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테리아 Jan 27. 2022

공항시장역 그 아이

예전에 공항시장역에서 근무할 때였다. 출근 시간에 게이트 근무를 하고 있는데, 어떤 초등학생 여자애가 울상을 지으며 나를 쭈뼛쭈뼛 쳐다보고 있었다. 다가가 왜 그러냐고 물으니 조심스럽게 5천 원을 잃어버려서 준비물을 못 산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안쓰러워, 


“아저씨가 빌려줄게. 내일 갖다 줘.”


하고 5천 원을 빌려주었다.

아이가 돈을 받고 고맙다는 인사를 꾸벅하고 총총 학교로 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게이트 근무를 하고 있는데 어제 돈을 빌려 갔던 그 아이가 나를 못 본 척하고 그냥 지나가 버렸다. ‘돈을 안 갖고 와서 그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는데 다른 직원과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히 그 아이에게 돈을 빌려준 직원이 나 말고도 여럿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모두 받지 못했다는 것도….     


나는 내일도 모르는 척하고 지나가면 불러서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날, 역시나 나를 힐끗 보고 모른 척 지나가려고 하길래 옆에 가서 그 아이를 조용히 불렀다. 안전관리실로 데리고 와 다른 직원들도 너에게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아저씨가 이거 못 본 척하면 안 될 것 같다고 엄마 휴대폰 번호를 말하라고 하니깐, 모른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이나 되었는데 엄마 휴대폰 번호를 모르는데 말이 되냐고 하니까, 그제야 번호를 부른다. 다 적은 뒤 겁을 주려,


 “너 이 번호 틀리면 경찰 아저씨랑 학교 가서 방송으로 너 찾을 거야.”라고 하니까,


다시 번호를 고쳐 쓴다. 크게 될 아이였다. 잘못했다는 말을 계속하길래 기회를 준다며 스스로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여기 직원들에게 빌려 간 돈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렇게 말을 하고 그 아이를 보는데, 안심하는 표정을 보자 싸한 기분이 들면서 부모님께 말씀 안 드리고 어떻게든 돈을 융통해서 올 것 같았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 엄마한테 전화 안 한다고 했지만 네 미래를 위해 전화를 해야겠다. 너도 느껴봐라. 배신감.  

   

아이를 보내고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어머니는 금시초문이었다. 어머님이 놀라지 않게 이런 일이 있어서 아셔야겠다고 조심스럽게 말씀을 드렸다. 아이의 어머니께서 당황하셨지만 알려주셔서 고맙다고 하셨다.     

다음날 교대시간에, 전날 오후에 근무했던 직원이 출근하여 어제 저녁에 그 아이와 어머니가 역에 찾아오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딸이 그러는 줄 전혀 몰랐다며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우셨다고 했다. 어머니가 우니까, 아이도 따라 울었다고 했다. 아직 자녀가 어린 나이라 그 놀람이 크셨던 것 같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하시면서 빌려 간 돈을 다 주셨다고 했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는 자식의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한다. 입히고 먹이고 씻기고 어느 것 하나 자신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게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내 손안에 있는 것 같은 아이가 상상도 못 한 일을 했으니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   

  

어릴 때 다들 부모님의 눈을 피해 잘못된 행동을 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보통 그 수법이 뻔하고 연기가 서툴러 곧 들통이 나지만 말이다. 그런데 만약 그 일이 고쳐지는 과정이 없이 반복된다면 그 잘못된 행동의 크기는 점점 커질 것이다. 나는 그 아이에 대한 나의 개입이 적절한 시기에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때 그 아이는 원하지 않는 간섭이었겠지만, 언젠가 커서 그날을 추억해보는 날이 온다면 엄마에게 고자질 한 날 좋게 생각해주는 때가 오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작은 것들을 위한 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