아이는 더 이상 엄마가 없다고 잠들지 못하는 일은 없게 되었다. 영국으로 오고 아이는 더욱 독립적이 되었고 자주 짧게 떠났다.


우리는 이제 오랜 헤어짐 앞에 놓였다. 떠나기 며칠 전부터 아이는 집 안 구석구석을 살폈다. 비가 많이 오면 물이 새는 곳이 있는지 둘러보았고, 나뭇잎이 쌓인 마당 배수구를 치웠다. 사춘기로 제멋대로인 동생을 앉혀 놓고 핸드폰 사용 시간과 지나친 게임 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노트 정리 법, 방 치우는 법, 화장실 청소하는 법, 어느 순간에 엄마를 도와야 하고 막내 동생을 돌봐야 하는지도 가르쳤다.


하루는 외출하고 돌아와 보니 구급상자를 정리했다며 오래된 약은 버리고 유통기한이 다가온 순서대로 줄 세워 놓은 구급약 서랍장을 열어 보여주며 유통기한을 꼭 지키라고 당부했다. 떠날 준비를 하는 아이가 대견했지만 그 부지런함이 야속하기도 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옷을 하루치씩 묶어 담지도, 소지품에 이름도 새겨 넣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챙겨야 할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것처럼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준비가 끝나면 너무 빨리 떠나갈까 봐.


하지만 집안을 살피는 아이의 뒷모습은 ‘이제 나는 떠나려고 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바랐던 순간이다. 아이가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 넓은 세상으로 비상하는 그날을.


그 시간이 이렇게 빨리 올지 몰랐다. 아이는 고등학교 학사 일정이 끝나는 6월 말부터 바로 떠날 준비를 했다. 대학교 학기가 시작하는 8월 말까지는 함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설렘에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다며 7월 초에 떠나 버렸다. 헤어질 모든 준비를 하고서 말이다.


인터뷰집 작업이 끝나자마자 마자 미국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큰 아이를 한 번은 더 보고 싶었다. 떠날 때 챙겨주지 못한 아쉬운 마음을 이런저런 물건에 담아 왔다. 한국에 머물다 기숙사 입소 전날 미국에 도착한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단 하루였다.


보고만 오려고 했는데 자꾸 이것저것을 챙기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남편은 그만하라고 했고 아이는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다. 그 말들이 서운했다.


아이를 두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이제 걱정도 안 할 것이고 그리워도 않겠다고 했다. 옆에 있던 막내가 엄마 그건 너무 한 거 아니냐고 했다. 무심히 핸드폰만 하던 둘째가 ‘엄마는 헤어질 결심을 하는 거야. 안 그러면 너무 슬퍼서…’라고 말했다.


기숙사 생활 첫날 밤, 아이는 더 이상 울먹이며 전화를 하지 않았다. 짧은 만남 그리고 긴 헤어짐 앞에서 나는 슬퍼하지 않을 결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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