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홍보처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나는 근 10년 동안 역에서 고객안전원(역무원)일을 했다. 일의 특성상 취객 상대라든지, 노숙자 퇴거, 성추행범 신고 등 일반적인 직장인 분들이라면 겪지 않을 일들을 했다. 이번에는 그 당시에 겪었던 일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예전에 신방화역에서 근무할 때 있었던 일이다. 아주머니 두 분이 급하게 안전관리실로 오셨다. 어머니를 잃어버렸다고 CCTV를 보기 원하셨다. 원칙상 경찰관을 대동하여야 볼 수 있음에, 우선 경찰에 신고부터 하시고 등등의 안내를 해드리는데, 두 분의 다급함과 실종 골든타임에 대한 염려 때문에 선조치 후보고를 하고자 CCTV를 보여드렸다.
대합실에 설치된 CCTV로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 한참을 찾았다. 하지만 그 실종자분은 보이지 않았고, 이동 경로에 대해 여쭈어보니 신방화역의 방문 여부가 확실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주머니 한 분이 왜 CCTV를 이것밖에 설치를 안 했냐고 심하게 화를 내었다. 순간 어이가 없었다. 지하철의 모든 공간을 CCTV로 찍을 수는 없고, 그리고 그분의 실종에 내가 잘 못 한 것이 없는데 속된 말로 눈을 부라리며 나에게 삿대질을 했다. 규정을 어기면서 CCTV 컨트롤러를 작동해 그 실종자를 찾기 위해 노력하던 내가 들을 말은 아니었다. 영화 대사처럼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된다더니,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따귀를 맞는 기분이었다.
그제야 그 실종자도 그분들의 어머니가 아니라 노인정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아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치매도 아니었다. 그분이 화를 내니, 옆에 분이 도와주시는 분한테 왜 그러냐고 말렸다. 이상한 그림이 되었다. 이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있는 내가 잘못한 사람이고 쌍심지를 켜고 화를 내는 분은 그럴만한 일을 겪은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 옆에 분이 말리고 있었으니 더 그럴싸한 그림이 되었다. 왜 나의 호의는 둘리가 되었을까?
살면서 ‘해서’ 후회하는 일과,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일을 비교해보면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감정이 더 오래가는 것 같다. 나는 그때 20대 후반이었고, 회사에서 신참이었다. 나는 그 화내는 아주머니께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했다.
그 아주머니께 받은 기분 나쁜 감정이 한참을 따라다녔다. 아마 몇 년 동안은 가끔 나를 괴롭혔던 것 같다. 그것이 그렇게 오래 나를 따라다닌 것은 그 아주머니의 화보다도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있었던 나 자신에 대한 자책이었다. 왜 참고만 있었을까?
그때 민원을 받더라도 시원하게 그분의 태도에 대해 화를 내었다면, 아마 그 감정은 금방 소멸되었을 것이다.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내가 보여드린 선의를 설명하고 그 결과로 내가 욕을 먹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말했을 것이다. 그것도 얼굴을 들고 두 눈을 보며 당당하게 말이다. 그렇게 해야 그 감정의 잔상을 종료할 수 있을 것 같다.
고객안전원(역무원)으로 지하철역에서 일하다 보면 역을 이용하는 고객이 하루에 수만에서 수십만 명에 이르지만, 감정을 나락으로 이끄는 것은 진상 고객 한 명이면 충분하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나의 잘못이 아닌 것에 대해, 철천지원수를 만난 것처럼 대한다.
점점 서비스업 종사자의 감정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고 있다고 하나, 매스컴에서 보여주는 일들을 보면 아직도 멀었다.
나는 삶의 무서운 법칙 중의 하나가 ‘인과응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들의 결과를 생각해보면 그 원인이 꼭 있었다. 어쩌면 그때 내가 그 아주머니에게 받은 화도 나의 인과응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입장은 늘 바뀌는 것이다. 늘 갑일 수는 없다. 당신의 인생이 인생 내내 갑이었다고 해도, 당신의 자식, 손자 대라도 바뀔 수 있다. 부덕의 소치를 유산으로 남기고 싶지 않다면, 부디 덕을 쌓아 대대손손 그 마일리지를 받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