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32

San Martín del Camino→Astorga

by 안녕
Day 30.
Thursday, June 25


눈 뜨자마자 화장실, 또 설사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다들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먼저 일어나 준비했다. 7시쯤 나섰는데 알베르게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덧 20분이다. 춥진 않았지만 목이 계속 아픈 게 불안하다.

오늘도 차도를 따라 걸으면서 간식을 먹었다. 한국에서라면 손도 안 대었을 초꼬라떼 비스킷을 샀는데 너무 맛있다. 여기선 흔한 가예따스지만 열량도 보충되고 맛도 보장되니 필수품이 될 것 같다. 천천히 걸으면서 간식을 먹을 수 있는 이런 여유로움이 좋았다. 배낭에서 꺼내 먹으려면 번거롭기도 하고 배낭을 내리고 쉴 곳이 없으면 간식도 포기해야 했다. 스틱을 포기하니 양손이 자유롭고 간식 봉지를 허리에 매달고 가다가 수시로 꺼내 먹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전날의 루트와 이어져 아름답고 인상적인 오스삐딸 데 오르비고에서 만나게 된다. 이 여정은 두 가지 루트로 나뉜다. 산 마르띤 델 까미노에서부터 아스또르가까지는 24km로 전날의 여정과 비슷하다. 반면 비야르 데 마사리페에서 아스또르가 까지는 29km에 이른다. 두 루트 모두 까미노가 평탄하여 보행에 큰 어려움은 없다. 그러나 비야르 데 마사리페 루트는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 이상을 움직여야 하므로 평소보다 여정을 일찍 시작해야 한다. 두 개로 나뉜 까미노는 오르비고 다리를 건너기 전에 하나로 합쳐지지만 마을의 출구에서 다시 나뉜다. 산 후스또 데라 베가를 가기 전 다시 성 또르비오의 십자가에서 하나로 합쳐져 아스또르가까지 이어진다.




비야르 데 마사리페 루트,
비야당고스 델 빠라모로 향하는 도로를 건너 마을을 빠져나오면 드넓은 밀밭 사이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야 한다. 이곳에서 비야반떼까지 라스 만띠야스라는 목축 개발지역을 지나 빠라모 운하를 지나고 산 마르띤 델 까미노로 이어지는 길을 지나야 한다. 이 길을 지나면서 까미노는 원래의 부드러운 흙길로 변하고 평화롭게 펼쳐진 평원을 볼 수 있다. 비야르 데 마사리페에서 10km 정도 떨어져 있는 비야반떼에는 바르와 띠엔다 외에는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없다. 까미노 사인은 마을의 입구로 연결되어 있지만 마을의 시설을 이용할 생각이 없다면 직진해서 마을 왼쪽의 버드나무 숲 사이로 지나는 철길을 지나쳐도 좋다. AP-71 도로의 위를 지나는 육교를 건너 직진하면 오스삐딸 데 오르비고에 들어가게 된다. 공장지대를 지나서 N-120 도로를 건너면 유명한 다리가 나온다. 마을의 출구에서 순례자는 레알 까미노를 따라 산 마르띤 델 까미노 루트로 갈아탈 수 있다. 그러나 아침 일찍 비야르 데 마사리페에서 15km 넘게 걸어온 순례자에게는 짧은 거리의 루트가 절실하다. 마을 출구의 표지판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까미노를 따라서 N-120 도로와 나란히 길을 걷는 것을 추천한다. 이곳에서 성 또르비오의 십자가 부근까지 걷는 까미노에는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이윽고 까미노가 합쳐지면 산 마르띤 델 까미노 루트의 레알 까미노를 따라 아스또르가에 도착한다.




산 마르띤 델 까미노의 출구는 빠라모 운하 위를 지난다. 운하를 지난 순례자는 N-120 도로의 오른쪽으로 나란히 이어지는 까미노를 걸어야 한다. 이곳에서 두 개의 루트가 합쳐지는 오르비고 다리까지는 8km 정도다. 중간에 하나의 운하를 더 넘는 것을 제외하고는 드넓은 농경지와 들판, 시원하게 뻗어있는 물푸레나무의 그늘만이 있다. 이윽고 마을의 초입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N-120 도로와 멀어진다. 9시쯤 오스삐딸 데 오르비고에 도착했다.




