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안개 바깥, 카르텔

Dancing with monsters 6

by Dolphin knows

카르텔이라는 단어.

'메데인 카르텔'의 수장이었던 콜롬비아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 정도는 되어야

그런 걸 만들 수 있어 보였다. 혹은 정치거물이거나 기업 정돈 운영해야 하거나.

일단 내가 그 단어와 연결되려면 좀 '거물'이거나 '요긴'해야 하는데

아무리 살피고 뒤져도. 나란 사람은 누군가에게 큰 이익이 되어줄 건더기나 자원이 전혀 없는 사람이고, 정치적인 수완이 뛰어나지도 않다.

그런 순간이 있었다.

그 카르텔이라는 단어를 전혀 생각도 안 하고 있다가 도저히 그 말을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순간에, 혼자 메모장을 켜고 그 단어를 썼다가 지우고는 쓴웃음 지었던 시간.

회사였다. 사내정치라는 거 있잖나. 그것 때문이었다.

물론 이익을 보는 쪽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담합', 혹은 '카르텔'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짓곤 산더미처럼 떠넘겨진 일을 하다가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갔었다.


재능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어떤 재능으로 그 시대에 빛날 것인가 그건 순전히 운이다. 또, 빛나는 사람들은 아주 소수이므로 나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그나마 좀 짧은 시간을 들여 쉽게 할 일들을 '입에 풀칠할 보잘것없는 재주'로 알고 살아간다. 그리고 누구나 그렇듯

일을 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말을 금과옥조로 삼고. 적어도 받는 돈만큼은 일하려 한다.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는 방법이다. 재주가 없다면 어떻게 익혀서라도 일에 구멍은 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회사라는 곳.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는 곳이고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적절한 사람을 고용해 일을 배분해서 프로젝트나 생산을 해내고 그것을 판매하거나 용역으로 제공해 이익을 남기는 곳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아주 건조하며 당연한 걸 뛰어넘어 어떻게든 미꾸라지처럼 배분된 일을 안 하며 생존하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문제다. 사실 그런 사람들만 한 덩이로 뭉쳐서 아사리 판이 되든지 말든지 하면 괜찮을 텐데

그들은 꼭 숙주를 찾는다. 자기가 대충 해도 그걸 커버 쳐줄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이 일정 성과를 내면 그걸 꼭 가져가야 직성이 풀리고, 그게 모자라 오히려 그나마 성실한 사람을 '무능한'사람으로 몰아서 끝끝내 숙주로 만들려 한다. 그 일은 비슷한 상사와 조직의 묵인 하에 이뤄진다.

숙주 하나가 잡히면, 혹은 숙주가 될 예정이거나 괜히 존재만으로
존심상하는 누군가를 지정하고
그들은 하나의 목적으로 맘을 모았다.
그리고 그 미꾸라지들은 하나같이 안갯속에서 자기들끼리 뭉쳤다.
알코올과 니코틴이 그들 의식의 매개체였다

그 뭉치는 데는 의식이 필요했다. 예전에 인신공양을 했던 많은 고대인들이 복잡한 의식을 만들어 그들의 살인을 정당화하고 신성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내겐 그게 죄책감을 지우거나 뭔가 중독된 상태로 거사를 치르기 위한 짓으로 보였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유독 많았던 그 회사, 일하는 시간의 대부분을 삼삼오오 나가고서 서로 계속 담배냄새를 피우며 들어왔다. 그리고 그렇게 미룬 일을 밤늦게까지 대충 천천히 하고 숙주에게 줄 일을 남겨두고는 또 삼삼오오 술자리를 갖고는 오전에 서로서로 지각을 봐주고 늦게 오며 참 다정하게들 지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혹은 며칠 지나지 않아.

내가 해낸 일은 그들의 공적으로 바뀌고, 혹은 일을 멀쩡히 하면서도 바보 취급당하거나

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산더미 같은 일이 내게로 떨어지곤 했다.

그때 그 생각이 들었다.


공식적으론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부류는
비공식적인 루트가
아니면 뭔갈 해낼 수 없나 보다.
나는 이제부터 그들을
비공식 인간이라고 부르고 싶다.


