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티비 프로그램 보는 걸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커플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엄청 좋아하는데, 예를 들면 나는 솔로, 돌싱글즈, 너는 내 운명, 동상이몽 같은 걸 좋아한다. 반면에 나는 티비 보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예능 보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빠가 가끔 같이 보고 싶어 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면 내가 안 들리게 이어폰 끼고 보라곤 하는데, 막상 같이 보게 되면 오빠는 먼저 자고 나 혼자 밤새도록 프로그램 끝날 때까지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에 빠지면 미친 듯이 빠지는 사람 나라구. 출산 전엔 오빠가 예능 보는 시간에 나는 블로그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게임을 했다. (TMI : 원래는 해리포터 게임을 했는데, 팬심으로 하기엔 너-무 재미가 없어서 스도쿠에 빠졌다가 최근에는 루미큐브에 완전 미쳐있다. 보통 숫자 게임이나 머리 쓰는 게임을 즐겨하는 편이다)
하루는 피곤했는지 오빠가 같이 보고 싶다고 했던 동상이몽을 침대에 누워서 같이 보다가 혼자 잠들었다. 선잠이었는지 금방 깼는데, 오빠가 엄청 울고 있었다. 완전 놀래서 무슨 일인지 봤더니 강남이랑 이상화 결혼하는 영상을 보며 울고 있었다. 오빠는 남들이 결혼하는 영상을 보면 그렇게 눈물이 난단다. 자기의 미래가 상상이 되기도 하고, 어떤 기분일까 대입하면서 보면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고,,, 이러다 우리 결혼에서 오빠가 엄청 펑펑 우는 거 아닌가 몰라. (실제로 우리 결혼식 때 신부 등장부터 끝까지 신랑 혼자 울었다. 하객들이 신랑 무슨 사연 있냐고 할 정도) 몇 달이 지나 전진이 결혼하는 영상을 보고 또 눈물을 흘리는 걸 봤다. 나는 엄청 무뚝뚝한 경상도에서 자라서 내 주위 남자(아버지, 남동생)들이 우는 걸 잘 못 봤는데, 오빠가 우는 건 10번도 넘게 본 것 같다.
처음에 오빠가 내 앞에서 눈물을 흘렸을 때가 기억이 난다. 청담동 이름 모를 아파트 놀이터 벤치였는데, 대화의 시작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쩌다 보니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했던 오빠의 오랜 고민을 털어놨었다. 기나긴 오빠의 생각과 감정들을 쏟아 놓을 때 말없이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선 다 괜찮다며 오빠의 부족한 점은 내가 채울 테니 지금까지 우리가 서로를 채워왔듯이 걱정하지 말라고, 서로 잘 맞춰서 살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오빠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아주 목을 놓고 펑펑 울었고 내가 눈물을 닦아 주며 꼭 안아줬었다. 감정을 한 번 비워내고 우리는 더 돈독해졌고, 그때부터 오빠의 감정도 더 솔직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내가 같이 살고 있는 오빠는 자신의 감정을 잘 알아채는 사람이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다. 또 나쁜 행동이나 태도로 드러내지 않고 대화로 잘 전달하는 사람이다. 결혼이라는 것은 평생 각자의 감정을 공유하고 영향을 받고 또 영향을 주는 행위이기도 하다. 여전히 서툴고 어렵지만 지금처럼 솔직한 감정을 잘 전달한다면 우리에게 큰 어려움이나 시련은 없지 않을까. 언제나 오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내줘서 참 고맙다. 가끔 나를 놀라게 하기도 하지만 또 귀엽고 사랑스러운, 감정이 참 풍부한 오빠의 매력에 오늘도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