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오큘러스2를 구입했다. 구 페이스북(현재이름 메타) 이슈 때문에 그냥 다른 VR기기를 살까 거의 몇 개월 고민하다가 '가성비'가 워낙 뛰어나서 결국 지갑을 열었다. 내 뇌 속 어딘가 저울이 있는데 '가성비', '기회비용'이라는 단어만 한쪽에 올라가면 게임 끝이다. 그 가성비에 따라 그걸 사거나 말거나 하거나 말거나. 어쩔 수 없다. 난 부자가 아니고 내가 가진 자원도 한정돼있으니까.
다양한 어플이 있었다. 비트 세이버도 해보고 VR로 운동도 해보고 춤도 춰보고, 워크룸에서 아는 분들과 만나 이야기도 해보고. 보통은 그렇게 온라인으로 가상현실을 즐기는데, 그 많은 어플 중 VR 갤러리 같은 게 있었다. 360도 비주얼 아트를 그냥 가만히 구경하는 어플인데 이걸 감상하는 게 상당히 재미있었다.
그중 '크툴루'가 있었다. 내가 콩알만 한 입장에서 또는 그 괴물을 위에서 옆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나는 그야말로 초라하고 먼지 같았고 크툴루는 매우 거대했고 딱 보기에도 무시무시하며 잔인해 보였다.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이하 러브크래프트)의 소설과 그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보드게임 등을 읽거나 하거나 때론 짧은 관련 콘텐츠를 보면서 상상했던 크툴루. 막상 360도 입체로 보니 확실히 그 느낌이 달랐다. 왜 러브크래프트 소설 속 주인공이 보고는 크툴루를 보고는 미쳤는지 조금은 이해했다. 나야 오큘러스를 벗으면 그 상황이 끝나지만, 그 소설 속 등장인물은 수틀리면 찢기거나 밟힐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아무 의도가 없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처럼 말이다. 언제든 자기가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 갑자기 나타나고 그 존재가 무심보다는 '악의'가 가득하다면 답이 없는 것이다. 어떻게 덜 고통스럽게 이 상황에서 나갈 것인가. 혹은 함께 소멸할 것인가 라는 선택지만 남는다. 바로 거기서 생각과 감정이 꼬여버리면 사람이 '미친다'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속에서 이 괴물들 크툴루, 데이곤을 비롯해 온갖 그레이트한 올드원들... 니알라토텝, 요그소토스 등은 갑자기 외계에서 침공한 게 아니다. 원래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사실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 있었다. 하필 주인공들이 어떤 노인의 저서를 통해 때론 한 도시에 대한 소문을 통해 혹은 차원을 볼 수 있는 기기를 통해 그들을 발견하고 발견됐을 뿐이다. 마주하기 전까진 '일상'이라는 게 참 단단해 보이지만 막상 그 존재와 마주하게 되면 그 '일상'이 얼마나 바스러지기 쉬운지. 그리고 그 거대한 것들이 결코 인간에게 호의를 품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세상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곳으로 변한다. 차라리 죽음이 편할 정도로. 나는 그 작가가 그려낸 세계가 낯설지 않았다. 환상, 호러 소설이라고? 작가의 불행한 삶과 정신병을 반영한 거라고? 나는 이 오래전에 죽은 작가가 세계의 현실을 목도했고 이런식으로 매력적으로 그려냈다고 본다.
러브크래프트가 그려낸 르리예나 인스머스, 아캄 시티는 현실에서도 유사한 모양으로 존재한다.
완벽하게 안전한 세상은 없다.
인터넷 뉴스만 켜봐도, 내가 밥 한 숟갈을 뜨는 순간에도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는다. 때론 도로에서 갑자기 큰 덤프트럭이 덮칠 수도 있고, 멀쩡히 친지와 어디 다녀오다가 음주운전자의 부주의한 운전으로 인해 건강과 생명 그리고 모든 커리어를 잃을 수도 있다. 우리가 90년대에도 두 차례 그 이후로도 자주 경험했던 바이지만 멀쩡히 왔다 갔다 하던 건물이나 다리가 무너지기도 한다.
일부러 이 놈들을 죽이고 저 사람을 어떻게 해야지 하는 의도는 전혀 없다. 수많은 부주의가 쌓여온 것뿐이다. 피해자가 하필 거기에 있어서 혹은 피해자의 친구나 친지가 거기 가지 말란 말을 그날 하필 하지 않아서 생긴 일도 아니다. 건물이나 천재지변이면 그나마 괜찮다. 뭔가 살아 움직이는 그것도 뇌와 심장을 가진 존재가 악의를 가지고 한 일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하철에서 칼을 휘두르고 불을 지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멀쩡한 집에 침입해 가족을 싹 다 죽일 수도 있다. 피해자가 잘못해서? 아니. 그냥 가해자가 하필 거기에서 그 마음을 품었던 것뿐이다.
핑계는 참 다양다르다 '나를 무시해서', '갑자기 충동이 들어서', '어린시절의 상처', '사회에 대한 불만', '정신질환' 무엇보다 그 놈의 '술, 술, 술'...
그걸 인터넷 뉴스 사회면을 통해 보거나 뉴스속보로 보는 것과 실제 목격하는 것은 그 현실감 부터가 다르다.
