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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진 Aug 17. 2021

어느 날 우리집 안방으로 생명이 들어왔다.


친구가 카카오톡 단톡방에 쏘아 올린 작은 공.


친구의 친구의 회사 동생이 길에서 유기견을 발견했다며 키울 사람을 찾는다는 내용과 영상이었다. 영상에는 흰색 털에 갈색 점박이가 박힌 아주 작고 소중한 아기 강아지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에게 애교를 부리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꽤나 귀여웠고, 심장을 강탈당해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영상을 봤다. 왠지 모르게 그날은 내 심장이 뛰는 소리가 좀 더 불규칙적이었고, 좀 더 특별한 감정이 들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평소에도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고, 강아지를 키우자고 입에 달고 살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어김없이 내가 본 영상을 오빠에게 공유하며 이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말하나 마나 매번 똑같이 "강아지가 귀엽긴 하지만 아직 우리가 키우기엔 너무 벅찰 것 같아."라는 오빠의 말이 귀에 맴돌아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내가 들은 말은 예상 밖이었다.


"우리 나중에 큰 강아지 키우려고 했는데, 이번 기회에 한번 키워볼까?"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이라 놀랬고, 한편으론 기분도 좋았지만 대체 무슨 꿍꿍이로 나를 동요하는 거지? 의심도 들어서 물었다.


"내가 늘 강아지 키우자고 할 때마다 거절했던 오빠인데, 왜 이번에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거야?"  


오빠의 대답이 더 놀랍다.


"어제 자기가 보내 준 영상을 보면서 나도 눈에 자꾸 아른거리더라고, 나도 어제 계속 영상 속 애기가 생각이 났어"


감사하게도, 어쩌면 너무 당연하게도 우리는 강아지를 키우게 됐다. 사실 지금의 "뽀밍"이를 데리고 오기까지 정말 수많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지금은 우리 품에 있는 귀여운 강아지이자 우리의 첫째 딸이기도 하다.



 



우리가 함께 쏘아 올린 뽀밍이란 공.


본가에 '해리'라는 귀여운 강아지를 키운다. 내가 처음부터 케어한 건 아니지만 나름 주인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애기 때부터 강아지를 키우는 건 정말 상상 그 이상이었다.


처음에 데리고 오기 전에는 내 시간을 조금 포기해야 하고, 삼시세끼 내 밥도 안 챙겨 먹지만 강아지 밥은 챙겨줘야 하고, 대, 소변을 못 가리면 따라다니며 치워줘야 하고, 병원에 자주 가서 검사도 받고 주사도 맞아야 하고, 산책도 매일 30분 이상 2번씩 나가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생명을 키운다는 것은 어떤 행동을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감정소비와 모든 집중을 해야 하는 더 큰 일이기도 했다. 바르고 착한 강아지가 되기 위해 교육도 시켜야 하고, 항상 살피며 잘 못된 걸 먹진 않는지, 너무 쳐져있진 않은지, 너무 심심해하면 같이 시간을 보내며 놀아주기도 해야 하고, 아직 잘 몰라서 손이고 발이고 보이는 것마다 깨물 때는 혼내기도 하고 교육도 시켜야 했다.


이제 뽀밍이를 집으로 데리고 온 지 3주가 됐는데, 함께한 3주가 1년처럼 느껴질 정도로 나의 모든 생활과 환경이 변했다. 예상 못했다는 건 거짓말이지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상상 이상이다.

어쩌면 같이 살고 있는 오빠나, 친동생은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느라 뽀밍이를 보기 힘들고, 하루 종일 집에서 재택 하는 내가 모든 걸 다 책임지고 뒤처리를 해야 해서 더 힘들다고 느낀 걸 수도 있다.


처음엔 후회도 많이 했고, 뽀밍이 가 무작정 밉기도 했고 또 아무것도 모르는 뽀밍이가 무슨 잘못이냐며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을 자책하기도 했다. 한편으론 강아지를 키운다는 것이 한 생명을 키우는 것과 같다면, 엄마가 되는 과정도 같은 과정이지 않을까. 감히 가늠도 해봤다.


내 생활 바운더리에 살아 숨 쉬는 생명체가 들어온다는 것은 결코 쉽거나 가벼운 일이 아니다. 나의 것을 포기하거나 내려놓는 수준이 아니라, 나의 삶이 변해야 하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겐 작고 귀여운 강아지 일지 몰라도, 나에겐 책임을 다해야 하는 한 생명체니까. 아이를 5명이나 낳고 싶었던 나에게 정말 큰 배움이자, 깨달음이었다.

그러곤 오빠와 함께 이런 대화를 나눴다.


"아무리 생각해도, 뽀밍이를 데리고 오길 잘한 것 같아. 물론 몸도 마음도 힘들었고, 앞으로도 많이 힘들겠지만, 뽀밍이를 통해서 엄마가 된다는 것이 뭔지 0.001%는 알 것만 같거든. 어쩌면 우리가 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준비된 부모가 되기 위해 뽀밍이가 우리에게 온 걸지도 몰라."


아직은 천방지축이고, 정신 사납고 여전히 여기저기 핥고 주워 먹는 호기심 투성인 2개월 강아지이지만, 같이 늙어가며 서로를 더 이해하고 맞춰가는 과정들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감히 상상해본다. 3주만 됐는데도 벌써 애틋하고 보기만 해도 너무 사랑스러운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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