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을 바라게 된 이유

Dancing with monsters 4

by Dolphin knows

개포 재건마을이라는 곳이 있다. 당시엔 '체비지 마을'이라고 불렀다.

12년 전 나는 잠시 거기에 있었다. 거기서 많은 것을 봤고 또 생각하게 됐다.

도곡동이야 그 상징적인 주상복합건물로 '부유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동네고, 도곡 양재 그즈음에는

아파트랑은 급이 다른 고급 빌라촌이 즐비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빌라가 아니다. 일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거기에 들어갈 수 없었다. 뭐, 그때는 그랬다.

그런 동네에 '판자촌'이 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살다가. 친구들이 봉사활동이나 가보자고 해서 한 단체에서 운영하는 조손가정 지원 프로그램에 동참하기로 한다.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주말쯤에 가서 부모님에게 살뜰하게 케어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과

놀아주는 거다.

언제나 그렇지만 워낙에 텐션도 낮고 노잼 인간이라. 내가 애들에게 뭔 도움이 될까 싶기도 했다.

근데 뭐 나만 가는 것도 아니고 든든하고 선량한 친구들이 있으니 뭐 안되면 종이컵으로 물이라도 나르고

바닥이라도 쓸자 싶어 그곳으로 갔다.

처음에 놀란 건 '아 너무, 심하게, 가깝다'였다.

그 뜨르르한 부촌을 지나 양재천 산책로 위로 난 다리 하나면 건너면 '체비지 마을' 이었다.

채 몇 백 미터가 되지 않았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04115



어느 집이 어느 집인지 구별하기 힘들었다. 일단 따로 계획을 하지 않고 지어진 터라. 골목길은 미로처럼 복잡했다. 집의 모양은 너무도 달랐으나 재질이 비슷해서 헷갈렸던 것같다.

사람들이 하나 둘 주워 모아 만들었을까? 없는 재료로 최선을 다해 벽을 세우고 지붕을 얹었지만. 확실히 공산품 집과는 차원이 달랐다. 벌레가 많이 나온다고 싱크대 밑에 은행잎을 가득 채워놓은 집.

사람은 신기하게도 최악의 순간에서도 최선을 뽑아내고, 또 최선을 다한 것에 최악으로 덧칠하기도 한다.

난 그 최악의 환경에서 그래도 아이를 어떻게든 돌보려는 최선을 봤다.

긴 화분에다가 뭐라도 심어서 키워먹는 모습, 그리고 꽃과 식물을 키우는 모습 등등. 그 판잣집 안에 어떻게든 타일을 발라 욕실을 만들어내고 적어도 누울 집을 만들었다는 것.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지 못했지만 마음 한 구석이 묵직해졌다.

또, 기본적으로 여기 사는 사람들을 멸시하거나 혐오하고, 결국 이 사람들을 쫓아내려는 잘난 사람들이 그 최선을 어떻게 짓밟는지도 알게 됐다.

그때도 흔히 보기 힘들었던 주택가 공중화장실이 있었고. 마을의 중심엔 2층짜리 컨테이너 재질로 꾸려진 마을 회관이 있었다. 그곳의 히스토리를 전혀 모르고 간 나는 그냥 어른들에게 국수 얻어먹고 고맙단 인사받고(진짜 한 거 1도 없는데) 애들 어떻게 돌봐주면 된다는 꿀팁 좀 듣고 나가려 했는데 그 회관 벽엔 액자(? 정확하진 않다. 그냥 게시물 형식으로 붙어있었는지.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좀 슬프다)가 붙어있었는데 쭉 읽다 보니 거기 살던 주민들의 삶과 고단한 싸움을 곧 알게 됐다.

강남 중의 성골인 강남구, 그것도 도곡동과 포이동 중간쯤에 있는 판자촌. 1960년대 군사정권 시절 가난한 사람, 넝마주이 하시던 분들을 그곳에 몰아넣었다. 그렇게 살게 해 놓곤 나중에 강남 특히 그 동네가 개발되고 땅값이 오르자 강남구청은 그들이 땅을 '무단점유'했다고 하며 변상금을 물렸다. 결국 인권위에 진정해 인권위에서는 그러지 말라 곱게 타이르기만 했고 잡음이 많다가 지금까지도 아직 어떻게 제대로 개발해서 사람이 살 곳을 만들 것인지 말것인지 논의 중인 곳.

