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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비 May 14. 2018

김금희, [경애(敬愛)의 마음]

잘 살아낸다는 건 누군가를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

  오랜만에 김금희 작가님의 소설이 나온다는 한껏 들떠 있었는데, 마침 작가님 소설을 가제본으로 읽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냉큼 신청했다. 바로 [경애의 마음]. 작가님의 첫 장편소설이라니 더 기대. 작가님의 이전의 단편 [너무 한낮의 연애]를 정말 재밌게 읽어서 김금희 작가님께서 쓰시는 장편은 어떨까 정말 궁금했다. 김금희 작가님 특유의 담담한 슬픔이 한 권 가득있는 책일까, 아니면 단편과는 또 다른 느낌의 글일까.


                                                                                       

 작가님의 인스타를 팔로하고 있는데, [경애의 마음]이라는 책인지는 몰랐지만, 어떤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근데 매일 눈물로 글을 쓰시는 것 같아서 참 안타까우면서도 궁금했다. 그런데 [경애의 마음]을 다 읽고 나니 왜 눈물로 쓰셨는지 알 것 같았다. 읽는 동안 내내 마음에 눈물이 찰랑찰랑 차올랐다. 읽는 동안 내내 마음이 감당이 안 되어서 읽다 말다 하다 보니 그렇게 많지 않은 분량인데도 다 읽는 데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경애의 마음]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땐, 경애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의 이야기일 거라고 짐작했다. 막상 받아본 가제본에 '敬愛'라는 한자가 쓰여있는 걸 보곤 '공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에 관한 이야기? 무얼 공경하고 사랑한다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다. 한자말 하나 덕분에 여러가지를 짐작하게 하는 제목. 


  [경애의 마음]은 공상수라는 남자와 박경애라는 여자의 살아감의 이야기이다. 아니 어쩌면 버티는 이야기, 아니면 한 단계를 넘어가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공상수는 반도미싱의 영업사원이지만, 실적이 좋지 않아 회사에서 썩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가 회사를 다닐 수 있는 건 반도미싱의 사장이 상수의 아버지와 골프 친구이자 재수학원 동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근히, 은밀히 상수를 밀어내고 싶어 한다. 회사에선 그저 무능력한 영업직원이지만 퇴근 후의 상수는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바로 '언니는 죄가 없다'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사랑에 상처받은 여자들을 상담해주는 '언니'이다. 오랫동안 언니 행세를 하며 상담을 해주고 있다.



  경애도 회사에서 굉장히 껄끄러워하는 직원 중 한 명이다. 한때 노조의 파업에 참여했던 이력 때문이다. 회사의 부당함에 항의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파업에 참여했는데, 그때 많은 사람들이 해고되었지만 경애는 복직했다. 파업이 흐지부지 끝난 이유가 경애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같은 노동자들도 경애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파업 당시 노조원들 사이에 있었던 성추행 사건에 대해서 경애가 이의 제기를 하면서 파업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사측과 노조 측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아웃사이더. 게다가 경애에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남자 산주도 있다. 자신보다 더 좋은 조건의 여자를 만나 결혼한 산주와 헤어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확실히 다시 시작하지도 못하는 상황. 가끔 이런 산주에 대해서 경애는 '언니는 죄가 없다' 페이지에 상담을 하곤 했다. 


 


  반도미싱의 직원, '언니는 죄가 없다'라는 페이지라는 연결고리 말고도 상수와 경애를 연결하는 고리는 또 하나 있다. 바로 은총 혹은 E라는 친구의 죽음. 상수에게 은총은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주는 친구였고, 경애에게 E는 이야기가 잘 통하는 친구였다. 그런데 호프집 화재사고로 은총이 죽게 되는데, 은총의 죽음은 상수와 경애에게 큰 트라우마, 꺼내놓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경애는 비행과 불량, 노는 애들이라는 말을 곱씹어보다가 맥주를 마셨다는 이유만으로, 죽은 57명의 아이들이 왜 추모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하는가 생각했다. 그런 이유가 어떤 존재들의 죽음을 덮고 그것이 지니는 슬픔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 수 있는가.



  그런데 어느날 상수와 경애는 한 팀이 되고, 떠밀리다시피해서 베트남으로 발령이 난다. 서걱서걱하던 두 사람이 어쩌다 우연히 은총과 서로 친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은총에 대한 기억들을 다시 찾아가면서 두 사람은 세상으로 한 걸음씩 걸어나온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읽어보는 걸로~)



경애는 모든 것을 망쳐놓았다는 죄책감과 그건 절대 자신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자기방어 속에 놓여 있었는데 그 사이를 갈팡질팡하면서도 일관되게 도망가고 싶지 않다고 다짐했다. 사람이 그러면 안 된다는 것, 한번 도망가버리면 다시 방에 웅크리고 앉아 계절들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필사적으로 했다.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마음이 문을 닫았을 때, 차라리 마음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기를 선택할 때 얼마나 망가지고 마는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특별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도 다들 저마다 사연하나 쯤은 가지고 있다고 했다. 점심시간에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지나가는 저 많은 사람들이 내 눈에는 그냥 평범한 직장인처럼 보이지만, 아마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할 이야기들을 덮어두며 살지도 모를 일이다. [경애의 마음]에 나왔던 그 모든 사람들처럼 말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한 동안 누군가의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보다 내 마음이 더 중할까. 그들 마음이 내마음보다 가볍다고 여길 증거가 어디 있는가하고 말이다. 내가 무심히도 지나쳤던 그 마음들, 그냥 지나쳤어도 했나 하고 말이다. 그래도 가장 먼저 챙겨야할 건 내 마음이 아닌가 싶다. 내 마음을 챙기지 못하면 남의 마음고 경애할 수 없으니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새겨두고 싶은 문장들이 참 많았다. 김금희 작가님은 어쩜 그렇게 반짝거리는 문장들을 쓰시는지. 몇 문장만 소개를 하면서 글을 마칠까 한다.

                                                                                             

악의나 호의는 늘 혼재한 채로 등장하니까, 최종적으로 어떤 것이 더 우세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경애는 자기가 인생을 길게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기회라는 것은 그렇게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타인의 불행을 담보로 해서 만들어낸 것은 기회가 아니라 일종의 시험에 가깝다고.

                                                                                                              

*궁금한 것 하나... 아니, 둘쯤..?
- 여기 등장하던 일영은, 성이 이씨일까 궁금했다. 혹시 김중혁 작가님 책 [나는 농담이다]에서 나오던 그 이일영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공상.

- 작가님은 유행어를 쓰는 거에 부담감이 없을까? '언니는 죄가 없다'를 '언죄다'라고 줄이거나 방탄소년단을 'BTS'라고 쓰거나, '얼평'이라는 단어를 쓰는 데에 걱정이 없었는지 궁금하다. 난 개인적으로 지금 유행하는 단어를 글에 쓸 때는 무척 고민하는 편인데, 그건 내가 쓴 글이 나중에 사람들이 못 알아볼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어쩌면 10년 후에도 내 글이 누군가에게 읽힐 수도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작가님의 책은 얼마든지 나중에 읽힐 수도 있는데, 그런 부담감 없이 쓰는지 궁금했다.



#김금희 #경애의마음 #서평 #가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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