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휴잇 Sep 19. 2016

망상

그러나 나에게 찾아오리라곤 생각 못한 -2-

정신이 돌아온 내가 있던 곳은 응급실이었다. 내 침대 옆에는 그 남자, 아니, 그 아이가 있었고, 나는 그저 멍하니 그 아이의 눈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정신이 드니?"


    이 한마디에, 그 아이는 어느새 성숙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어지러우면 조금만 더 쉬어"라는 그의 말이 무색하게, 나는 응급실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리고, 바로 내 옆에 있는, 나만이 알아볼 수 있는 얼굴-하지만, 삐쩍 말라있어 이게 사람인지 미라인지 구분이 안 가는-은, 분명 나의 아버지, 그토록 찾아 헤매다 지쳐 포기했던 그 남자였다.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이제야 이런 몰골로 찾아온 건지, 마지막으로 딸의 얼굴이나마 보고 싶어 했던 건지, 알 길은 없었으나, 분명한 것은 지금 아버지는 사경을 헤매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저 그를 얼러 만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내 옆에서 아무런 말도 없이 손을 잡아주던 그. 그는 그냥 내 옆을 지켜주고 있었고, 나는 그런 그를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내 눈과 신경들은, 모두 아버지를 향해 집중이 돼있었으니까. 결국, 그는 아버지가 산 송장에서 죽은 송장으로 되는 그 날, 그 시간까지 내 옆에 있었다.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가 옆에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내 모든 슬픔들은 이미 앞전에 버린 지 오래였다. 꺼낼 눈물조차 나지 않는 나는, 그에게 알아서 할 테니, 그만 돌아가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손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먼저 뿌리 내쳤고, 그는 그저 씁쓸한 뒷모습만 남긴 채, 돌아갔다.


    그렇게, 나는 당분간 그와의 연락을 꺼려했다. 카톡이 오는 것을 무시했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아니, 그럴 정신도 없었다. 사정을 들은 카페 사장님은 내게 1주일의 시간을 줬고, 나는 그 시간에 아버지와의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이모와 이모부의 도움으로, 나는 이제야 내 가족 모두를 하늘로 고이 보낼 수 있었다. 1주일 동안 정리를 마친 나는, 다시 출근을 했다. 사실, 하고 싶진 않았지만, 발걸음은 내가 일한 그 카페로 가고 있었다. 출근을 위해, 매장 문을 여는 순간, 보이는 것은 그의 모습이었다.


    "왜 연락이 없었던 거야. 무슨 일 있었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탈의실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러자, 내 손목이 묵직해짐과 동시에, 어느새 내 얼굴은 그의 가슴팍에 있었다. 따뜻한 가슴팍이 젖어간다. 그는 당황스러웠겠지만, 그냥 가만히 쓰다듬기만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가슴팍을 밀어내고, 다시 일할 준비를 시작했다. 그는 "좀 있다 봐"라는 짧은 말을 남긴 채 떠났고, 나는 한동안 눈 앞이 흐릿해졌다.


    매일같이 찾아오는 그의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더 이상 나의 치부와 아픔을 드러내고 싶진 않았다. 내 아픔을 내보인 것은 그때의 그 눈물로 되었다고, 나는 그의 모습을 보일 때마다, 연락이 올 때마다 침묵으로 일관을 했다. 하지만, 그는 끈질기게 나를 찾아왔다. 나를 시험해보는 것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매일매일 찾아올수록, 이젠 더 이상 나도 그를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카페 마감을 마치고, 나오는 문 앞에 그가 맥주캔 두 캔을 들고 서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같이 무시하고 신경을 안 쓰는 나에게, 무언가 힘든 일이 있으면 털어놓으라는 무언의 신호를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더 이상, 나의 치부를 계속해서 숨기기엔, 내가 너무 아팠다. 무시하면 무시할수록, 오히려 괴롭던 나 스스로에게, 그리고 그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


    “우리 집으로 갈래?”


    나는 이 말을 남긴 채, 한평 남짓의 신림동 고시촌으로 그를 초대했다.

작가의 이전글 망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