나는 술 담배를 못했다. 지금도 그렇다. 그 아빠에 그 딸이라고 부모형제 모두 그러고 살았다. 그저 살던 대로 나야 뭐 이러고 살고 남이야 뭘하든 심지어 마약을 했어도 노상관이었다. 내가 그쪽에게 노관심 노터치인 것처럼 제발 관심 꺼줬음 좋겠는데 일이 없어 안바쁘신건지 어떤 비공식 인간들은 내가 일은 곧잘해도 딱딱해서 소용없단 소리를 종종 해댔다.

적당히 그 사람들과 안갯속에 있어야 했는데, 서로의 뇌를 알코올로 절이고 서로서로 얼마나 망가지나 같이 감시하며 '혼자 고고한 척'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 탓이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그렇게 그 조직에서 아주 똑똑하게 잘 처신하며 살아남은 사람 중 일부는 자기가 스스로 지쳐서 회사를 나갔고, 내가 그만둔 후에도 그 곳만한 곳이 없어선지 다시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고 산다고 한다. 사람이 변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카르텔이 그렇듯. 서로 미친 듯이 사랑하고 의리를 지키는 경우는 드물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 오늘의 적이 어제의 친구. 그러나 그 사이에 어떤 칼이 오고 갔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 비공식이 공식화된 상황이 지겨웠던 나는 그곳에서 벗어났고

지금 혼자 일하며 전에 다른 곳에서 함께 일했던 맘 맞는 분, 혹은 나를 기억해주는 클라이언트 몇 분과 함께 그때만큼의 돈은 벌고 있지만 아무래도 기억이 영 씁쓸하다.

많이 아팠다. 마음뿐 아니라 몸까지. 술 담배를 안 하고도 술 담배를 그런 목적으로 쓰는 사람 때문에 아픈 사람이 나 혼자 뿐일까?






스티븐 킹의 원작을 가장 잘 만들어내는 감독 '프랭크 다라본트'의 2007년작 미스트.

갑자기 닥쳐온 안개라는 재난. 감독은 그 안갯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어 답답하고

무엇보다 그 안갯속에서 끔찍한 괴물들이 나와 멀쩡한 사람의 팔과 다리를 자르거나 끌고 가는 모습을 아주 효율적이고도 매력적으로 보여줬다.

이 안갯속에서 서로 물고 뜯고 하는 인간군상 풍자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다. 물론 그렇다. 감독은 이 부분을 참 잘 만들었다. 대부분 납득됐고 그럴만했다.

그러나 나는 감독이 그려낸 그 안개 자체에 주목했다. 그리고 악몽에서나 나올 크리쳐들. 몸 전체가 환하게 드러나지 않아도 촉수 하나로 사람을 절망으로 몰아넣는 크리쳐들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이건 그저 취향 차이이다. 이 부분에서 이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괴수영화 탑 10에 속한다.

일상의 정상성을 싹 다 지워버리는 안개, 그리고 그 안갯속에서만 서식할 수 있는 다른 차원 한마디로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존재들을 보면 인간들은 미치거나 아플 수밖에 없다.

때론 목숨을 끊기도 한다. 나는 그저 아프고 조직을 떠났지만.

괴수물과 호러의 매력은 거기에 있다. 도저히 그 곳에 나타날 수 없는 존재가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인간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만약 그들과 같은 존재이거나. 그들과 같은 존재로 변한다면 무서울 것도 이상할 것도 없이 그 환경과 상황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끝끝내 정신을 잃지 않고 그 상황을 직시한다면 고통과 공포는 고스란히 '인간'의 몫이 된다.

원래 거기에 있어야 할 '공식적'인 존재는 그럴 수밖에 없다.


방법은 두 가지다. 도저히 그 상황을 견딜 수 없으면 떠나거나. 아님 그 상황이 진실인 것처럼 또 영원할 것처럼 자신을 속이고 적응하든가.

멘털이 약해서 난 후자를 택하지 못했고. 사실. 그 일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다.

그저 조금 편하겠다고 좋은 라인 좀 타겠다고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방식으로는 살 수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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