힘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떤 유명한 여성 코미디언은 직접 여기에 와서 이 사람들과 함께 울어주고 함께 싸워줬다고 했다. 자기의 힘과 위치를 활용해 그분들이 당한 폭력을 알리기도 했고 말이다. 어떤 사람은 그걸 위선이라고 선동이라고 비웃었지만. 그 일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한 번이라도 그곳에 있었다면 '위선'어쩌고라는 말을 못 할 거다. 결론은 내가 그 사람을 존경하게 됐다는 거.



사는 집이 비록 초라했지만 그 아이들은 진짜 예뻤다. 말 그대로다. 얼굴은 어찌나 조막만 하고 다리도 길쭉길쭉하든지. 확실히 우리 때랑 비율도 다르고. 참 귀엽고 예뻐서 어딜 가도 꿇릴 애들이 아니었다. 옷도 맵시 있게 잘 어울리고. 확실히 유전자가 좀 더 좋아졌나 생각할 정도였다. 그리고 발랄하고 귀여웠다. 가끔 어떤 아이는 내 무릎에 앉아 내가 읽어주는 동화책을 가만히 들었다.

내 목소리가 별로 좋지도 않았을 텐데. 아주 잠깐이라도 위로가 됐다면 고맙겠다. 사실 내가 위로받았다.

그러나 그 애들의 학용품이나 신발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특히 주위 부촌의 아이들과 차이가 많이 났을 거다. 보통은 부모님이 따로 살고 재활용 관련 일을 하시는 편부나 편모 혹은 조부모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좋게 말하면 간섭이 없어 자유롭고 자발적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누구도 섬세하게 돌보지 않아. 마음에 빈 곳이 가끔 보였다.

무엇보다 한국의 미취학 아동들은 웬만함 초등학교 가기 전에 한글을 뗀다. 슬프게도 그 체비지 마을에서 만났던 저학년 친구가 한글을 떼지 못해서 고민이란 말을 전해듣곤 맥이 풀렸다.

그냥 똑같은 애였는데, 영어 유치원 다니는 아이나 이 아이나 다 똑같은데. 어느 날엔 애들 신발을 봤는데 사이즈가 다 작았다.

갑자기 아는 아이가 생각났다 초등학교도 안 간 귀여운 친구였는데. 워낙 예쁘고 똑똑하고 그 엄마가 좋은 브랜드 옷만 입혔다. 무엇보다 한글은 기본이고 쿡 찌르면 영어가 술술 나오는 영특한 친구였다. 그게 보기 나쁘지 않았다. 누구든 정성과 사랑으로 자라면 좋은 거다.

그런데 내 맘 속에서 같은 나이 또래의 그 아이들을 나란히 두고 보니 말이 안 나왔다.


이게 언제까지 용납되어야 할까?
누구는 노력이라고 이야기하고
지능의 차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나는 그냥 그 모든 차이가 '운'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운이 좋은 사람이 안 좋은 사람더러 쓰레기라고 하고
쓰레기 더미에 살게 하는 게 정의일까?


그 봉사활동을 그만둔 지 얼마 안 지난 2011년 그 마을에서 큰 화재가 났다. 나이 먹다 보니 대충 짚이는 게 있다. 결국 원인은 흐지부지되고 사람들은 울고 마음이 떠나게 되는 거다.

반대 입장에서 생각해봤다. 얼마나 미울까?

쟤네가 임대라도 지어달라고 하면 집값이라는 재산이 허물어질 텐데. 내가 머리 써서 피땀 흘려 번 돈이 저기 저 인간들 때문에 손상이 나고. 괜히 시끄럽게 하고 선동하고 등등.

더 이해하려 했는데 어느 순간 가니 좀 막힌다. 두통이 올 것같다.

내가 그래서 그 동네 사람들 만큼 부자가 못된 거다. 다 내 탓이다.


https://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1061941

그러나 2019년 서울시가 공모를 통한 사업 진행 방식을 고집했고
이에 협동조합도 이 방식을 수용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아직까지 서울시 측은 "SH공사와 강남구, 인근 주민들과 협의 중"이라는 이유로 이렇다 할 계획을 확정하지 않고 있다.
재건마을에서 40년 동안 살았다는 한 주민은 "다른 철거민 마을처럼 주택 소유권이나 이주비를 달라는 게 아니라, 건축비를 전부 우리 힘으로 마련하고 죽을 때까지 발 뻗고 잘 수 있는 공간 마련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특히 저 판자촌을 벗어나 다리를 건너면 보이는 고급 주택들.

