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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비 Mar 13. 2018

서평)가즈오 이시구로,[나를 보내지 마]

  2018년 첫날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를 집어 들었는데, 2월 중순을 지나갈 즘에야 책을 다 읽었다. 책이 어려워서 그런 건 아니다. 문장도 수월하고, 그 장면 장면은 전문지식을 요하지도 않는 평범한 장면이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생각보다 빨리 읽히지 않았다. 읽으면서 내가 짐작했던 다음 장면이 번번이 빗나갔기 때문이다. 자꾸 무언가를 놓치는 느낌이 들어 앞을 다시 읽고 다시 읽어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읽으면 읽을수록 드는 생각은 '이들은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지?'였다.                                                  


  어쩌면 이건 내 버릇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 난 책을 볼 때 책의 구성 순서대로 본다. 표지를 보고, 책날개를 보고, 목차를 보고, 내용을 읽고, 뒤표지를 본다. 이 책 [나를 보내지 마]도 앞장부터 차근차근 읽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뒤표지를 읽었다. 내가 뒤표지부터 읽었더라면, 진즉에 이 책을 끝냈을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뒤표지에 적힌 대로, 인간의 장기 이식을 목적으로 복제된 클론들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장기 기증자를 돌보는 간병사 캐시이다. 캐시는 '헤일셤' 출신의 간병사인데, 이런 출신 때문에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헤일셤' 출신이라는 게 왜 특별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또한 캐시는 장기 기증자가 되기 전까지 간병사 일을 한단다. 도대체 캐시의 정체가 뭐지? 하고 의문이 들 때쯤 캐시는 헤일셤에서의 일을 회상한다.


  캐시는 어릴 적 외부와는 접촉이 단절된 기숙학교 '헤일셤'에서 루스, 토미와 함께 성장했다. 그들은 처음엔 평범한 아이들처럼 나중에 어른이 되면 무엇이 될까 상상을 하지만, 곧 루시 선생님이 진실을 알려준다. '성인이 되면 장기 기증을 시작하게 되고, 그것이 각자가 태어난 이유라는 것'을 말이다. 또한 '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미래가 정해져 있다'라는 것도 말이다. 그 말에 헤일셤 학생들은 충격을 받았지만, 그건 이미 알고 있었는데, 뭘 굳이 말하나 하는 식으로 분위기가 흘러갔다. 

                                                    

  사실 이들은 장기기증을 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그들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즉 이 학교에서는 실제 그들이 앞으로 어떤 일을 겪을 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반면 이 학교에서는 창작활동을 아주 가치 있는 것으로 취급하였다. 학생들이 무언가를 만들면 주기적으로 바자회를 열어 그 물건들을 사고팔 수 있었고, 학생들은 작품을 수집함으로써 안목을 뽐내기도 했다. 별것 아닌 것들도 아주 비싼 값에 팔리기도 했고, 그런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학생들 사이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중 최고의 영광은 마담이라는 여성이 물건을 가져갔을 때였다. 학생들은 마담이 가져간 물건은 예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것이라고 생각했고, 분명 그렇게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도 소문일 뿐이었다. 무엇 하나 분명한 것은 없었다.

  헤일셤 학생들 사이에 몇 가지 소문들이 돌았는데, 그중 하나가 남녀 기증자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임을 마담에게 증명한다면 그들은 장기 기증을 몇 년간 미룰 수 있으며, 또 몇 연간 함께 살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담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어떤 식으로 증명을 해야 하는지 등에 관한 정보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막연히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생각만 소문으로 흘렀다. 그래서 학생들은 그 소문에 신경을 쓰지 않는 척하면서도 기대를 걸고 서로 연인이 되고자 한다. 토미와 루스는 공공연한 커플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커플이 되기 전부터 토미와 캐시는 무척 잘 통하는 사이였다. 그래서 두 사람이 연인이 될 기회는 여러 번 있었지만, 결국은 토미는 루스와 연인이 되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헤일셤 생활을 마치고 각자의 길로 떠났다가 몇 년 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때 캐시는 유능한 간병사로 유명했고, 토미와 루스는 몇 차례 기증을 한 상태였다. 캐시는 루시의 간병사가 되었는데, 그때 루시가 자신이 두 사람에 서로 좋아하는 걸 알면서도 서로를 갈랐다면서, 토미와 캐시가 다시 만나기를 원하며 힘들게 알아낸 마담의 주소를 알려준다. 이후 토미와 캐시는 연인이 되었고, 기증을 미루기 위해서 마담을 찾아간다.

  그런데 마담을 찾아간 둘은 아주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헤일셤의 비밀과 그들의 운명에 대해서 말이다.                                                    


   정보 없이 이 소설 [나를 보내지 마]를 읽으면서 너무 궁금했던 게, 처음엔 이들은 왜 학교에 모여사는가, 왜 부모가 없는가였고, 장기기증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라는 걸 알았을 땐 이들을 만든 이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어떻게 탄생했는가였다. 이 질문들은 하나를 빼고는 마지막에 가면 다 해소가 되지만, 읽는 동안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처음부터 뒤표지를 읽을 걸.)

     
  또 드는 의문은 헤일셤에 살고 있는 학생들은 왜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자신의 탄생에 대해서 좀 더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탄생이 사회의 하층민에게서 복제되었을 거라는 두려움에 존재의 시원을 밝히는 것을 꺼려했다. 또 정해진 미래에 저항하려고 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런 의문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게 헤일셤의 존재 이유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예술품을 창작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교육을 받았는데도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은 좀 의문스러운 일이다. 또한 왜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도 당황스러웠다.


  한참 생각을 하다 보니, 인간이 [나를 보내지 마]의 클론과 다를 게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조리한 사회가 주어진 환경이라면, 그 안에서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잘 적응하여 오래도록 살아남는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 제대로 된 정보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내 나름대로 생각하고 추측해서 결론을 내리고 행동하는 것. 또한 불확실한 것, 두려운 것은 회피하고 싶은 게 인간이지 않은가. 작가가 클론이라는 소재를 끌어들였지만 결국은 인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작가의 문투도 '~일지 모른다.', '~했을 수도 있다.'라는 확신하지 못하는 추측성 어미를 사용했을 것이다.  


  다 읽고 나서 장기기증을 위해 복제 인간을 만드는 것에 대한 윤리적인 고민을 했다. 사실 캐시와 토미가 마담을 찾아갈 때까지만 해도 사랑으로 그들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했기 때문에, 헤일셤의 비밀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이 문제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고 이 문제까지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내가 캐시나 루시, 토미였다면 어떻게 했을까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싶다. [나를 보내지 마]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싶다. 그 생각만으로 존재에 대한 탐구를 치열하게 해야하니 말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소설, [나를 보내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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