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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리아 Feb 03. 2022

고목나무 속의 팔천 원


지하철에서 근무하다 보면 변화 없이 늘 똑같아 보이는 모습이 문득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늘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는 아내가 예전에 자주 하던 불평이 있었다. 열차 내에 폐지를 수거하는 노인분들이 폐지 마대 자루를 들고 바삐 움직이다 보니 자신을 거칠게 밀고 지나가는 게 너무 싫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어느 순간 아내의 이 불평이 없어졌다. 아마 스마트폰의 발전으로 무가지가 사라지면서 자연히 폐지 수거 노인분들도 열차 내에서 사라지게 된 것 같다. 시대적 흐름으로 나와 일터를 공유하던 그 노인분들의 일자리가 준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노인들이 한 직종을 점령한 경우가 있을까? 슬픈 것은 이 카르텔은 권력층에 의한 것이 아니라 빈곤층의 비자발적 점령이라는 것이다. 이 씁쓸한 자화상을 떠올리면 오래전 잠시 나의 일터를 찾아온 그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대학교 겨울방학 때였다. 그때 난 등록금을 모으려고 고깃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가게의 사장님들은 이제 갓난아기를 가진 젊은 부부셨는데, 다정다감하고 나에게 잘해주셨다. 그리고 일이 늦게 끝나서 아기를 볼 시간이 없다며 늘 가벼운 투정을 했다.

우리 가게는 내부가 훤히 보이는 투명유리로 모든 문이 되어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손님들의 고기 먹는 모습에 끌려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적당히 손님들이 있는 날이었는데, 서빙을 하다가 밖에서 안을 보며 서성이는 할아버지 한 분이 보였다. 난 처음에 손님 중에 누구를 찾으러 온 건지 알았다. 그런데 왜 안 들어오고 밖에서 서성일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이내 손님들의 주문에 그 생각은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밤참 시간이 되어 이것저것 먹을 것을 준비하고 있는데, 또 그 할아버지의 모습이 밖에서 보였다. 아까 보았을 때와 시간이 거의 2시간은 지났는데 아직도 안 가고 있는 거였다. 가게 안을 둘러보니 그때의 손님들도 대부분이 돌아간 상태였다. 그제야 할아버지의 모습을 자세히 보니 행색이 남루하고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그냥 솔직히 말하면 ‘거지’ 같아 보였다는 게 맞는 말이겠다. 


어쨌든 여전히 그 할아버지는 우리 가게 안을 불안하게 쳐다보며 서성이고 있었다. 난 밤참을 먹으면서도 계속 그 할아버지가 신경이 쓰였다. 왜냐하면, 난 그때 그 할아버지가 무언가를 구걸하러 들어올 거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밖에서 서성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밤참을 다 먹고 식기들을 치우고 있는데 역시나 그 할아버지가 들어왔다.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약간은 겁을 먹은 듯이 그렇게 가게 안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가게 안의 손님들이 등 뒤로 그 할아버지를 힐끔거렸고, 난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라서 사장님 부부를 보았다. 왜냐하면, 아르바이트하는 내 입장이, 


‘이 할아버지를 쫓아내야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장님은 아무렇지 않은 듯 늘 그렇게 ‘어서 오세요.’를 외쳤고 자리를 빼 드렸다. 사장님의 행동에 그제야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깨닫고 그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보통의 경우는 음식을 다 먹고 난 후 값을 지불한다. 먼저 돈을 내고 먹지는 않는다. 그게 일반적일 것이다. 여긴 패스트푸드 가게처럼 먹기 전에 돈을 내는 곳이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할아버지는 그랬다. 할아버지 앞에서 뭘 드시겠냐고 물으려고 할 때, 할아버지는 식탁 위에 고목나무 같이 주름지고 투박한 손을 올려놓으셨다. 그리고 그 손을 펴셨는데, 그 안에서 꼬깃꼬깃 접힌 5천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2장 그리고 여러 가지의 잔돈이 나왔다. 그리곤


“ 나 팔천 원 있어. 나 돈 있어. 나 먹을 수 있지?”


