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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진 Oct 04. 2022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D-24

난이도 어려운 시험도, 설레는 로맨틱한 이벤트도 아닌 출산까지 남은 기간이다.


솔직히 무작정 행복하고 기다려진다고 말 못 하겠다. 가끔은 생명을 품은 엄마라면 무조건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을 고대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주변의 기대와 시선이 고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계획 없이, 얼떨결에 생명을 품게 된 것이 아니다. 나는 늘 꿈이 '좋은 엄마'라고 말할 만큼 생명을 품는 순간을 누구보다 기대하고 고대했던 사람이다. 인연만 이어졌다면 더 빨리 결혼해서 더 많은 아이를 낳고 싶은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기다려온 순간이 다가오면 올수록 두렵고 온갖 감정이 교차한다. 





도대체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뭘까. 

내 몸에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정말 많은 감정들이 오가며 롤러코스터를 탔다. 처음에는 무작정 너무 행복했고 감격스러웠다. '내가 드디어 엄마가 된다니' 초음파 사진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난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까 책도 읽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배우고 또 배웠다. 


시간이 갈수록 호르몬으로 인해 예민해지고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사소한 일들이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하루에 5시간만 자도 충분했는데 조금만 움직이면 잠이 왔고 12시간 꼬박 자기도 했다. 살면서 내 몸이라고 느꼈던 몸뚱이가 내 것이 아닌 느낌이 들었다. 점점 배가 불러오고 옷 입기를 좋아했던 나는 원피스만 찾게 됐고, 늘 다이어트로 유지했던 몸매가 망가지고 모든 것들이 생명에 맞춰 변하고 있었다. 





세상은 나에게 뭘 숨기고 싶었던 걸까.

아직 생명이 태어나기도 전인데 덜컥 겁이 났다. 난 무엇을 간과하고 있었던 걸까. 세상은 나에게 무엇을 알려주지 않은 걸까. 내가 임산부에 대해 너무 모르고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닐까. 이 모든 경험과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나의 선택은 달라졌을까. 한 생명을 품고 키우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희생이 있다는 걸 은연중에 알고 있었지만 너무 당혹스럽고 슬펐다. 친정어머니조차 나를 품고 힘들었던 그 시기가 무작정 행복했다고 했으니 말이다. 사실은 정말 힘들고 괴롭고 아팠을 텐데 말이다. 행복할 순 있다. 그러나 행복하다고 해서 힘들고 아프고 서러운 것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공존하고 있는 거니까. 





이제는 좀 더 솔직해져도 되지 않을까.

다행히 생명이 점점 내 몸에서 건강히 크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위로가 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몸뚱이의 희생으로 생명이 자랄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스러웠다. 다만 처음부터 감격스럽거나 모든 변화와 고통이 늘 행복했다고 할 순 없다. 임산부가 되고 나서야 딩크족이 이해가 됐다. 그들은 이미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걸까. 경력 단절 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 온전히 양육자로 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몸의 회복 같은 것 따위를 말이다. 


실제 임산부가 되어서야 느끼고 알 수 있는 것들을 미리 아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나는 이 모든 것을 알고 다시 임신 전으로 돌아가더라도 다시 생명을 품을 생각이다. 다만 혼돈 속에 괴롭고 힘들었던 임신 시기를 좀 더 현명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알 고 있는 어려움을 겪는 것과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는 것은 천차만별이니 말이다. 





몸과 마음을 다해 생명을 품는다는 것

처음 겪었던 억울함과 어려움을 도대체 누구에게 호소할 수 있을까. 세상에 외쳐봤자 메아리처럼 돌아오기만 한다. 그래서 더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임신을 한다는 것은 지극히 사소하고 개인적인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을 품는 엄마는 이 모든 사실을 알고서도 충분히 감당할 마음을 가져야 하고, 함께하는 가족은 그 아픔과 괴로움까지도 함께 나눌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결코 엄마 혼자 모든 걸 감당하고 해낼 만한 간단하고 쉬운 일이 아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출산이 다가올수록 내 머릿속에 선명해지는 문장이다. 내가 몇십 년을 살아왔건 기간과는 상관없이 출산을 하고 나면 모든 삶과 시간이 리셋된다. 내 중심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사라지고 다른 중심이 생기게 되겠지. 결혼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온전히 사랑을 줄 수 있는 관계가 생긴다는 것. 평생 느껴보지 못한 수많은 감정과 기분들이 어떤 게 있을까 기대되고 고대된다. 


살면서 모든 걸 가질 순 없다. 하나를 새롭게 갖게 되면 자연스레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있다. 지금 내가 보내는 이 시기가 그렇다. '이 강'을 건너고 나면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겠지. 가끔은 되돌아오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한 것들에 대한 미련보다 새롭게 얻게 된 것들의 기쁨과 행복이 늘 가득하길. 누구보다 벅차고 가슴 떨리는 마음으로 이 강을 건너가 뒤돌아보지 않고 새로운 삶에 만족하며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는 내가 되길. 그렇게 십 개월간 품어온 생명의 온전한 엄마가 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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