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 속의 마녀가 무슨 죄냐

Dancing with monsters 5

by Dolphin knows

소년소녀를 위한 세계문학전집. 고모가 조카들 읽으라고 잔뜩 사서 책장에 넣어주셨다. 아버지는 주로 공자, 맹자, 명심보감을 사줬고. 고모는 그 전집을 사줬는데. 아빠가 사준 책보단 고모가 사준 그 전집류를 뽑아 읽으면서 놀았다. 제일 재미있게 읽었던 건 <삼총사>. 왕비가 영국 공작과 바람피운 걸 숨겨주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삼총사들의 활약을 보면서 '와 프랑스 남자들 개 쿨한데'라고 혼자 실실 쪼갰던 기억이 난다.

그중에 이게 과연 여기 들어가도 되나 싶은 책이 있었다.

바로 '뷔이', 우리나라 말론 <마녀의 관>이었다.

고골의 작품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영화화된 적이 있었다. 그 <마녀의 관>엔 공포 단편들이 있었는데. 작가들이 좀 대단했다. 호프만, 모파상 등. 처음엔 삼총사 이후엔 무조건 그 책 <마녀의 관>에 제일 손이 많이 갔던 건 어린 내가 보기에도 '필력'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또 텅 빈 자연이 사람에게 일으키는 감정. 그리고 1800년대 이후 이전의 서양 풍물들이 상당히 매력있었다.

표제작인 <마녀의 관>은 내가 여러 번을 읽었는데. 단 한 번도 못 가봤던

우크라이나의 키이우라는 곳에 대한 흥미가 생길 정도였다.


스토리는 매우 심플하다.

하리야와, 고로이베치, 호머 브루트 이 세명의 신학생들은 방학을 맞아 여기저기 떠돌다 어느 노파의 집에 묵게 된다. 그중 브루트는 밤에 노파에게 홀려 노파를 목마 태우고 밤에 계속 뛰다가 하늘을 날게 된다.

어릴 적에 봐도 그 묘사가 기이하고 아름다웠다. 홀렸다가 정신을 차리게 된 브루트는 아 이게 뭐지? 하며 노파를 때려죽인다. 그러나 노파를 죽이고 나니 '아름다운 젊은 여자'가 피를 흘리며 죽어있었다.

흠... 신학생이 살인을? 어이가 없다고 사람을 때려죽여? 어린 나이에도 갸우뚱했다.


양심을 팔아먹은 그는 스스로 없었던 일이다. 이러고 그 집을 떠나 다시 신학교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를 찾는 사람이 생긴다. 그는 마을 유지인 '영주' 자기 딸이 죽었다며 죽은 딸을 위해

기도문을 읊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신학교에 부탁해 찜 한 것은 바로 '호머 브루트'

그는 영주의 부탁대로 기도를 시작했는데 웬걸. 그 영주의 딸은 다름 아닌 자기가 살해한 그 '여자'였다.

뭐 이후로는 호러 시퀀스다. 영주의 딸이 되살아나 밤마다 그의 주위를 뱅뱅 돌질 않나. 등등

그는 나름 배운 가닥이 있었는지 주위에 원을 그리고 기도를 한다.

요괴가 하나 둘 나타나 그를 위협했지만 직접적으로 해치지 못하고 일단은 원의 보호를 받는다.

그러나 끝판왕 '뷔이(흙의 요정)'라는 엄청 큰 요괴가 나타나고 그의 눈을 열자 그 원은 소용없게 되고.

뭐 결과는 끔살...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평지가 되었다는 전설.

이 현실로는 일어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스토리는 어린 소녀의 뇌와 심장을 사로잡았다.

그때도 그 생각을 했다.


마녀고 나발이고,
일단 죽인 놈이 잘못한 거 아닌가
게다가 이놈 평소에 품행이 방정치 못한
양아치임.
아직도 이 삽화가 기억난다. 상당히 매력적이고 그로테스크했던 삽화라서...


사실 동화나 괴담은 당시 현실 특히 사람들의 심리와 전통을 반영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기에

이 이야기를 곱씹을 때마다. 이 이야기가 상징하는 현실이 머릿속에서 재구성된다.





내가 생각한 <마녀의 관>의 실제 스토리는 이랬다.


영주가 죽으면 곧 많은 돈을 물려받을 무남독녀 외딸, 그것도 미모가 상당한 처녀가 있었다.

영주에게 불만을 품은 이들은 차마 영주를 공격하지 못하고 그 딸이 마녀다.

이웃의 아이를 몰래 잡아먹었다는 소문을 내며 스트레스를 푼다. 연예인 씹는 사람들 심리 그대로 아닌가.

그 와중 망나니 신학생이 방학을 맞아 술을 마시며 돌아다녔고 산책을 나온 그녀를 강간하고 살해한다.

그리고는 도망치듯이 그곳을 빠져나와 학교로 돌아간다.

딸을 잃은 영주는 분노와 슬픔에 미쳐버릴 지경. 온갖 방법을 통해 '범인'을 찾아낸다.

신학생의 학교에 그 신학생을 고발해도 종교 카르텔은 결코 그 신학생을 내어주지 않을 거고

오히려 딸의 명예만 실추시킬 테니 영주는 다른 방법을 쓴다.

아끼던 딸이 병으로 죽었다고 아이를 위해 기도라도 해달라며 그 신학생을 부른다.

너무도 태연하게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기도문을 읽고 종교행위를 하는 신학생을 지켜보던 영주는

그가 밤에 성당에 홀로 남자 자기 부하들을 불러 가장 비참한 방법으로 살해한다.


그 엄청난 괴물 '뷔이' 혹은 흙의 요정. 당시의 내가 보기엔

딸을 가슴에 묻은 아버지 그 자체였다.

있을 법한 이야기 아닌가?



왜 처녀귀신이 많을까?

어떤 역사학자도 말했지만. 살해당하고 자살을 강요당한 여성들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뭐 열녀문 타령, 은장도 타령에서 대충 알 수 있지 않는가? 사실 은장도는 자살용이 아니라

어디 가다 과일도 썰어먹고 은장도에 붙은 호박 같은 보석은 상처가 났을 때 갈아서 붙일 수 있는

그 당시의 '마데카솔', 이나 '후시딘'같은 거였는데. 원래의 용도를 싹 지워버리고 절개의 상징으로

그것도 자기의 목숨을 끊는 걸 미화시키는 맥락으로 세탁해버렸다.


살해당한 그들. 살아서는 목소리를 낼 수 없었기에,

범죄를 목격한 누군가가 혹은 그들에게 안타까움을 가진 누군가가 그것을 이야기로 풀어내지 않았을까?

그저 힘 좀 주면 강간하거나 강탈할 수 있고 머리채를 질질 끌어다가 때리고 죽일 수 있는 존재.

때론 욕망과 혐오의 눈으로 대상화할 수 있는 존재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였을까?

서양이나 동양이나 그런 귀신들이 문학에 많이 나타나는 건 이유가 있다고 본다.

참 기괴하지만 의미 있는 추모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이런 무수한 괴담들이 범죄예방의 목적에서 지어지지는 않았을까 싶다.


약하다고 괴롭히지 마라.

어제 네가 그들을 피 흘리게 했다면 바로 다음날 네 목에서 피가 흐르게 될 것이다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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