만약 큰 비가 오거나 상상속 용이라도 나타나서 이 판자촌 사람들은 안전한데 옮겨지고 그동안 물방울 하나 작은 불꽃 하나도 상하지 못하게 했던 귀한 분들, 한 푼도 도와준적 없으면서 체비지 마을 사람들을 쓰레기 취급했던 그 분들의 집이 무너지고 물에 잠긴다면... 그들이 딛고 다니던 땅에 큰 싱크홀이 펑펑생겨서 강제로 반지하의 삶을 살아보게 된다면?

자연재해야 말로 그야말로 '운'이고 누구도 예상할 수 없기에 평등하다고 본다.

지진이 오는 정확한 시점을 갖은 방법으로 예측해 내려 하지만 역부족이고 또, 우리의 과학은 그 모든 재난을 막아낼 수 없다. 화산, 기후변화 등등. 우리는 우리가 되게 영향력 있고 모든 걸 컨트롤할 수 있다고 심지어 타인이 발 디딘 땅도 없애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땅이 언제 그걸 우리에게 허락해준 적이 있나? 나는 한 번도 허락받은 적이 없다.

우린 물 한 방울, 흙 한 줌도 만들어내거나 없앨 수 없다.

특히, 그 움직임을 제어할 수 없다. 태풍의 진로를 바꾼 국가나 사람을 아직은 보지 못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모두 공평하게 다치거나 죽는다.


어릴 적부터 참 좋아하고 사랑했던 괴수 '고질라'

처음엔 이름 모를 공포, 특히 방사능에 대한 일본인의 공포를 상징하는 '미지의 괴물'이었지만.

고지라는 고지라 시리즈가 계속될수록 인간 편에서서 사악한 금빛의 삼두룡 '기도라'와 싸우는 멋진 형님으로 진화했고, 미국으로 가 '갓질라'가 되자 지구의 균형을 찾아주는 균형자 '타이탄'으로 업그레이드된다.

망해가는 지구에 로단, 모스라 등등과 뙇 하고 등장해 모든걸 제로로 수렴해 버린다.

그렇게 한창 지구 중앙에서 표면으로 올라와 한창 난장을 피우고 사라지면 지구환경이 놀랍게 회복된다. 이 매커니즘은 고질라 시리즈 중 '고질라-킹 오브 몬스터-'에 잘 묘사돼있다.

지구를 초기화 하는 것. 즉, 리셋!

괴수물 팬이라면 특히 마천루 파괴씬에 열광하는 데, 그 압도적 크기가 주는 호쾌함도 있지만. 고질라는 평소 인간이 꿈도 못꿨던 일을 해낸다. 그 강한 비늘과 발톱으로 무장한 손으로 마천루를(금싸라기 땅에 지어진 누군가는 어마어마한 임대료를 내고 있는 그 건물) 한 방에 '따리고 부스고 문허버려준다'. 그 장면을 보면 체기가 내려간다.


고질라를 보면서 계속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이 떠올랐다.

괴수물의 팬은 인간의 팬이 아닌 경우가 많고, 나도 그중 하나다. 맞다. 자주 사람에게 질린다.

약한 사람이라고 가난하다고 이기적이지 않을까? 아니 똑같다. 똑같이 이기적인 사람들이 힘을 가지고 돈을 가지니 다른 사람을 밀어내는 거고, 강자들은 강자의 리그 안에서 약자들은 약자의 리그 안에서 서로를 다치게 하고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요즘 우리가 만나는 기후변화와 각종 동식물의 멸종, 무엇보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환경오염을 생각할 때

혹시 지구가 생명체라면 면역을 보내서 이런 인간이라는 병변들을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잠기게 되고 그래서 괴수물을 볼 때 '아 모르겠고 인간 징징거리는 거 보이지 말고 멋지고 거대한 괴수분들이 전투력이나 뽐내주시길'이라고 기원한다. 그렇게 '롱 리브 더 킹, 갓질라'를 외치며 '팀 갓질라' 혹은 '팀 고지라'가 되어간다.


인간이 이 세상에 저질러 놓은 패악이 너무 많고 이걸 힘없는 내가 하기 너무 힘드니

아예 이 판을 뒤집어 놓는 이벤트가 생기길 바라는 미친 자 중 하나가 나다.

막상 내가 그 재난을 당한다면 울면서 공포스러워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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