Hospital de Órbigo (822M)는 오르비고 강이 흐르고 울창한 검정 버드나무와, 신선한 사탕무, 감자, 과일이 자라는 곳이다. 이곳은 다리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마을로 나뉘어 있다. 이 다리는 로마 시대에 처음 축조되어 여러 시대에 걸쳐 변형되었으며 까미노 데 산띠아고에서 가장 긴 다리이기도 한다. 또한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기사도 정신이 발휘된 곳이다. 이곳은 풍부한 역사적 사건들을 잊지 않으면서도 여러 세대에 걸쳐 순례자를 위한 중요한 마을로 변했다.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은 송어요리다. 그중 송어 수프가 가장 유명하다. 3월에 열리는 송어 식도락 축제에서는 튀김, 훈제, 식초 절임, 월계수 잎 절임 등으로 다양한 송어요리를 맛볼 수 있다.

Puente del Passo Honroso
명예로운 걸음의 다리는 여러 시대에 걸쳐 만들어진 스무 개 남짓한 아치로 건설된 다리다. 최초의 이름은 알 수 없고 돈 수에로 기사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결투를 치렀다는 이야기에서 다리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가장 오래된 것은 13세기의 아치다. 다리 중간에는 아직까지 당시의 사건을 설명하는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Iglesia Parroquial de San Juan Bautista
예루살렘의 성 요한 기사단에 속해 있던 세례자 요한 성당은 현대에 재건축되었다. 오늘날도 파사드에서 찬란히 빛나는 기사단의 십자가를 볼 수 있다.

기사의 약속
후안 2세 시절에 기사 돈 수에로 데 끼뇨네스는 그의 연인인 도냐 레오노르 데 또바르와 기묘한 약속을 했다. 그녀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 매주 목요일 목 칼을 차고 다니기로 한 것이다. 만약 약속을 어기면 300개의 창을 부러뜨리거나 오르비고 강 위의 다리에서 한 달 동안 결투를 하기로 했다. 돈 수에로는 이 약속을 지키는데 지쳐서 싸움을 허락해 달라고 왕에게 요청하고 유럽 전역에 있는 여러 명의 기사들에게 자신이 목 칼을 벗을 수 있게 도와달라는 편지를 썼다. 이에 수많은 기사들이 싸움에 참가해서 그의 편에 서기도 했고 그와 맞서 싸우기도 했다. 1434년 7월 10일부터 8월 9일까지 7월 25일 성 야고보의 축일을 제외하고 약속대로 한 달간 창 싸움이 이어졌다. 수많은 창이 부러졌고 기사들 중엔 부상자도 있었고 한 명은 사망하기까지 했다. 마침내 결투가 끝나자 돈 수에로는 목 칼을 벗었다. 그 후 그는 자유의 상징인 도금된 은 족쇄를 성 야고보에게 바치기 위해 산띠아고로 순례를 떠났다. 현재에도 산띠아고 대성당에는 그가 바친 족쇄가 보존되어 있다. 이 결투 중에 사망한 한 명의 기사는 기독교식 무덤에 잠들 수 없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가톨릭이 이러한 종류의 결투를 인정하기 않기 때문이었다. 돈 수에로는 24년 뒤 이 다리 위에서 또 다른 결투를 하다가 다른 기사의 손에 죽었다. 이곳에서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돈 수에로가 벌인 결투를 기리는 축제가 매년 6월의 첫 번째 주말에 열린다. 이때에는 도시 전체를 중세 식으로 꾸며놓고 중세식 시장을 열고 마을의 사람들이 중세 복장 축제를 즐긴다.




오스삐딸 데 오르비고의 알베르게는 편안한 시설을 자랑한다. 단지 공립 알베르게는 까미노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조금 불편하고 겨울에는 찾는 순례자가 적어 혼자 잠을 청해야 할 수도 있다. 마을의 출구에서 까미노는 양쪽으로 갈라지는데 레알 까미노를 걷기 위해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까미노는 구 시가지와 소박한 평원과 농경지를 지나는 아름다운 길로 이어진다. 중간에 오른쪽으로 산 펠리스 데 오르비고로 이어지는 길을 지나치면 비야레스 데 오르비고에 이르기까지 북서쪽으로 루트가 이어진다.




