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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늘 Oct 23. 2020

#4 "그런 얘기를 왜 밥 먹는 데서 하세요..."

뭣도 모른 죄

애라가 이사의 충실한 햄스터가 되어  달째 콘텐츠 쳇바퀴를 돌리며 헥헥대고 있을 때였다. 스타트업 '김즈' 대표 김영화가 돌연 주방에 있던 애라를 낚아챘다.


"독고야. 우리가 지금 케이팝이나 연예인 쪽이 약하잖아?"


'김즈'의 사무실 왼편에는 조리를 할 수 있는 주방과 함께 테이블과 소파가 길게 늘어져 있다.


"그만큼 넌 머리에 생각을 바짝 하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서 일해야 해. 독고 너 전략적으로 하고 있는 거 맞니?"


점심시간이 되면 살인적인 판교 물가로부터 밥값을 아끼고자 하는 청년들이 주방에 모여 햇반으로 볶음밥 쇼를 펼쳤다. 그럼 애라는 숟가락을 들고 소파에 널브러져 요리의 완성을 기다리는 거다. 안락하고 온정과 쉼으로 가득 찬 곳. '김즈'의 주방은 그런 곳이었다.


"어떻게 연예인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김즈'에 찾아오게 할 거고, 글을 쓰면서 놀게 만들 거고, 그 글들로 바이럴까지 일으킬지 그 계획이 큰 그림으로 나와 있어야 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아까부터 소중한 주방에서 왜 이러실까. 애라는 기억력이 좋은 자신의 뇌가 대표의 짜증스러운 얼굴을 남기지 않도록 노력했다. 훗날 주방에 대해서만큼은 동료들과의 행복한 추억만 떠올리기 위해서다. 물론 이 주방의 월세를 내는 건 김영화고, 그녀도 이 말을 꺼내기까지 나름의 맥락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종 면접 이후 김영화의 머리털도 본 적 없는 애라에게는 달걀찜을 퍼먹다 재앙처럼 닥친 이 대화가 갑작스러웠다. 스타트업과 마케팅에 대해 여전히 신생아 상태였으므로 더 그랬다. 정신없이 TOP 7에 올릴 콘텐츠 마감만 치고 있지 않았던가.


"바이럴 팀 하고 회의는 하고 있니? 긴밀하게 얘기하고 있어? 이 전략은 유기적으로 다 같이 가야 하는 건데 믿어도 되니?"


같은 마케터로 묶여 있기는 했지만, 콘텐츠 팀이었던 애라는 바이럴 팀의 업무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팀은 자리도 멀고, 서로 대화할 일도 없다. 아침마다 스탠드업 미팅에서 세상 찌든 바이럴 팀원들이 '어제 광고를 만들었고요. 근데 망했고요. 오늘 새로운 광고를 만들어서 도전할 거고요.'라는 말을 반복한다는 것만 알았다. 회복 탄력성이 좋으시네들.  사람들은 어디서 누구랑 '광고' 만든다는 건지,  '광고' 설마 TV 나오는 그런  말하는 때론 애라도 궁금했지만 굳이 물어볼 사이는 아니었다.


"우리 바이럴 팀 애들이 페이스북 페이지 키우는 데 고수야. 그래서 패션이나 인테리어처럼 인기 있는 카테고리들 이미 페이스북 페이지를 다 크게 키워놨단 말이야. 근데 연예는 뭐야? 없어. 아무것도. 독고야."


사실 '김즈' 바이럴 팀은 애라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콘셉트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것을 업계에서는 일명 '더미 페이지'라고 부르는데 회사 브랜드를 앞에 내세우지 않아서 마치 일반인이 운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조금만 유심히 보면 '김즈'가 소유한 페이지라는 것을 모를 수가 없는데 대중들은 세세하게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다. 가령 '그 남자의 옷장'이란 페이지는 팔로워가 35만인데, 그 페이지에 올라오는 게시글은 모두 '김즈' 앱에 있는 남자 패션 커뮤니티 글로 랜딩 된다. '그 남자의 옷장'을 팔로우한 패셔니스타 꿈나무들이 정보를 얻기 위해 클릭을 하면, '김즈' 앱으로 연결되어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식이다. 대중들에게 '김즈' 앱의 존재를 인지시키고, 신규 유저를 가입시키기 위해서 또 다른 앱인 페이스북에 의존한다. 플랫폼 장사를 하기 위해 다른 플랫폼에 돈을 퍼부으며 기생하고 있다니. 자생은 언제 하는 걸까. 생각이 꼬리를 무는 애라 귀에 카랑카랑한 김영화의 목소리가 꽂힌다.


"바이럴 팀 하고 회의해서 빨리 전략을 짜고 페이스북 페이지부터 키워라. 알겠니, 독고야? 연예만 없어. 연예만."


네넵. 점차 빨갛게 충혈되는 김영화의 눈이 곧 제 간이라도 파먹을 것 같았기 때문에 애라는 얼른 대답했다. 시킨 대로 할 자신이 없었지만, 애라는 생의 마지막을 고용주의 주방에서 끝내고 싶지 않았다. 곧 있을 팀 회의에서 기존 멤버들에게 슬쩍 도움을 요청할 요량이었다.


"하나님, 이제 이 두 분도 이제 푸시 노티 당번하실 때가 되지 않았나요?"


하지만 인생이 늘 그렇듯, 애라는 입도 떼기 전에 새로운 맹공을 맞이했다. 스타트업 '김즈'의 유일한 유부녀이자 엄마로서 육아 카테고리를 전담하고 있는 김사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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