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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비 Mar 17. 2020

불량을 내면 사장님도 불량해집니다

  얼마 전에 기아자동차에서 소렌토 신형을 예약 판매하다가 하루 만에 판매중지를 한다는 기사가 났다. 신형 소렌토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로, 구입 시 정부의 세제 혜택이 있을 것이라고 광고를 하면서 예약 판매를 했다. 그런데 완제품이 나오고 보니, 정부의 에너지 소비효율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기아 자동차가 담보한 여러 해택들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결국 기아 자동차는 예약판매를 중지하고, 이미 예약한 고객들에겐 만약 하이브리드로 출시되었다면 받을 수 있었던 세제 혜택을 현금으로 보상하기로 했다고 한다. 최근 기아자동차의 매출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인 데다, 이번 소렌토 예약 중지 사건까지 악재의 연속이라고 며칠 동안 기사들이 쏟아졌다.


  그 기사를 보고선, 좀 걱정되고 안타까웠다. 기아자동차가 걱정되었던 건 아니다. 기업, 특히 대기업은 매입과 매출로 평가받는 곳인데 이렇게 큰 손해라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니까 말이다. 당장 보기엔 기아 자동차가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에선 그게 생산부의 문제인지, 기술개발팀의 문제인지, 혹은 하청업체의 실수인지 어떻게 해서든지 그렇게 만든 사람을 찾아낼 것이다.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끼친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니까 말이다. 다만, 하청업체의 실수일까 봐 그게 제일 걱정된다는 것. 물론 이건 기술적인 문제이니까, 하청업체의 문제는 아닐 것 같다만.


그리고 든 생각은 '기아, 현대 억장 무너지겠군'.  한마디로 말하자면 불량 제품을 생산한 것이고, 불량 제품은 생산 가치가 떨어지니 판매할 수 없고, 그러면 처음부터 새로 작업을 해야 하니 재료비와 인건비, 시간이 두 배로 드는 셈이다. 물론 기아 자동차는 가격을 조정해서 이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자동차를 판매하겠지만. 어쨌든 모든 회사들은 불량률을 낮추려고 노력한다. 그건 우리 공장도 마찬가지.


내가 다니고 있는 공장은 직원의 숫자는 적지만, 현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대부분 10년 이상 근무했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불량이 잘 나지 않는다. 공장에서 가공하는 제품들 80% 이상이 늘 만들던 것이라, 다들 한 눈감고 만드는 수준이다. 처음 만드는 제품일 경우는 샘플 제작을 여러 차례 한 뒤에 일을 시작하기 때문에 대량으로 불량을 내는 경우는 잘 없다. 그럼에도 가끔 불량이 나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도면을 제대로 읽지 않아서 발생한다. 그렇게 불량이 나면 손실이 좀 큰 편이고, 그러면 사장님도 며칠간 불량(?)해지신다.


얼마 전 사장님이 한 며칠 불량해지셨다. 꽤 큰 금액의 불량이 발생한 것. 거래처에서 철재를 절단해서 용접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는데, 그만 도면을 잘못 그린 것이다. 거래처에서 직접 도면을 주고 제품을 의뢰하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 회사에 (나를 비롯해서) 도면을 그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요청한 내용을 회사에서 직접 그려서 제품을 만들어 납품하는 경우가 잦다. 도면은 P과장이 거의 대부분 그리는데, 며칠 몸이 좋지 않아 병가를 낸 탓에 C 씨가 도면을 그렸다. 근데 처음 그려본 도면이라 C 씨가 긴장을 한 건지 도면을 그리면서 숫자를 잘못 써넣는 바람에 모든 제품에 불량이 나버린 것이다. 거래처에서 급히 처리해야 하는 물량이라고 빨리 처리해달라고 요청을 해서 현장 직원들이 이틀 정도 야근을 했던 일이었다. 요청받은 것보다 크게 만들었다면 큰 부분을 절단해서 다시 보내면 될 일인데, 그게 또 요청보다 작게 만들었다. 아, 운도 없지..  그 바람에 철강재를 다시 구입해야 했다. 문제는 최근 코로나19 때문에 중국에서 들여오는 물량이 적어 철강재의 가격도 전보다 오른 탓에 처음 구입했던 가격보다 훨씬 올랐고,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서 현장 직원들이 며칠을 또 야근을 해야 한다는 것. 이로 인해서 본 손실이 직원들 급여보다 많다는 것. 얼마 전 사장님이 직원들 급여만큼 따온 일을 이번 불량으로 퉁치게 되었다. 매출 없이, 거기다 돈을 더 보태서 일을 하게 되었으니 사장님이 불량해질 수밖에. 


그렇다고 해서 사장님이 C 씨에게 배상을 청구하거나, 내일부터 회사 그만 나오라고 하진 않으셨다(다행이지). 다만 내 옆에서 계속 꿍시렁거리시면서 계속 한숨을 쉬시는 것. 그리고 한 며칠. 아침에 C 씨를 볼 때마다 한 2초 정도 시선을 두었다 거두셨다. 흠... 내가 좀 괴롭긴 하지만 그래도 별 일 없이 지나가나 했다. 그런데, 월급날 일이 벌어졌다.


한창 급여 계산을 하고 있는데, 사장님이 나를 부르더니 C 씨의 출근 기록부를 보자고 하시는 것. 그러더니 지각하고 집에 일찍 간 거 다 계산해서 빼라고 하신다. 사장님은 한 20분 정도는 지각하고, 빨리 집에 가는 거에 관대하신 편이다. 그리고 사정이 있어 하루 빠지더라도 주급을 빼진 않으신다. 그런데 이번 불량은 너무 화나서 급여 계산을 칼같이 하라고 명하신 것. 지각 빼고, 조퇴 빼고, 결근 빼고... 그러고 나니 갑근세가 확 줄어든다. 나름 불량에 대한 책임을 물으시는 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중요한 건, C 씨는 그 사실을 모른다는 거다. 정확히는 평소에 급여가 후했다는 것도, 그리고 이번엔 얄짤없이 계산되었다는 것도. 뭐, 어쩌겠나. 그게 사장과 직원의 차이겠지. 


그런데 옆에서 계속 사장님의 꿍시렁거림을 듣고 있자니, 슬슬 내가 그린 도면이 걱정된다. 분명 내가 틀리게 그리면 꾸지람과 잔소리가 사무실 밖 대문까지 들릴 텐데. 흠.. 내가 그린 것 중에 틀린 건 없으려나.. 아직 내가 그린 건 작업에 안 들어간 것 같은데, 다시 확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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