산 후스또 데라 베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샛길들이 있지만 노란 화살표는 충실하게 안내한다. 비야레스 데 오르비고에서 산띠바녜스 데 발데이글레시아스까지 걷다 보면 세탁소와 과수원을 만나게 되고 마을에 들어서면 나무 사이로 이어지는 돌길을 따라 언덕을 올라간다.

계속되는 까미노를 따라 걸었고 10시쯤 산띠바녜스 데 발데이글레시아스에 도착했다.




Santibañez de Valdeiglesias (850M)에서 시작된 평원은 언덕을 지나 레온 산과 뗄레노 산으로 이어진다. 이 마을에는 순례자를 위한 시설은 부족하지만 까미노의 유산을 볼 수 있는 성당이 있고 땅 밑에 있다가 열세 개의 돌계단을 지나오는 샘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Iglesia Parroquial de la Santisima Trinidad
산띠시마 삼위일체 교구 성당에는 순례자 성 로께와 무슬림을 물리치는 산띠아고를 비롯해 수많은 성인 상들이 있다.




마을 초입의 레알 거리를 지나면 알베르게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순례자는 오른쪽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이 마을의 샘은 언제나 휴식을 취하는 순례자의 배낭으로 분주하다. 마을의 출구에는 근사한 포도밭이 까미노 주위를 지켜주며 여기에서 뒤를 돌아보면 오르비고 계곡을 볼 수 있다. 이제 눈앞에는 포도나무와 밀밭이 넘실대고 버드나무와 소나무, 떡갈나무가 우거진 숲을 따라 부드럽게 이어진 까미노를 볼 수 있다. 중간에 내리막 너덜지대를 조심해서 지나면 이 길의 끝에는 성 또르비오의 십자가가 있다.

산띠바녜스 데 발데이그레시아스 마을로 들어가지 않고 계속 직진을 했는데 걷다 보니 혼자가 되었다. 노란 화살표가 보이는 걸 보니 마사리페 루트를 걷고 있던 거였는데 아무도 없으니 조금 무서웠다. 봄에 아스또르가 부근에서 순례자가 실종되었다는데 아직 그녀를 찾지 못했다고 들었다. 한참을 홀로 걷다가 12시쯤 산또 또리비오 십자가를 지나면서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되니 너무 반가웠다.

이 부근에서 까미노는 비야르 데 마사리페 루트와 합쳐지며 멀리 아스또르가가 보인다. 포도주 저장고가 있는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아스또르가에 들어가는 순례자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산 후스또 데 라 베가에 도착한다.




San Justo de la Vega (849M)는 순례자와 관광객에게 완벽한 시설을 제공하는 곳이다. 마라가떼리아 지방의 수도인 아스또르가 인근의 마을이며 국도의 샛길에 위치해 있다. 이 마을은 대도시에 들어서기 전 조용한 휴식을 선사하다.

성인 후스또와 그의 형제였던 성인 빠스또르가 이 마을에서 출생하여 마을의 이름을 따왔다. 반(反)나폴레옹 국민운동의 중심적 지도자였던 스페인의 정치가 호베야노스의 기록에 따르면 이곳은 18세기에 프란시스코회 수사복을 만드는 산업이 번성했다고 한다.

Iglesia de los Santos Justo y Pastor
산또스 후스또와 빠스또르 성당은 16세기에 지어진 성당으로 이후 여러 번 개축된 흔적이 남아있다. 성당의 내부에는 그레고리오 에그빠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성 후스또 조각상이 있다.

Crucero de Santo Toribio
5세기의 아스또르가 주교였던 성 또리비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아스또르가에서 추방당했다. 그는 아스또르가로 향하는 높은 언덕에 앉아 샌들의 먼지를 털면서 아스또르가 소유라면 먼지도 가져가지 않겠다! 고 말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주교가 누명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된 아스또르가 사람들은 이 언덕에 그를 기리는 십자가를 세웠다. 이 십자가는 성 또리비오와 성모를 상징하는 석조 작품으로 이 십자가가 세워진 이후 작은 성당이 생겼고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기 시작했다. 십자가가 세워진 언덕에서는 아스또르가를 한눈에 볼 수 있고 전망이 좋아 레온 산을 배경으로 뜨루에르또 강이 또렷하게 보인다.




