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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잇 Apr 17. 2016

망상

그러나 당신에게도 있을 수 있는 -1-

    나는 방 한 칸에 부엌 겸 욕실(이라고 하기도 뭣하고 그냥 돌바닥에 고무호스 끼워진 수도꼭지 하나 있는 공간)이 딸려있는 월세방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그녀는 변두리 동네치곤 제법 크게 지어진 44평짜리 아파트에서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그녀의 오빠와 함께 살았다. 우리 아버지는 공사장을 전전하는 노가다 일용직이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중소기업의 오너로서, 그녀의 어머니는 조그마한 미용실의 사장으로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우리 집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힘들었고, 그녀의 집은 1주일에 한 번 시내로 나가 레스토랑에서, 그게 안 되면 근처 고깃집이나 미스터 피자 같은 곳에서 외식도 할 수 있는 형편이었다. 나는 어린이날 선물은커녕 일을 끝내고 받은 돈으로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술을 사 먹고 들어온 아버지의 술주정과 손찌검을 받아야 했고, 그녀는 자랑스러운 딸이라는 멋있는 말과 함께 꽃다발과 예쁜 줄무늬 원피스를 선물 받았다. 나는 비참했고, 그녀는 아름다웠다.


    우리는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다. 경주 불국사까지 갈 버스비 단돈 8천 원이 없어서, 아니 사실은 그 돈으로 아버지 본인이 소주를 사 먹어야 했어서 갈 수 없었던 1학기 봄소풍 다음 날 그녀는 왜 소풍 때 오지 않았냐고 물어왔다. 솔직하게 얘기할 수 없어 우물쭈물하던 내게 그녀는 자기가 어제 사온 기념품이라며 개별 포장된 황남빵 1 봉지를 건네주었다. 내가 없어서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녀와의 인연은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물론 그녀는 우리 학교에서 최고로 잘 나가는 소위 '여신'이었고 나는 공부 잘하는 것 외엔 남들이 관심 가져줄 만한 요소가 하나도 없는 '찌질이'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친하게 지낼 수는 없었다. 그녀는 내게 있어, 감히 나 따위가 건드려서 더러운 물을 적셔놓으면 안 되는 고귀한 아이였다. 하지만 그런 나와 달리 그녀는 오히려 내게 편견 없이 다가와 주었다. 같이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도 하고, 자기 집에 게임기를 새로 샀다며 같이 게임하자고 초대하기도 했다. 그녀와 있으면 너무 좋았다. 그녀는 너무나도 빛이 나는 존재였고, 그런 그녀 곁에 있으면 어둡고 외로운 나에게도 빛이 나는 것만 같았기에.


    아버지가 결국 그놈의 술 때문에 뇌출혈로 비명횡사하게 된 다음날, 그 날은 내가 2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끝낸 날이었다. 상을 치르는 내내 담임 선생님이며, 집주인 네 노부부며, 생전 처음 보는 일가친척들이 우르르 와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중에도, 장지로 이동하여 땅 속에 관을 묻고 있는 중에도 난 눈물 한 방울 흘리질 않았다. 내 유년기 전체를 황폐하게 만들어 놓은 악마 같은 이와의 이별에 난 남몰래 해방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찌 됐든 난 졸지에 고아가 되어버렸고, 그런 나를 삼촌네 집에서 받아주기로 했다. 그렇게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던 날, 그녀는 내게 그리울 거라며 헤어져도 연락 계속할 수 있길 바란다는 말을 남겨주었다. 아버지를 잃고 타지로 이사를 가게 된 내 처지가 안쓰러워서였는지, 아니면 그냥 나와 헤어짐에 아쉬워서였는지 그녀는 눈물을 글썽였다. 멀리 가는 것도 아니니 맘만 먹으면 자주 볼 수 있을 거라며 난 그녀를 다독여줬다. 그 순간에도 나는 비참했고, 그녀는 아름다웠다.


