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드라마 <닥터포스터>를 원작으로, 나이들어도 우아한 배우 김희애를 주연으로 해서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부부의 세계> 가 16회 중 14회까지 공개되었고 이제 딱 2회분만 남았다.
평소 드라마를 잘 안보는데 어느 토요일이었나 아이들을 재우고 우연히 <부부의 세계> 2회를 보게 되었다. 민현서가 남자친구에게 데이트폭력을 당하는 장면이 너무나 사실적이고 충격적이었고 지선우 (김희애) 가 낮에는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고 저녁에는 집에 와서 요리를 하고 아이를 챙기는 장면을 보며 그냐의 고충이 평범한 워킹맘인 나의 어려움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걸 느끼면서 이 드라마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6회까지 내용을 보면 주인공 지선우는 남편의 외도를 알아차리고 이를 상간녀의 부모와 지선우 부부가 식사하는 자리에서 폭로한다. 그 후, '내 인생에서 이태오만 깨끗히 도려내겠어' 라는 선우의 대사처럼 선우는 남편이 그녀로 인해 가질 수 있었던 모든 경제적 이득을 몰수하고 하나뿐인 아들의 양육권도 지키면서 멋지게 '이혼' 에 성공하는 모습이 시청자들, 특히 여성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7회부터 선우는 같은 병원 정신과 의사인 김윤기의 지지를 받으며 아들과 잘 살아가는 듯 하지만 드라마의 주 무대인 가상의 도시 고산을 떠났던 남편과 그의 새아내 (전 상간녀) 가 돌아오면서 일상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전남편 이태오는 장인의 재력과 권력을 이용해 전부인인 선우를 병원 부원장 자리에서 끌어내리려 하고, 현서의 남자친구 인규를 이용하여 선우를 협박하기까지 한다. 그러다가 인규가 갑자기 고산역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나고 태오는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지만 선우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그 사건을 계기로 태오는 선우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 다시 그녀에게 질척거리기 시작하고 (이 단어보다 더 고급스러운 어휘를 쓰고 싶은데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다^^) 아들 문제로 태오가 선우의 집을 오가던 어느날 밤, 와인에 취해 둘은 하룻밤을 보낸다.
이쯤 되면 진짜... 바람나서 이혼하고 상간녀와 재혼한 남편이 다시 전부인에게 치근대고 또 전부인인 선우도 기분에 취해 전남편과 갑자기 스킨십이라니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싶었다. 작가가 '부부라는 관계가 이혼한다고 해서 깔끔하게 끊어지는 게 아니고 그 안에 복잡한 감정이 얽혀있다' 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건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아무리 취기에 한 행동이라도 갑자기 태오와 하룻밤을 보낸 선우의 감정선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내가 아직까지 촌스러운 대한민국의 아줌마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 장면에서 선우의 내면을 좀더 촘촘하게 보여줬더라면 캐릭터의 감정에 좀더 몰입할 수 있었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선우와 태오는 부모의 이혼으로 큰 충격을 받고 사춘기가 겹쳐서 도벽에 학교폭력까지 저지르는 아들 준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주 연락을 주고받게 된다.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는 중2병을 앓고 있는 준영은 같은 반 친구 해강을 폭행한데다가 친구들의 물건을 훔쳤다는 의심까지 (친구들은 아직 의심 단계이지만 드라마를 보면 실제로 친구들의 물건을 훔친다) 받게 된다. 하필 학교폭력 피해자인 해강의 엄마와 선우는 사이가 나빴고 그러다 보니 피해자의 선처를 바라기도 매우 힘든 상황으로 흘러가면서 선우는 이 모든 게 자신이 아이를 잘못 키운 탓인 것 같아 마음이 무너진다.
출처 :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 공식홈페이지 포토갤러리
그런데 준영이의 학교폭력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을 보면서 드라마 작가가 부부 관계를 그리느라 바빠서 또는 극적인 효과를 노리기 위해 학교에 관한 부분은 제대로 사실검증을 안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단 준영의 담임교사가 가해자 부모인 선우에게 '학폭위 (학교폭력위원회) 가 열리기 전에 합의하시는 게 좋을텐데요' 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는 학교폭력이 신고 접수되면 담임교사는 이에 대해 어떤 식으로도 개입해서는 안 되며 보통 학교폭력 업무 담당교사가 양쪽에 연락을 취한다. 피해자와 합의를 했거나 피해자가 선처를 바란다면 이것이 학교폭력위원회에서의 가해자 처벌 수위에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담임교사 포함 그 누구도 학교폭력에 대해 개인적으로 개입하지 못하기에 담임교사가 쌍방의 합의를 권유하는 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학교폭력 사안에 따라 수위가 낮으면 위원회를 열지 않고 담임 종결 또는 학교장 종결 사안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드라마를 보면 피해자인 해강이가 전치2주 이상의 진단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므로 이 상황에서는 반드시 학교폭력위원회를 개최해야한다.
드라마를 보면서 갑자기 직업병이 발동하여 학교 폭력 관련하여 팩트체크를 한다는 게 좀 웃기긴 하지만 (나도 참 어지간하다...ㅎㅎ) 일단 설정된 상황과 현실이 차이가 크기에 그에 대해 글로 쓰고 싶었다. 매해 업무배정 시즌이 돌아오면 선호하는 업무와 기피하는 업무에 따라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데 학교폭력 업무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기피업무이다. (내가 현재 하고 있는 행정업무도 다섯 손가락 안에 포함^^) 가정과 학교에서 인성교육을 제대로 해서 학교폭력 사안이 조금이나마 줄어들기를 바랄 뿐이다.
(2편에서 계속...)
*2편에서는 부모의 이혼과 그 이후의 일들을 지켜보고 괴로워하는 준영이의 관점에서 드라마를 분석해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