산 후스토 데 라 베가에서 도로를 따라 직진했는데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가 버렸다. Camino가 길이란 뜻인데 산띠아고 가는 길인 줄 알고 따라갔던 거였다. 도시에서도 노란 화살표를 따라가야 한다. 다행히 마을 끝자락에서 순례자들을 다시 만났다.

마을의 출구에서 철제로 만들어진 다리로 뚜에르또 강을 건너게 된다. 얼마 후 까미노는 오른쪽으로 내려가다 N-120 도로와 나란히 걸어 공장지대를 지나게 된다. 까미노는 오래된 중세시대의 다리로 이어지고 다리를 건너 가파른 길을 오르면 아스또르가 구 시가지가 나온다.




Astorga (873M)는 다양한 양식의 예술적 유산과 풍부한 역사가 살아있다. 까미노 데 산띠아고의 중요한 기념물이 많이 존재하고 있어서 어느 방향으로 도시를 나가든 매력적인 풍경과 훌륭한 건축물들을 볼 수 있다. 순례자는 아스또르가부터 Ruta del Oro (금의 길) 같은 역사와 예술의 길을 가볼 수도 있고 Ruta del Fervon del Diablo나 Ruta de la Cascada de la Fervencia를 따라 뗄레노 산을 오를 수도 있다. 아스또르가를 지나는 순례자라면 반드시 이 도시를 대표하는 두 가지 음식을 맛볼 것을 추천한다. 하나는 Cocido Maragato인데 이것은 9가지 정도의 고기와 Garbanzos (병아리콩) 요리와 수프 등이 나오는 전통 음식으로 특이한 점은 보통 식사와 반대 순서 즉 고기를 먹고 그다음에 나머지 곁들인 음식을 먹는다는 점이다. 두 번째 대표 음식은 버터가 들어간 과자 Mantecadas.

Catedral de Santa Maria
산따 마리아 대성당은 아스또르가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이자 로마네스크와 고딕, 바로크 양식이 혼합되어 있는 최고의 성당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을 확장하면서 고딕 양식이 되었는데 아직도 로마네스크 양식의 요소가 남아 있다. 성당의 제단부는 고딕 양식, 파사드는 바로크, 위엄의 성모상은 12세기, 스테인드글라스와 주제단화는 16세기의 작품이다. 성당 내부의 아름다운 위엄의 성모상은 스페인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모상이다. 합창단석의 조각 중엔 카드놀이를 하면서 파이프를 물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이 조각은 Colon (콜럼버스)이 처음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지 불과 25년 후에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은 유럽인들의 흡연 습관을 보여준 최초의 작품이다.

Palacio Episcopal
주교궁은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한 환상적인 현대 건축물이다. 원래 주교의 거처로 건축되었으나 오늘날엔 까미노 박물관으로 사용된다.

Ayuntamiento
에스빠냐 광장에는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파사드, 끌라비호 전투의 군기가 소장되어 있는 아스또르가 시청과 쌍둥이 탑, 도시의 상징인 시계탑이 눈에 띈다. 시계에는 마라가떼리아 식으로 입은 두 사람이 망치로 종을 치는 모습이 형상화되었다. 이 두 사람은 꼴로사와 후안 산꾸다라는 두 인물로 이 시계는 정시는 알려주지만 15분, 30분, 45분은 알려주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 시계를 만든 장인이 인색한 도시 주민들을 비웃으며 ‘시간은 알려주지만 15분은 알려주지 않겠다’ 라고 결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Muralla Romana
도시에 남아 있는 성벽은 로마인들이 회반죽과 돌로 지은 성벽을 13세기에 보수한 것이다.