    삼촌 댁으로 전학을 간 나는 탁 트인 창문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따뜻한 물을 뽑아 샤워도 할 수 있는 쾌적하고 좋은 집에서 살게 되었다. 창문이 너무 작아 햇볕도 드는 듯 마는 듯했던, 보일러 돌릴 돈이 없어 겨울이 되면 집 안에서 입김이 날 정도로 한기가 가득했던 우리 집에 비교하면 베르사유 궁전이나 다름없었다. 냉장고엔 먹다 남은 소주나 쉬어빠진 신김치, 담근지 몇 년은 족히 지난듯한 오래된 된장 통 하나, 참치캔 몇 개 정도가 전부였던 예전의 집과 달리 언제나 신선한 상태로 먹을 수 있는 고기, 채소, 과일, 간식거리들이 가득가득 들어 있었고, 처음으로 빽빽하게 책들이 꽂혀있는 책장, 번듯한 컴퓨터와 잘 정돈된 침대가 있는 내 방이란 것도 가져봤다.


    내 사촌 형이었고 동시에 그들의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을 수년 전 교통사고로 잃어야 했던 삼촌네는 그에게 주지 못했던 사랑을 한풀이라도 하듯 나에게 쏟아부어줬다. 항상 예쁘고, 맛있고, 좋은 것들을 접하게 해주었던 삼촌네 덕에 난 난생처음 학원이란 데도 다녀봤고, 명문대에 입학도 할 수 있었고, 성인이 되고 나선 1년짜리 교환학생 신분이긴 했지만 유학도 갔다 올 수 있었다. 그렇게 나에겐 없는 줄만 알았던 빛이란 걸 느껴보게 되었다.


    그렇게 행복에 도취되어 있는 동안 그녀에게 몇 통의 편지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녀의 생일이었던 11월의 어느 날엔, 여름방학 동안 친구들과 같이 여행을 떠난 모습이 찍힌 내 사진과 함께 1주일 간격으로 써내려 갔던 일기도 하드커버로 된 대학노트에 고스란히 적어 보냈었다. 그녀는 짤막한 답장을 보냈다. 처음은 활기차던 편지 내용이 시간이 지날수록 왜 이렇게 학교 다니는 게 재미가 없는지 모르겠다, 오빠가 군대에 가서 따돌림을 당한다더라, 부모님이 요새 들어 자주 싸운다 하는 등의 우울한 소식들로 채워졌다. 그마저도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난 다음부턴 답장이 뚝 끊겨버렸다. 나는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그녀는 그렇지 않은 건가? 하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그 후로도 내 소식을 알리는 편지들을 몇 차례 보냈지만 계속되는 무관심에 나도 그만 마음이 식어버렸다. 그렇게 우리는 고3을 맞이했고 끝내 각자의 인생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풋풋했던 추억은 찝찝함만을 남긴 채 기억 저 편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삿 추..."


    오랜만에 생각이 나 찾아온 옛 동네에서 추억에 잠겨볼 겸 들어간 한 커피숍에서 그녀를 10년, 정확히는 9년 11개월 만에 만날 수 있었다. 단정하게 뒤로 묶은 머리, 점포 유니폼으로 보이는 깔끔한 흰색 티셔츠와 다림질이 잘 된 구김 없는 앞치마를 하고 있던 그녀는 영락없는 상냥한 커피숍 알바생이었다.


    "오랜만이네... 그래서 뭐 시킨다고?"


    그녀는 날 보고서도 반가움의 표현을 아끼는 듯 보였다. 일하는 중에 갑자기 나타나 당황스러워 그랬으리라. 내가 있는 자리로 서빙을 해주러 오는 그녀에게 내 전화번호를 건네주었다. 연락하자고, 여기 자주 올 테니 이번엔 그때처럼 그렇게 잠수 타버리지 말고 오래오래 좀 보자고 다짐을 받아냈다. 그녀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내 담배를 낚아채며, 이거 끊으면 그 때나 돼서 자신에게 연락을 하라며 새침을 부렸다. 어째서인지 예전만큼의 화사한 빛 대신 어두운 그늘이 내려앉아 있는 그녀의 얼굴이었지만 그때만큼이나 아름다웠다. 그 날 이후로 종종 카톡도 보내고, 술 한 잔 하자며 약속을 잡기도 했다. 차를 몰아 1시간이 걸리는 거리였지만 틈날 때마다 그녀가 일하는 카페로 놀러 갔다. 예전 우리가 맹세했던 약속,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으니 그렇게 하자고 했던 그 약속을 강산이 한 번 바뀐다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지키려 애쓰고 있었다. 이젠 나도 그녀 앞에서 더 멋있는 모습을 보일 수 있으니깐. 나도 아름답고, 그녀도 아름다우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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