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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잇 Apr 17. 2016

망상

그러나 나에게 찾아오리라곤 생각 못한 -1-

    그 날이 그리워지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그는, 그때와 다르지 않은, 아니, 그때와 다른 모습이었다. 그저 카페 아르바이트 1인 나의 상황과는, 이제 그는 세련되었고 나는 초라했다. 마치, 지금의 봄날처럼 따스한 손길이 남아있지 않은 나에겐, 그저 차가운 바람에 신문지 하나를 걸치는 마냥 잠깐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으리라, 그를 그 날 이후로 처음 만난 그 날은. 


    어떻게 지냈냐는 카톡 메시지에, 한 평 남짓의 신림동 고시촌 방구석에서 겨우 와이파이를 잡아가며 생활하는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그럭저럭 잘 지내"라는 그 상투적이고 흔한 말이, 지금 얼마나 감사한지.  그가, "시간 나면 언제 밥 한 끼 할래?"라는 대답에, 또다시 말문이 막힌다. 난 그런 여유조차 없는데. "그래, 언제 한번 만나자"라는 말을 겨우 건네며, 나는 기약 없는 약속을 잡아버렸고, 나를 꽁꽁 싸맨 채 또다시 잠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 왜 그는 봄 소풍에 나오질 않았던 걸까. 신경이 쓰였던 그때의 첫사랑은, 어떻게 보면 허무하게도 그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버려 짧은 시간으로 마무리되었지만, 나에겐 그때만큼 따뜻하고 포근했던 적이 없었다. 다른 애들이 뭐라고 말해도, 나는 얼굴이 그에게로 향하고 있었고, 그냥, 그와 같이 있던, 그와 대화하던 그 시간 자체가 나에겐 행복하고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차가운 골방에서, 몸을 웅크리는 그저 초라한 나 밖에 남질 않았다. 


    그 날 이후로, 그는 내가 일하고 있던 카페에 자주 들렸다. 말을 걸어주던 그는, 그때의 나였고, 그때의 따스한 햇볕, 벚꽃이 흩날리던 4월이었다.


    내가 그에게 황남빵을 준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결론은 간단했다. 주고 싶었다. 내가 이것을 그에게 줌으로 인해 그와의 거리가 가까워진다면, 그의 얼굴을 더 볼 수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한다. 나는 그때의 행복이 영원할 줄로만 알았고, 그때 그의 웃음이 영원히 기억될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그때의 나는 항상 그에게 잘해주지 못했는데, 그는 지금, 아주 행복해 보이는 표정으로, 나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웃음이 낯선 이유는, 왜일까. 


    “그러고 보니, 요즘 어떻게 지내?” 

    “아… 나? 음… 그냥 혼자 독립해서 살고 있어…” 

    “혼자 사는구나… 그럼 카페에서 일하는 건 바리스타 자격증 때문에 일하는 거고?” 

    “아… 뭐… 그렇지… 바리… 스타 자격증 따려고…” 

    “야, 그런데 오랜만에 보는데, 왜 이렇게 뾰로통하냐…. 나 만나기 싫었던 거야?" 

    "그건 아냐. 그냥, 요즘 일이 많아서…."

    "카페 말고도 또 다른 일 하는 게 있는 거야?" 

    "어…. 뭐 바쁘다 보니 정신이 없네! 하하…” 


    하늘도 참, 나에게 완벽한 절망 같은 건 주시지 않았나 보다. 처음 만난 그 날도 그랬고, 오늘도 이리저리 피할 구멍을 만들어주셨다. 그래도 내가 앉은 이 레스토랑의 의자는 가시방석 같다. 얼른 일어나고 싶었다. 자꾸 이야기하면 이야기할수록, 언제 벗겨질지 모른다는 그 두려움에, 나는 몸 둘 바를 모른 체,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귀로 넘어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럴수록, 나는 이 상황, 이 지경으로까지 만들어준 우리 아빠(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정말로 고마워서, 나도 아빠처럼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근데…” 

    “근데…” 


순간의 정적이 흐른다. 


    “네가 먼저 말해…” 

    “아… 음… 그럴까… 다른 건 아니고…” 

    “응?” 

    “요즘, 어떻게 지내나 싶어서… 멋있어지기도 했고…”


    그는 나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처음 들었던 그의 이야기.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나는 좀 더 그와 반대되는 인생에, 더 초라해져만 간다. 내가 앉은 의자는 그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너와 이렇게라도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야. 편지가 끊긴 뒤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싶었거든…” 

    “아…” 


    순간, 내가 내 무덤을 잘못 판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주변은 온통 어두컴컴해졌다. 그가 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볼 것만 같았다. 그에겐 아직 말하지 못한 판도라의 상자 안에 있는 이야기, 그 시작은 그렇게 변호사가 될 거라며, 나에게 공부 안 하냐며 괴롭히던 오빠가, 군대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고 나서부터였다. 나는 그 현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 병원 안치실에도 들어갈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오빠는 자기 턱주가리에 총구를 겨누고는 방아쇠를 당겼다는 것. 그거 하나뿐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우리 집은 엉망이 되었다. 엄마는 그 충격으로 쓰러져 병원 신세였고, 아빠는 그런 엄마를 보살피기 위해 이리저리 돈을 빌렸다. 회사자금을 끌어다가 쓰기도 했고, 심지어는 불법 대출에까지 손을 대기 시작했다. 매일 밤, 우리 집 손님은 불법 추심자의 돈 내놓으라는 고성방가였고, 아버지는 내 눈앞에서 그 사람들에게 무릎을 꿇고 시간을 더 달라고 빌기까지 했다. 엄마는 증세가 악화하기 시작했고, 그와 더불어 빨간딱지는 덤이었다. 아빠는 돈을 얻어오겠다며 나간 뒤로 그대로 행방불명이 되었다. 엄마는 이런 상황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자기 아들 곁으로 떠났다. 그 모든 것이 끝난 것은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었다. 이모와 이모부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모와 이모부는 최대한 나를 아끼려고 애썼지만, 나는 모든 것을 거부했다. 한동안 집안에 틀어박혀만 있었다. 결국, 자퇴를 하고 1년 동안 멍하게, 그리고 아무런 생각 없이 지냈다.


    이 스펙터클한 이야기를 그에게 이야기해줄 수는 없었다. 아니, 내가 꺼내기가 싫었다. 말을 꺼내면 꺼낼수록 비참해지기 때문이다. 


    “잠깐만 전화 좀 받고 올게”


경찰서다. 그렇게 아빠를 찾아달라고 졸라댔던 그 경찰서다.


    “(아, 네 지윤 씨죠?)”

    “네. 찾았나요?”

    “(아… 찾긴 했는데요…)”

    “했는데…”

    “(일단, 성모병원으로 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눈에 초점이 없어졌다. 그때, 내 옆에 있어줬던 건 그 남자, 내가 황남빵을 주었던 1학년의 그 아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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