라는 할아버지 말에 난 순간 가슴이 쓰린 죄책감이 느껴졌다. 재차 할아버지는 이 돈으로 고기 1인분과 소주를 살 수 있는지 물었다.     


난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하고 갖다 드릴게요. 하고 돌아서는데 그 할아버지께서 나에게 돈을 받아가라고 붙잡으셨다. 난 나중에 다 드시고 난 후 계산하셔도 된다고 했지만, 할아버지는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으셨다. 난 차마 가져가기 힘든 그 돈을 할아버지의 손바닥 위에서 하나씩 집어갔다. 그렇게 8천 원을 집어가니 손바닥 위에는 살아온 세월보다 더 많은 나이테와 단돈 20원만이 남아있었다.     


아마 할아버지는 나 같은 사람 때문에 그렇게 돈을 먼저 보여준 것이리라. 나같이 보이는 거로 판단하는 사람 때문에 자신의 남루함으로 혹시 자기를 뭔가 구걸하는 사람으로 볼까 봐,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자기는 돈을 내고 먹으러 왔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돈을 먼저 내고 시키지 않았다면, 돈을 받을 수 있을까? 라는 의심 어린 눈초리로 자신을 볼 거라고 미리 짐작했던 것 같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우리를 안심시키기 위해 우리가 버린 인정을 손바닥 위에서 보여준 것이다.     


불판 위로 고기가 구워졌다. 그 할아버지는 먼저 소주 한 잔을 들이켜셨다. 할아버지의 표정에서 그 식탁 위의 음식들은 눈치 보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듯한 안심이 보였다. 많은 사람이 그 할아버지께 나처럼 그 사람의 행색으로 판단을 해서 눈치를 주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후불제가 당연한 이 나라에서 수십 년을 살아오신 분이 저렇게 주문도 하기 전에 돈을 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 옆에 계시던 사장님이 조용히 말씀해주셨다. 저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폐지나 고물을 주워다 파시는 분인데, 단칸방에서 혼자 살고 있고 자식들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시겠다고 했다.

아마 할아버지는 우리 가게 앞을 지나다니시면서 고기가 많이 먹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자신에겐 쉬운 돈이 아닌 8천 원을 들고 가게로 들어오신 것이다. 그리고 처음에 가게 앞에서 가게 안을 보며 서성이셨던 것은 차림표의 가격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자신이 가진 돈이 고기 1인분과 소주 한 병을 살 수 있는지와 그리고 인정을 버린 눈초리를 이겨내는 데 2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고기를 별로 드시지 못하셨다. 고기는 몇 점밖에 못 드시고 소주는 한 병을 다 비우셨다. 참 드시고 싶으셨을 텐데 속은 고기가 너무 오랜만의 손님이라 놀랐나 보다. 그리고 친근한 소주는 반갑게 맞아들였던 것 같다. 난 그때 피천득의 은전 한 닢이 떠올랐다. 그냥 은전 한 닢이 갖고 싶었던 그 주인공처럼 이 할아버지도 늘 지나다니면서 보기만 했던 이 가게에 한 번 들어와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할아버지는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가게를 나가셨다. 그리고 나가기 전의 


“나, 가도 되는 거지?”


라는 말이 또 가슴을 아리게 했다. 그 말에 사장님은 미소로 대답을 했고, 여 사장님은 남은 고기와 따로 얼마 정도의 고기를 담고 계셨다.


난 그 고기를 들고 할아버지를 쫓아갔다. 그리고 그 고기를 드리려는데 한사코 받지 않으시려고 했다.

그 봉지를 할아버지의 손에 끼워드리고 오는 길에,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는데 계속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 뒤로 혹시나 그 할아버지가 문밖에서 서성이고 있을까 밖을 보았지만,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때까지 할아버지를 볼 수는 없었다.      


그 후로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는 8천 원으로 고기 1인분과 소주 한 병을 시킬 수 있는 곳은 없다. 하지만 아직도 거리에는 그때의 수많은 고목이 있다. 우리는 그분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혹시 바라보지 않는가? 


다만 그저 그 삶이 당연한 거로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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