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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잇 Sep 19. 2016

망상

그러나 당신에게도 있을 수 있는 -2-

    “어휴, 저 처자가 글쎄 말이지.”


    총기를 탈취하고는, 지휘통제실로 뛰어 들어가, 자신의 중대장 바로 눈앞에서 자신의 턱 밑에다 방아쇠를 당겼다는 그녀의 오빠. 그 소식에 충격을 받아 몸져눕다, 결국엔 저 세상으로 가버린 어머니. 그런 부인의 병원비를 충당하기 위해 회사 자금을 횡령하고, 불법 대출에까지 손을 대고선, 사태가 갈수록 심각해지자 야반도주해버렸다는, 그리고, 바로 그녀 옆 자리에서 산소호흡기로 생명을 연명하고 있는, 저 중년의 남성이 그 아버지라는 것까지. 그녀의 고시원 주인이란 영감님께선, 내가 묻지도 않았음에도, 그녀의 사연을 타블로이드 가십 기사라도 되는 마냥 떠벌여댔다. 타인의 슬픔과 고민에 공감해주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추함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도, 상대방을 위하는 이타심과 배려 같은 건 자신의 태평양 바다보다 넓은 오지랖과 맞바꾼 군상이었다.


    그녀는 졸도한 지 3시간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눈을 떴다. 정신이 깨었냐는 내 말은 전혀 들리지 않았는지, 벌떡 일어나서는 자신 옆에 누워있는 반송장의 남성 곁에 다가가, 앉아 한참이나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내가 들었던 이야기들이 사실이냐고 묻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 따위 것들은 전혀 내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그녀의 아름다운 빛 한 줄기도 사라지게 할 수 없는 미미한 존재들이었으니깐. 대신 그녀의 차갑게 얼어붙은 손을 가만히 어루만져 주었다.


    그 돌덩어리처럼 굳어가던 몸은, 중환자실 입실 후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심박수가 급격히 떨어져 가기 시작했다. 그를 소생시켜 보이려, 중환자실 내의 모든 인력들이 긴급히 투입되고, 심장제세동기가 왔다 갔다 하는 동안에도, 심지어 결국은 그 반송장이 한 구의 시체가 되어버리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녀는 내내 그렇게 목석처럼 가만히 앉아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기만 했다. 문득, 어린 시절, 날 눈물짓게 했던 아버지가 생각났다. 살아있을 적, 매일같이 울려 대서 오히려 그가 하늘로 갔던 날 흘려야 할 눈물이 바싹 말라버리고 말았던, 15살의 나도 생각났다. 나는 그것이 아버지를 마음속 깊이 원망하고 있었기에, 날 지긋지긋하게도 괴롭혀오던 사람과 축복과도 같은 이별을 마침내 달성하였기에, 그랬을 거라 생각해 왔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그녀가 그렇게 눈앞에서 자기 아버지를 놓아버렸던 그 순간만큼은, 그게 아니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걸 받아들였던 것 같다. 마음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버린 사람은 비통하게 오열하지 않는다. 그럴 기력조차 소진한 지 오래니깐.


    그녀는 근무하던 카페를 1주일 동안 쉬고는 다시 출근을 강행했다. 잠시 쉴 것을 권유해볼까 했지만, 그녀의 사정을 알게 된 이상, 덮어놓고 그렇게 말할 수도 없을 노릇이었다. 카페 사장님도, 그녀의 단호한 의지에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다시 일자리에 앉혔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매일같이 그녀의 카페로 향하는 것이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시켜놓고, 그녀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혹시나, 눈이라도 마주치면 싱긋 미소를 지어주는 것. 테이블을 치우러 내가 있는 자리 근처로 올 때면, 별 것도 아닌 말들 걸어대며 주절대는 것. 뭐, 그런 하찮은 것들이었고, 당연히 심신이 피로해질 대로 피곤해진 그녀는, 내가 하는 말과 행동 어느 하나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에게도 귀찮았을 것이 뻔한 행동이었을 테고, 나에게도 시간 버리는 무의미한 짓이었지만, 그런 식으로라도 자신 옆에 아무도 없단 생각을 하고 있을 그녀의 곁에 머물러 안심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던 그녀가, 어느 날, 집 앞으로 소포를 하나 보내왔다. 한 밴드의 신보였다. 그녀가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의 음악이니 들어보라면서 처음으로 들려주었던 그 밴드였다. 월급 받고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주는 선물이니, 기쁜 마음으로 들었으면 좋겠다는 편지도 안에 실려 있었다. 기쁜 마음에 전화를 걸까, 당장 카페로 뛰쳐나갈까 생각했지만, 그보다는 그냥 조용히 CD 케이스를 개봉하여 오디오에 집어넣었다. 밴드의 보컬은 맑고 청아한 음색을 자랑하던 10여 년 전과는 다르게,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여 피폐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을 나타내기라도 하듯 비교적 탁하고 거칠게 변해 있었다. 그 날 이후로 난 우울해질 때면 그 애가 선물해준 그 앨범을 틀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서, 어둠에 너무 익숙해져 빛이란 걸 잊어버리고 사는 듯한 그 여성 보컬리스트의 목소리를 들었다. 꼭 그녀 인생을 닮은 듯한 그 목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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