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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작 Jan 19. 2024

17. 청량리 588

갓 대학에 들어간 해 청량리 버스 정거장. 까치담배를 사기 위해 구멍가게에 들렀다. 마침 기다렸다는 듯, 맞은편 골목에서 어슬렁거리던 아줌마가 다가온다. "총각, 놀다가". 나는 멈칫했다. 그때 난 순진한 대학 신입생이었다. "저, 학생인데요". 그러자 아줌마, 한마디 툭 내뱉더니 골목으로 사라진다. "아 학생은 좆도 없나.."

    

지금이야 상상도 할 수 없지만 당시만 해도 사창가, 즉 588은 우리 생활과 밀접(?)했다. 버스 정류장이나 기차역 앞 호객행위는 흔한 풍경이었고, 대학생들조차 군입대할 때 친구나 선배들이 '총각딱지' 떼주는 것을 관례처럼 여기기도 했다.

     

내 군입대 송별회 때였다. 폭탄주와 원샷을 셀 수도 없이 강요당한 나는 선배들에게 부축을 받으며 ‘3차‘로 옮겨졌다. 술이 무척 셌던 나는 다행히 정신은 또렷했다. 정육점을 연상시키는 붉은 불빛, 싸구려 방향제와 진한 화장품 냄새를 따라 좁은 계단 끝에 올라섰다. 다닥다닥 붙어있던, 두 사람이 간신히 누울 쪽방 한 곳으로 나를 인도한 여자는 사무적으로 말했다. "뭐 해, 벗어". 그 여자와 나의 첫 대화였다.

      

나보다 두어 살쯤 많아 보이는 여자는 능숙한 자세로 어깨리본을 풀었다. 그러자 마치 소시지 껍질 벗겨지듯, 여자 몸을 타이트하게 덮고 있던 스판 원피스가 도르르 말려 내려왔다. 붉은 조명을 빨아들인 살덩이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술의 힘으로 간이 부어 있었음에도 나는 당황했다. 눈동자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실제 눈앞에서 보는 성숙한 여자의 알몸.

      

“여기 얼마나 있을 수 있어.. 요?“ 내가 물었다. “40분. 왜 짧아?" 그녀가 짙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아뇨. 우리 그 시간 동안, 얘기나 하면 안 될까.. 요” 여자는 까르르 웃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자세를 고쳐 내게 바짝 다가와 앉는다.


“자기, 처음이야?" “네." 귀엽다는 듯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여자는 물었다. “근데 여기 왜 왔어? 군대가?" “네."


잠시 후 여자는 웃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고개를 떨구고 가느다란 장미 담배에 불을 붙였다. "처음이라니까 하는 말인데.. " 담배연기가 한숨처럼 길게 뿜어져 나왔다. "있잖아.. 처음은 중요한 거야.. 여자에게도 그렇지만, 남자도 마찬가지야." "... " "나야 하는 일이 이거니까, 하던 안 하던 돈 받으면 땡이니까 상관없지만, 자기는 잘 한번 생각해 봐."

      

우리는 대화를 나눴다. 왜 이런 곳에서 일하냐고 내가 물었고 여자는 자기의 집안 얘기를 했다. 동생 학비를 댄다고 했다. 집에는 가끔 내려가냐고 하니까 추석이나 설날 명절 때 내려가는데 그때는 선물을 듬뿍 사들고 간단다. 부모님과 동생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고생하는 걸 다 잊는다고..


그렇게 길었던 40분이 지났고, 나는 어질한 머리로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다시 내려왔다. 커다란 유리문을 열고 나갈 때였다. 여자가 내 등을 툭 쳤다. 돌아보니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던 것만 기억난다.

      

내 무용담을 애타게 기다렸던 선배들과 근처 포장마차로 갔다. 들뜬 그들은 마치 자식 장가보낸 아버지처럼 뿌듯한 표정들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어땠는지 빨리 말해보라며 재촉했다. 하지만 내가 입을 열자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어갔고, 이윽고 반공궐기대회처럼 성토가 이어졌다.


한 선배는 그냥 하고 나오면 되지 뭔 잘난 척이냐며 분노했고, 한 선배는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귀한 돈으로 넣어줬더니 뻘짓을 했냐며 욕을 했고, 또 다른 선배는 너 같은 놈이 더 나쁜 놈이라고 했다. 너 돌아가고 나면 그 여자 일할 맛 나겠냐며, 그게 더 그 여자에게 상처 주는 일 아니냐고 말이다. 구석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또 다른 선배는 이해한다며, 술잔에 고개를 처박고 ‘잘했어 잘했어’를 계속 중얼거렸다. 비틀거리며 술집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불어왔고, 어디선가 라일락향이 났다. 늦은 5월 봄날 밤이었다.      

      

1980년대 후반은 매해 두 자리의 GDP 성장률을 보이며 산업화의 정점을 찍던 시기였다. 그리고 서울은 그 압축성장의 심장부였다. 사람들은 기회의 땅 서울로 몰려들었고 농촌 대가족 시스템은 와해되기 시작했다.


그들 중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근사한 도심 빌딩숲에 자리를 잡았고, 초급 기술을 배운 사람들은 구로공단으로 대표되는 공장지대나 청계천에 자리 잡았다. 이도저도 못한 사람들은 서울 변두리로 흩어졌고, 결국 몸뚱아리 하나뿐인 사람들, 특히 돈 없고 빽 없고 기술도 없는 젊은 여자들이 마지막으로 흘러드는 곳이 사창가, 588이었다.

      

인신매매가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지만 그들 대부분은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 이유는 물론 돈이었다. 집안 형편에 보태거나 동생들 학비를 대기 위해, 그리고 조그만 나만의 가게의 꿈을 위해 그들은 싱싱한 몸을 시장에 내놨다.


요즘 화류계 여자들은 명품이나 외제차등 '폼나게' 살기 위해 일을 한다고 하지만, 당시에는 '먹고살기 위한' 생계형 윤락이 대부분이었다. 늙으신 부모님과 가족을 위해 더 하고 싶던 공부도 포기한 채 스스로를 희생한 누나, 동생, 언니였다. 따지고보면 불과 20대 초중반의 나이에.

      

얼마 전 친구의 페이스북에서 옛날 청량리에 얽힌 사연하나를 읽었다. 혈투를 벌였던 길거리 노숙자와의 화해를 담은 따뜻한 이야기였지만, 다녔던 대학이 청량리 근처였다 보니 나는 당시 사창가의 대명사였던 그곳을 떠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사진전 하나가 생각났다. 조문호 작가의 <청량리 588> 전. 호불호의 평가가 많았을 작업이다. 인간이 가장 감추고 싶은 곳을 드러내는 작업과정 역시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누군가는 기록했어야 할 엄연하면서도 아픈 우리의 모습이다.


댄디한 척하고 있지만 구질구질한 시절이 있었음을 잊어버린 우리. 하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실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우리의 지금이 형성되어 온 과정, 그걸 똑바로 마주하는 것이 거창하게 말하면 역사인식이라는 것 아니겠나.


요즘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분통 터지는 현상들도 어찌 보면 그런 자기반성의 시간을 거른 채 크고 높은 것만을 추구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이제 전시는 끝났지만 눈빛출판사에서 <청량리 588> 이란 제목으로 사진집이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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