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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동 Sep 23. 2021

기다리고 있을 나의 강아지에게


“아들, 뽀야가 죽었다.”



늦은 밤에 출근하는 내가 아직 사무실에 도착하지 않았을 때다. 지인을 만난다고 1층에 잠시 머물러있었는데, 어머니로부터 문자가 왔다. 우리집 강아지가 죽었다. 쇠약한 몸에 급격히 나빠진 예후가 있어, 그리 놀랍지 않았다. 요즘 강아지처럼 생일을 챙기지 않아, 몇 년을 살았는지 사실 잘 모른다. 대략 16년을 살았다고 추정하는데, 살만큼 살았다. 그럼, 호상인가.


5층에 있는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집으로 차를 몰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사고가 나지 않도록 마음을 부여잡았다. 어엿하게 행동하고 싶었다. 기억이 명확하지 않지만, 라디오를 켰던 것 같다. 이것 말고 당시에 내가 어떻게 집에 왔는지 더 이상 떠올려지지 않는다. 다만, 끼익-하던 타이어 소리가 어렴풋이 회상된다.


현관문을 열었다. 거실의 불은 환하게 켜져 있었고 어머니는 소파 밑바닥에,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있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고, 어머니는 뽀야가 베란다에 있다고 했다. 베란다에 나가보니, 동물병원에서 얻어온 관 역할의 하얀 상자가 있었다. 하얀 상자 위에는 강아지 장례식 업체의 전화번호와 ‘주인님 먼저 가서 기다릴게요’라는 적혀있었다.


솔직히, 상자를 열기 싫었다. 그냥 그러기 싫었다. 정말 힘겨운 마음으로 열었다. 매일 밤 우리 뽀야가 잘 때 덮던 담요가 나왔다. 가지런히 덮여 있었다. 살짝 열어보니, 작은 강아지가 나왔다. 햐안색 말티즈. 몸무게 3kg 내외, 나이가 들어 조금 빠져버린 콧잔등 털, 촉촉한 강낭콩이라고 불렀던 까만 코. 그건 우리집 강아지였다.


얼굴을 만져봤는데, 딱딱했다. 하지만 온기가 있었다.


어느 소설에서 나온 문구처럼, 금세 일어날 것 같았다. 그냥 자고 있었다. 뽀야라고 작게 불렀다. 이름을 부르면, 그냥 일어날 것 같아서. 당연하게도 반응은 없었다. 정말 죽은 것인가. 까만 젤리 같아서 매일 만졌던 발바닥을 만져봤다. 여전히 발바닥은 젤리 같았고 따뜻했다. 형이 왔어. 뽀야, 형 방에 가서 자자. 우리 뽀야는 팔베개해주면 좋아하잖아. 왜 차가운 베란다 바닥에 누워있어. 우리 뽀야는 이불 속에 들어가 자는 걸 좋아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뽀야의 심장 쪽에 손을 가져다 댔다. 미세한 그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가는 길 마지막이 떠올랐다. 콜록거리는 기침이 심해, 독한 약을 먹여 미안해. 그렇게 먹기 싫어했는데, 이제는 먹지 않아도 되네. 이제는 사람 먹는 음식도 마음껏 먹고, 산책도 네가 하고 싶은 만큼 하길 바라. 10대 후반과 20대 청춘을 모두 함께한 사랑하는 나의 강아지. 잘 가.


-


이 글을 쓰고 몇 달 뒤, 보고 싶어도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걸 알아도 우리집 강아지가 보고 싶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데, 이불 밑이 불룩하면 조심해서 걷게 된다. 바닥에 물이 있으면, 오줌인 줄 알고 있다. 그래서 금세 달려올 것 같았다. 그럴 일이 없는데.


아직 사용하지 않은 강아지 용품은 유기견보호센터에 기부했고, 우리 강아지의 흔적을 모두 없앴다. 세상을 떠난 이의 기억에 매몰되지 않게끔. 하지만 가슴줄 하나만큼은 내 방에 걸어뒀다. 산책마다 사용하던 가슴줄이어서, 강아지 냄새가 난다. 그런데 얼마 전, 가슴줄 냄새를 맡아봤더니 아무 냄새가 나지 않았다. 작게나마 남아있던 뽀야의 흔적은 희미해 졌다. 그럴수록 내 머릿속에 더 꾹꾹 눌러 남기고 싶다.


그래서 늦게나마 오늘을 기록한다. 나중에, 우리 강아지를 만날 때를 잊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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