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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마운틴 Oct 28. 2021

초등적응은 끝난 줄 알았더니

출근하자마자 아이가 울면서 전화를 했다


출근하고 자리에 앉아서 업무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이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8시 40분. 평소라면 교실에 들어갔어야 할 시간인데 무슨 일인가 싶어 깜짝 놀라서 받았더니 아이가 울면서 말한다.


엄마, 친구들은 먼저 학교에 다 갔고 오늘 지각하게 생겼어. 나 학교가기 싫어. 너무 무서워.


점순이는 아침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내가 집을 나선 7시 50분쯤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치고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옆에 계신 할머니를 바꿔달라고 하고서 왜 늦었냐 물었더니 아침에 아이아빠가 늦게 준비를 했단다. 우리집은 7시 50분 엄마 출근하고 8시 20분 점꽁자매 (점순이는 학교, 꽁꿀이는 어린이집) 와 아빠가 함께 출근 (할 때 할머니가 도와주신다) 한다. 아빠 차를 타고 아파트 입구에 내려서 점순이는 친구들을 만나서 함께 등교하고 꽁꿀이는 그대로 아빠 차를 타고 15분 정도 가서 (다른 동네의) 어린이집에 간다.


점순이는 친구들과 25분쯤 아파트 정문 입구에서 만나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3~4분 늦게 도착했고 점순이의 절친 지은이 (가명입니다) 가 평소 할머니랑 나오다가 아빠랑 나오게 됐는데 지은이 아빠는 아이들 지각할까봐 지은이와 희수에게 먼저 가라고 했고 그래서 나머지 두 친구가 먼저 출발해버린 것이었다. 나도 이미 출근한 상태라 갑자기 달려갈 수도 없고 해서 어머니께 부탁을 드리고 어찌 어찌 전화를 끊었는데 지은이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 남편이 오늘 애들 지각하지 말라고 먼저 가라고 했다네요 ㅠㅠ 어쩌죠... 미안해요' 라고. 지은이와 희수는 점순이의 절친이고 특히 지은이랑은 엄마들끼리도 자주 연락하고 만나는 사이이다. 생각해보면 지은이엄마가 사과할 일도 아닌데 점순이는 친구들이 자기를 안 기다리고 연락도 없이 그냥 가버린 게 무척 속상했던 것 같다. 이전에 희수가 늦었을 때는 같이 기다렸다가 출발을 했기에 오늘도 친구들이 자기를 기다렸을 거라 생각을 했는데 평소에 안 나오던 지은이 아빠의 등장으로 지은이 아빠는 좋은 뜻으로 '늦으면 안 되니까 일단 먼저 가' 라고 한 것이 점순이에겐 자신만 남겨진 서러운 일이 되고 말았다.


지은이엄마와 서로 상황을 이야기하고서 나는 괜찮다고, 오해가 있었던 것이고 점순이가 규칙을 어기는데 대한 불안감이 높은 편이라 더 놀란 것 같고 그냥 거쳐가는 경험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이가 울면서 전화를 했을 때는 직장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지금 당장에라도 달려가고 싶었지만 옆에 할머니도 계시고 지은이아빠도 있어서 아이를 등교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심지어 아파트 입구에서 3분만 걸어가면 학교 정문인데)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도 업무에 집중했다.


오늘 집에 돌아가서 아이를 꼭 안아주어야 겠다. 친구들이 먼저 간 상황에서도 씩씩하게 학교에 가줘서 고맙다고. 벌써 1학년 겨울방학이 두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어린이집에서 뛰어놀기만 하다가 못 앉아있으면 어떡하나, 친구는 잘 사귈까, 학습은 잘 따라할까 등 오만가지 걱정을 했는데 어느덧 적응해서 초등생 언니가 되어버렸다. 그 과정 하나하나 내 눈으로 보고 겪고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았고 또 8월에 나도 복직을 해서는 나도 자아실현 (+월급) 을 하며 아이와 함께 성장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점순아, 잘했어. 오늘도 잘했고 앞으로도 잘할 거야. 그렇지만 늘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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