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일상
어제는 나쁜 꿈을 꾸었다. 새벽에 깨어 꿈을 되새기다 아침을 맞았다. 아이들 등교 준비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오트 카푸치노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산책을 나가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맑았던 하늘에 검은 구름이 비를 몰고 왔다. 피할 곳을 찾아 미술관으로 달려 들어갔다. '창문 안에 여인 (The Woman in The Window)' 전시가 열렸던 곳이다. 몇 번이나 이곳을 찾아 쉬어 가며 전시를 보았다.
기원전 고대 이집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가 규정한 여성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세인트 아비아의 '창살 안에 갇힌 여인', 렘브란트의 '창가의 소녀', 데이비드 호크니에 '창문 하나만 있는 성', 루이스 부르주아의 '나의 파란 하늘' 등. 창문이라는 프레임 안에 여성이 있었다. 창문 안에 갇히거나 격리 또는 보호받는 여성, 창문 밖을 동경하거나 갈망하는 여성. 그리고 창문이 안과 밖의 연결 통로가 되어 세상과 소통하는 여성. 작가의 시선과 창문 안의 여성의 시선을 오가며 작품마다 다르게 표현되어 있었다.
비가 그쳐 집으로 돌아오니 BBC 뉴스 속보에 퀸 앨리자베스의 건강 악화 소식과 함께 직계 후손들이 그녀가 머물고 있는 스코틀랜드 벨모렐성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흘려듣던 뉴스에 마음이 멈추었다. 오늘이 마지막이겠구나.
몇 년 전 그녀를 만난 적이 있다. 만났다기보다 짧게 스쳤다. 파스텔톤 하늘색 슈트에 보랏빛이 도는 꽃장식 모자를 쓰고 있었다. 숨소리가 들릴 만큼이나 가까운 거리였다. 한순간이었지만 그녀에게서 어떤 온기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 찰나를 사진에 담아 두었다.
저녁이 되었다. 여덟 살 생일을 맞은 아이를 축하하기 위해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식당에 갔다. 여느 때처럼 바쁘고 분주했다. 음식을 주문하고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서로 이야기했다. 갑자기 조금은 어수선했던 그곳이 숙연해졌다.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이는 마음이 텅 빈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축하 노래를 불렀다. 아이는 기쁘지만 슬프다고 했다.
“창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창문 밖 햇살 아래에서 보여지는 모든 일, 그 어느 것 보다 항상 그리고 더욱 특별하다. 그 어둡거나 빛나는 네모 창 안에서 우리는 삶을 살아가고, 꿈을 꾸기도 하고 고뇌하기도 한다.” 샤를 보들레르의 시 '창문들'의 한 구절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그 자리를 지켜왔던 그녀. 창문 밖으로 드러난 그녀의 삶과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찰문 안에서 감당해야 했던 또 다른 그녀 삶의 무게를 생각한다.
런던 브릿지가 무너졌다.
2022년 9월 8일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