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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진 Dec 29. 2022

단상

12:12 ~ 12:32


육아휴직맘으로 산지 68일째, 매일 수유하고, 기저귀를 갈고, 잠을 재우고, 집안일을 한다. 그러나 매일 다른 강도와 패턴으로.


똑같다는 말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싱크로율이 100% 맞을 때 똑같다고 하거나, 얼추 비슷한 경우에도 똑같다는 말을 쓰기도 한다. 만약 싱크로율 100%를 똑같다는 기준으로 두면, 나는 같아 보이지만 매일 다른 일상을 살고 있다.


쉬운 예로 육아의 강도부터 다르다. 어느 날은 밥만 먹으면 곤히 자고, 보채지 않는 순한 맛 육아가 있는 반면, 어떤 날은 눕히는 순간 등센서가 발동해 뿌엥 울기를 무한 반복하는 매운맛 육아도 있다. 어떤 날은 밀린 빨래와 설거지와 집안일을 빨리 끝내고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날이 있는 반면, 어떤 날은 집안일만 끝냈을 뿐인데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날도 있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 매 순간을 의미부여하다 보면 매일이 다른 게 아니라 매 순간이 다를 수 있다. 그때마다 나는 늘 다른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20분 글쓰기를 하기로 마음먹고선 시간이 허락해주면 노트북 앞에 앉아 타자를 친다. 오늘 같은 날은 순한 맛 육아에 집안일이 많이 없었던 날인데,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어떤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 생각했던 것들이 온데간데없고 머릿속에 하얘진다.


단상을 붙잡고 싶지만 지나간 단상은 쉽게 찾아와 주지 않는다. 아쉽다. 오늘 쓰려고 했던 주제는 꼭 글로 내 생각을 풀어내고 싶었던 주제였는데 말이다. 그래서 단상을 주제로 잡게 됐다. 어떻게 하면 매일 조금씩 스쳐 지나가는 단상들을 붙잡을 수 있을까.


내일부터는 메모장을 활용해보기로 한다. 갖추어진 문장이 아니어도 괜찮다. 떠올리던 생각을 그대로 작성하고 하루동안 그 주제에 대한 생각을 꺼내본다. 다양한 시각으로 주제를 생각하다 보면 나의 생각이 절로 정리가 되고 정의 주제의 글쓰기를 할 수 있게 된다.


자연스레 전단계로 거슬러가 보면 단상은 어떻게 내 머릿속에 맺힐까? 고민 한다. 사전적 의미의 창조란 '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듦'이라고 되어있지만 그렇다고 아무도 생각 못한 것으로부터 시작하라는 뜻은 아니다. 창조를 위해선 많은 레퍼런스와 경험과 인풋이 필요하다. 똑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 순간이 다른 나의 일상이 나에겐 레퍼런스이자, 새로운 경험이자 인풋이었다.


매일매일 이렇게나 다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아기는 폭풍 성장 중이다. 소통이 어렵다 보니 얼른 성장해서 더 많은 걸 공유하고 싶다가도, 이 순간은 돌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매 순간을 붙잡게 된다. 조금 더 들여다보고 조금 더 관심 있게 관찰하고 지켜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하루 한 시간 일분일초가 소중하게 느껴지고 피부로 모든 시간을 느낀다. 이때 느끼는 모든 인풋들이 나에게 단상이 되어 가슴에 맺힌다.


매일 주어지는 하루가 감사한 적은 있었으나, 흐르는 시간을 붙잡고 싶을 만큼 매 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고 남기고 싶은 적은 처음이다. 모든 단상이 앞으로 나의 새로운 창조물이 될 거라 확신한다. 그 단상들을 붙잡으려 분주하게 다양한 기록으로 남긴다. 기억은 사라지더라도, 기록은 남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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