어릴 때였다. 옆집에 세든 가족은 이상하게도 하나같이 가정폭력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께 살았다.
아주 흔한 스토리다. 무능하고 도박을 하면서 가족을 학대하고
생계를 책임지는 아내를 심심하면 때리는 누구.
심지어 그 인간은 주벽이 심해서 가끔 부모님이 없을 때 우리 집 거실에 무단으로 들어와 술을 마셨고, 나는 친구를 집에 데려오다가 그 인간을 보곤 얼굴이 하얘져 도망치고 부모님께 sos를 청한 적도 있었다.
서점에서도 봤다. 또 길거리에서도 봤다. 중년커플 중 남자가 여자의 뺨따귀를 사정없이 갈겨서 여자가 쓰러지기도 하고 여자 머리채를 질질 끌고 가는 꼴을 봤다. 또는 어떤 취객이 마을버스 기사 할아버지 뒤통수를 갈기기도 했다. 몰래 신고하는 동안 등에 땀이 흘렀다. 경찰이 출동하기까지 그 짧은 시간이 내겐 영겁 같았다. 이렇게 일상은 공포에 먹혀있었다. 오해는 하지 말길. 이런 장면을 일부러 찾아볼 만큼 한가하지 않다.
모처에서 자취를 했을 때다. 그때 방이 두 개 있어서 방 하나를 엄마의 과외 장소로 내어드린 적이 있었다. 참 순하고 착하고 예쁜 여자 고등학생을 엄마가 가르치셨고 나도 그 친구를 참 좋아했다. 그 아이의 엄마가 엄마와 친한 사이여서 그 어머니 분도 내게 친숙했다. 시간을 내서 그 아이의 시험 준비를 도와준 적이 있는데, 별것도 아닌데 좋은 것을 내게 먹여주시려고 참 살뜰하게 대해주셨던 인심 넉넉하고 생활력 강한 분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과외하던 그 예쁘고 착한 학생이 며칠 우리 집에 묵을 일이 생겼다. 그 아이의 아빠 때문이었다. 엄마는 내게 양해를 구하고 그 아이를 내 자취집으로 피신시키고 그 엄마를 다독거리고 돌봤다. 아내 돈으로 살던 분이었는데 좀 많이 나빴다. 가족의 돈을 뺏고 아내를 학대해왔다. 그 나이 또래 어머님들이 그렇지만 웬만하면 참고 넘어가시고 견디신다. 그러다가 그분이 참다 참다 이혼을 요구하자.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며 여자분의 머리털을 수 없이 뽑고 얼굴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때렸단다. 우리 집에서 며칠 묵은 그 아이의 마음이 다치지 않기만을 기도했다. 결국 그 아이의 엄마가 용기를 내서 그 사람을 가족과 분리시키고 딸을 다시 제대로 보호하기까지의 과정이 지난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내 삶엔 그런 폭력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과정이 포함됐다.
작년이었다. 자취집에서 평소처럼 잘 준비를 마치고 불을 껐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내 자취집 문을 강제로 열려고 했다. 소리를 지르면서 계속 문고리를 탕 탕치고 계속 찰칵거리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112에 겨우 신고를 했고 경찰이 출동했을 때 그놈은 어디 가고 없었다. 다행히도 경찰분들이 대기하겠다고 하셨지만 그놈은 다시 오지 않았다.
잠을 거의 설치고 성범죄자 알리미를 켰다. 반경 500m 내에 성범죄자 3명이 살았다.
난 집을 빼기로 했고 친구의 도움으로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다가 결국 부모님과 2분 거리에 있는 집을 구했다. 그리고 셀프로 cctv를 설치해서 어떻게 어떻게 살고 있다.
그렇다. 이 모든 이사비용과 제반 비용은 다 내 노동소득에서 나왔다. 이 일에 대해 누구도 보상해주지 않는다. 그냥 운이 안 좋았을 뿐이다. 아니면 다른 사람이 당한 일의 아주 일부만 경험했을 뿐이다.
대한민국이 치안이 좋은 나라라고? 글쎄. 그건 어떤 사람에겐 해당하지만 어떤 사람에겐 아니다.
적어도 내가 보고 경험한 세상은 '안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생각을 했다.
죽는 거야 남도 죽고 나도 죽는다. 그건 공평하고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그래도 좀 존엄을 지키면서 죽고 싶다. 개돼지들의 사냥감이 되어 무차별 폭행을 당하며 죽고 싶진 않다. 죽는다면 병원에서 죽는게 제일 낫겠다. 사후처리가 신속하니까.
아름다운 순간은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날들은 루틴대로 흘러간다. 많은 사람의 노고를 갈아서 가까스로 평화는 지켜진다. 그러나 그 아름답고 평화로운 순간이 당연한 것도 아니고. 생활 속에서 위험의 요소를 예견하고 대비하는 사람이 유난스럽고 예민한 것도 아니다.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공포가 있다.
특히, 내가 겪지 않았다고 적어도 이곳은 이 나라는 '공포나 위험'이 전혀 없는 좋은 곳이라고
단정 짓는 것만큼 무지한 일은 없을 듯하다.
언제나 그렇듯 범죄나 폭력이나 천재지변이나 그 거대하고 악한 힘은 존재하고 피해자는 그야말로 '무작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