성 프란시스꼬 아씨시
산티아고로 순례를 가던 성 프란시스꼬는 지치고 병든 상태로 아스또르가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극진한 보살핌을 받아 건강이 회복된 성 프란시스꼬는 다시 힘을 내어 까미노를 떠났다. 도시 유력자들은 뒤늦게 성 프란시스코가 아스또르가에 머물렀다 떠났다는 사실을 알고 라바날 델 까미노까지 전령을 보내 그에게 아스또르가로 돌아와 수도원을 세워 달라고 부탁했다. 성 프란시스코는 이 부탁을 수락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제자 중 한 명을 보내 성 프란시스꼬 수도원을 설립하게 했다. 자신을 대신하여 제자를 보내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하는 성 프란시스꼬의 편지가 독립전쟁 때까지 문서 보관소에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단의 순례자
아스또르가는 가톨릭 교회 최초의 이단자인 쁘리실리아노가 처형당한 곳이라고 한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추종자들이 가톨릭 교회의 박해를 피해 시신을 수습하여 그의 고향인 갈리시아까지 옮겼는데, 그들이 거쳐 간 길이 까미노 산띠아고와 같은 길이었다. 이러한 이유가 산띠아고 순례길이 폭발적으로 번성한 것의 진짜 이유라는 전설이 있으며 그를 추종하는 이단의 기독교도들이 산띠아고 순례를 가장하여 은밀하게 쁘리실리아노의 무덤을 찾아 순례했다고 한다. 주위를 잘 살펴보면 순례자를 가장한 쁘리실리아노의 추종자들이 당신의 주위를 서성일 지도 모른다.




13시 반 언덕길을 오르니 순례자 동상이 있는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오늘은 긴 거리를 걸었지만 어제에 비하면 빨리 도착한 셈이다. 세요를 받고 4인실을 배정받았는데 위쪽 침대라는 말에 순간 멍하니 있으니 같은 방에 한국인 2명 있다고 위로해서 가보니 H와 J였다. 또리비오 십자가 부근에서 과일 좌판이 있었다고 자랑한다.

여기 알베르게가 너무 좋았다. 주방은 좁지만 취사 가능하고 별도의 룸에 식탁이 따로 있는데 테이블이 있는 베란다까지 추가로 있어서 아쉬움이 없었다. 높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어서 입구는 1.5층이지만 주방으로 가려면 건물 뒤쪽 지하로 내려가야 하는데 건물 뒤편에서는 언덕이라 전망이 좋았다. 주방 옆문으로 나가서 한 층을 내려가면 빨래하는 룸이 따로 있고 가파른 철계단을 내려가면 그 끝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야외 테라스에 별도의 빨래터가 있었다. 시야가 뻥 뚫려있어 전망도 끝내준다. 여기서 며칠이고 머물렀으면 좋겠다. 여기서 오스삐딸레라를 할까?

난 파스타를 만들었고 H와 J는 해물탕을 만들어서 전망 좋은 베란다에서 같이 먹었다. 까마득하게 펼쳐진 도시를 내려다보며 레몬 캔맥주를 마시니 정말 여유로웠다.

Alimerka에 다녀왔으나 간식이 많이 남아 있어 예쁜 통에 담긴 생수 한 병만 사 왔는데 냉장고에 리브레 생수가 두 병이나 들어있었다.




San Martín del Camino→Astorga 24.0km

○San Martín del Camino (866M)
●Puente de Órbigo (823M) 6.8km
●Hospital de Órbigo (822M) 1.1km
-Puente del Passo Honroso
-Iglesia Parroquial de San Juan Bautista
●Villares de Órbigo (827M) 2.2km
●Santibañez de Valdeiglesias (850M) 2.5km
-Iglesia Parroquial de la Santisima Trinidad
●San Justo de la Vega (849M) 7.6km
-Iglesia de los Santos Justo y Pastor
-Crucero de Santo Toribio Palacio Episcopal
●Astorga (873M) 3.8km
-Catedral de Santa María
-Palacio Episcopal
-Ayuntamiento
-Muralla Romana
-San Marcos

260.5km/765.0km




Albergue Publico de Peregrinos Siervas de María -5.00€
Mineral Agua 1.5L -0.26€




탄산수, 초코 비스킷, 사과, 땅콩
망고주스, 오렌지주스, 우유
레몬 맥주, 파스타, 해물탕, 밥
(캔맥주 2, 바게트, 쌀과자)


Cocina
Refrigerador
WIFI
Supermercado Alimer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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