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도 모른 죄
애라는 김사순이 좋았다.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시험 준비만 4년 넘게 하던 애라는 제대로 된 직장 경험이랄 게 없었다. 해서 이십 대 후반임에도 정신머리가 아직 고등학생에 멈춰있었던 것이다. 반면 결혼도 하고 아들도 둘이나 있는 김사순은 애라 기준으로 완벽한 어른이었다. 애라는 작은 체구에 동글동글 귀여운 얼굴의 김사순이 대단히 포근한 언니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다 허상이었던 거지.
“적응 다 되신 것 같은데 애라 님이랑 지경님도 이제 푸시 노티 당번하셔야죠.”
피도 눈물도 없는 김사순은 지만 푸시 노티 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 그래도 TOP 7 지옥에 빠져있던 애라를 팔았다.
젠장. 푸시 노티란 무엇인가.
푸시 노티는 Push notification의 준말로 앱에 보내는 알람이다. 쉽게 말해 ‘김즈’ 앱을 이미 깔아 둔 유저가 좀 더 자주 앱에 방문하게 하기 위해 수시로 다양한 알람을 보내는 것이다. IT고 커뮤니티고 앱이고 이쪽 분야에 상 머글이었던 애라는 푸시 노티에 부정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애라는 앱을 깔면 기계치라는 핸디캡도 독하게 이겨내며 설정창에서 알람을 끄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애라 나름의 온정이다. 실수로 알람을 꺼놓지 않았다간 금세 알람에 질려 앱 삭제 버튼을 누르게 된다. 삭제만은 미연에 방지하는 게 서로 좋은 거 아냐?
그런데 ‘김즈’는 눈치도 없는지 한 번만 와도 짜증 나는 푸시 노티를 하루에 몇 번씩 보낸다. 도대체 왜? 망하려고? 애라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김즈’에는 그 모든 걸 수긍하게 만드는 절대자가 있다.
김오늘.
그는 하버드를 졸업했다. 공부 머리만 좋은 것이 아니라 일머리도 좋아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컨설팅 회사에서도 SS급 컨설턴트로 종횡무진 활약했다고 한다. 애라가 그중 직접 본 것은 하나도 없지만, 김오늘은 너무도 사람이 좋게 생겼기 때문에 믿음이 갔다. 대표 김영화 역시 김오늘에 대한 신뢰가 하늘이 찔렀으므로, 글로벌 스타트업 ‘김즈’는 매달 영어로 김오늘이 주최하는 타운홀 미팅을 하게 됐다. 거기서 애라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MAU(Monthly Active User)’와 ‘DAU(Daily Active User)’에 대해서 들었다. 김오늘 대왕님은 배움이 짧은 백성들을 위해 화면에 대빵만 하게 ‘MAU’는 많은 방문, ‘DAU’는 자주 방문이라고 반복해서 띄워주었다. 훗날 짬이 찬 애라는 이것이 얼마나 일차원적인 설명인지 깨닫게 되지만, 그때는 저 단순한 말조차 기억하기 힘들었다.
김오늘은 ‘DAU’ 수치를 올리기 위해 푸시 노티를 적극 사용하고 싶어 했다. 관심 있을 만한 푸시 제목으로 유저들을 낚아서, 매일 한 번이라도 ‘김즈’에 더 들어오게 만드는 것이다. 이과생인 김오늘은 세상 모든 것을 숫자로 계산했다. 그의 세계는 매번 가설을 세우고 데이터를 분석해서 검증하고 어떤 성공 법칙을 만들어야 돌아갔다. 애라는 늘 김오늘의 깊은 뜻까진 헤아리지는 못했으나 하버드의 권세에 협조했다. 그것이 종종 기계치 문과생 애라가 봐도 좀 원시적인 방법일지라도.
“그동안 보낸 푸시 노티 제목들을 전부 분석하려고 해요. 마케팅팀에서 유형을 분류해주세요.”
어느 날 마케팅팀은 김오늘이 세세하게 나눈 유형대로 그간 ‘김즈’에서 숱하게 보낸 푸시 노티 제목을 나눠야 했다. 문구가 설의법인지 영탄법인지 그냥 마침표로 끝났는지 등을 구분해서 적는 것이다. 하버드가 시킨 숭고한 일. 그날 마케팅팀이 밤새 수동으로 정리한 그 자료를 가지고 김오늘이 어떤 인사이트를 얻었는지 애라는 영원히 알 수 없었다. 애초에 목적이 뭔지도 묻지 않았다. 좋은 데 쓰시겠지. 하버드인데...
김오늘이 데이터로 원대한 계획을 세우는 동안, 애라는 문과생의 감으로 오픈율이 높을 푸시 노티 문구를 썼다. 푸시 노티 예약을 자주 까먹는 바람에 수시로 할복을 하겠다고 자학하는 김지경과 달리, 애라는 꾸준했다. 성실한 그녀는 제목 어그로에 두각을 보이며, 자신도 모르는 새 어째 자꾸 많은 유저들을 인입시키게 된다. 매달말 투자자에게 보낼 자료를 만들던 김오늘의 눈이 빛났다.
그건 애라에게 독이었을까, 김오늘에게 독이었을까.
아니면 그 어떤 요소도 ‘김즈’를 성공시킬 방도는 없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