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술래잡기를 하다가 깻잎 밭에 숨은 적이 있었다. 기껏해야 1미터 남짓한 깨밭에 숨었으니 내가 무척 어릴 때였던 것 같다. 그날은 추석 전날, 아니 전전날이었나, 보름달이 커다랗게 뜬 초저녁이었다. 집집마다 굴뚝에서는 명절을 준비하는 연기가 마치 안개처럼 온 동네를 휘감았다.
웅크리고 앉아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허연 연기 속으로 스며드는 깻잎 향이 그렇게도 좋을 수가 없었다. 구수함과 상큼함, 그리고 낮은 깨밭이 나를 감싸는 듯한 포근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깻잎줄기 사이를 두리번거리던 술래는 저 멀리서 나를 찾아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나가고 싶지 않았다.
사람의 기억은 시각이라는 매개를 통해 저장된다고, 미국에서 공부할 때 노교수가 말했다. 나는 속으로 교수에게 말했다. 아니에요 교수님, 코를 통해서인 것 같아요. 그건 교수님이 깨밭에 숨어보지 못해서 그런 거예요. 밥 짓는 내음과 깻잎향만으로 내 어린 시절이 통째로 떠오르는 걸 보면, 그게 맞는 것 같아요. 기억은 코를 통해서 저장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