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영화 <아버지의 깃발>

- 영화 속 사진이야기

by SJ

2차 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2월, 미 해병대가 이오지마 섬에 상륙했다. 일본명 ‘유황도(硫黃島)’. 황폐한 화산섬이지만 행정구역 상 도쿄도에 속한, 일본 본토의 상징성을 띤 전략적 요충지였다. 고지에 자리 잡고 있던 일본군은 미군들을 향해 포탄 세례를 가했다. 말 그대로 ‘비가 퍼붓듯’ 포탄과 총알이 쏟아졌다. 이곳에서 미군은 2차 대전 단일 전투로는 가장 많은 7천 명의 전사자를 냈고 일본군 역시 2만 명 넘게 사망했다.

이름도 위치도 생소한 섬 이오지마. 머나먼 극동의 작은 섬에서 들려오는 엄청난 전사자 소식에 미국인들은 경악했다. 전쟁이 곧 끝날 거라는 희망은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그때, 한 장의 사진이 샌프란시스코에 타전된다. 생사의 고비를 넘기며 이오지마 정상에 오른 해병대원들이 성조기를 게양하는 장면. 감동과 환희의 물결이 미국을 뒤덮었다.


거의 모든 신문 1면에 이 사진이 실렸다.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기념우표가 발행되고, 성조기 모양의 아이스크림이 팔렸으며, 군비 조달을 위한 국채 모집 캠페인이 진행됐다. 전쟁자금은 충당되었고 미국은 결국 2차 대전의 승리를 거두었다.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으로도 일컬어지는 이 사진은 그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논쟁이 불거졌다. 사실 이 사진은 처음 성조기를 게양할 때의 모습이 아니었다. 좀 더 큰 것으로 바꾸라는 상부의 명령으로 기존의 깃발을 내리고 다시 게양한, 의도를 가지고 촬영된 사진이었다. 첫 번째 사진은 비록 아마추어가 찍긴 했어도 더 역사적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깃발의 크기, 구도, 생동감 모든 면에서 사진적 상품성이 없었다.


그에 반해 AP 통신 사진가 조 로젠탈 Joe Rosenthal 이 찍은 두 번째 사진은 달랐다. 절묘한 대각선 구도, 전체적으로 하나의 통일체처럼 보이는 군인들, 막 펄럭이기 시작하는 성조기, 텅 비어있어 더욱 피사체를 돋보이게 하는 하늘 배경 등, 사진적으로 완벽했다.

그래서였을까, 로젠탈은 평생 동안 의심을 받았다. 설정샷 아니었냐는 것. 훗날 저널리즘 사진으로써의 그 가치를 인정받긴 했지만 로젠탈은 2006년 94세로 사망할 때까지 세상의 의구심으로 인해 괴로워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진과 관련된 논쟁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행형이다. 2016년, 미 해병대 사령부는 사진 속 '6인의 영웅’의 진위 여부에 대해 재조사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6명 중 존 브래들리라는 해군 위생병은 사실 게양식에 참여하지 않은 엉뚱한 인물이라는 것.

물론 영화 <아버지의 깃발>은 이러한 논쟁을 구구절절 늘어놓지는 않는다. 다만 이야기 전개의 출발점으로써의 사진과 그것을 둘러싼 역학관계에 방점을 둔다. 영화는 하나의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것이 언론이나 국가권력과 관계를 맺을 때 어떻게 소비되는지, 그리고 그 프레임 안에서 '영웅'이라는 헐거운 옷을 걸치게 된 개인들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독특하게도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같은 전투를 배경으로 일본판 영화도 만들었다.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가 그것인데, '적군’ 미군을 바라보는 고지 너머 일본군의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편지라는 매개를 통해 ‘그들’ 역시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던, 존재감 뚜렷했던 인간들이었음을 부각하고 있다. 대상을 바라보는 상반된 두 개의 시선, 그 둘이 합쳐질 때 비로소 전쟁이라는 하나의 이미지가 입체적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아래 사진에서 위쪽이 첫 번째로 촬영된 사진(by Louis Lowery). 아래쪽은 퓰리처상을 수상한 두 번째 사진 (by Joe Rosenth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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