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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selle Riyoung Han Oct 29. 2019

소소한 일상도 도약을 하는 중.

파리거주자의 일상 기록

여름은 오래전에 사라졌고, 어느 사이인지 모르게 가을의 느낌도 희미해지고 있다 느껴지던 무렵에 사진으로 기록해 둔, Paris에서의 일상들.

곧 시작될 11월과 함께 2019년의 겨울도 슬그머니 일상 속으로 스며들겠다. 허둥대지 않도록 겨울 준비를 미리 해두는 것도 잊지 말아야지.


 


잠을 자고 있는 시간까지도 내 머릿속에는 여러 갈래의 생각들이 북적대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해대고 있어서, 나는 대체로 스스로를 말수가 적다거나 조용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질 못했다. 

종종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듣게 되는 나에 대한 느낌 속에, 그 두 가지의 이야기가 끼어 있을 때면 내가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건자.. 싶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나는 언제나 내 속에서 말을 하고 있었고, 기와집을 짓든 별나라를 다녀오든, 무언가를 하느라 내 머릿속은 항상 바쁘고 시끄러웠으니까.



아무튼 나 자신은 동조하기 어려웠지만, 내가 말수가 적다는 건 내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곤 했다. 

말이 적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보다 어떠한 소재로든 대화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편하고, 비밀이 많은 사람보다 적절한 농도로 자신을 보여줄 주 아는 사람의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처럼 오랜 시간 동안 내 주변에 사람이 참 적었고 내가 먼저 다가가기 전에는 다가오는 사람이 없었다.

외국 생활을 너무 오래 하고 있기 때문인지, 속을 툭툭 털어놓지 않는 내 성격 때문인지, 깊은 친구들이 없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던 날, 15세가 되기 이전, 마냥 친구들을 좋아하며 더 많은 사람들을 얻기 위해 누력하고 마음 앓이 하던 시기가 내게 있었다는 걸 떠올렸었다. 

유독, 친구에 욕심이 많았던 그 시기를 기억해내니 이곳에서도 좋은 친구들을 마들고 싶어 졌다. 

무엇에서건 인식의 단계를 거치고 마음을 먹으면 나는 하니까, 여기에서도 곧 좋은 친구들과의 관계를 형성해 가려는 시기가 왔나 보다.



프랑스 나이가 만으로 11살, 이제 곧 12살이 되어가고 있다. 생태학적 나이는 무시하고, 나는 늘 나의 프랑스 언어력을 이곳에서 살아온 햇수만큼의 여자아이들과 교를 한다. 

'지금 나는 열한 살의 프랑스 여자 아이만큼 프랑스어를 구사하고 있을까? ' 

매년 한 살을 더 얻어가고 있고 프랑스어의 말하기와 쓰기 실력이 동일의 나이때의 여자 아이들보다 유치하지 않을 만큼의 언어력은 갖도록 신경을 쓴다. 

나에게도 어김없이 프랑스 나이로 '스무 살'이 올 테고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설렌다. 한국에서 보낸 '스무 살' 보다 프랑스에서의 '스무 살'은 더 멋진 언어들을 갖게 되리라는 기대로 인해서.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단어들의 느낌, 문장들의 조합을 섬세하게 듣는 성향이나 내 안에 쌓아가려는 언어와 문장에 대한 욕심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고, 프랑스어를 멋스럽게 갖기 위해 꾸준하게 해 나가고 있는 공부도 차츰 제 길을 찾아가며 나의 인생 속에 작은 불빛이 되어 주리라 믿는다. 



2019년은 적절하게 바쁜 해였고 낯선 것들을 시도해 보기도 했고 여행도 조금 더 많이 다녔다.

아직 이해가 마무리되려면 두어 달이 더 남아 있는데도 다른 해보다 분주하게 기억이 되는 까닭은 한결같던 일상의 길들 위에서 살짝 벗어나, 낯선 일들을 접했던 횟수가 좀 더 잦았다는 것 때문이리라.

그중의 하나가 파리에서 사진 전시회를 가졌다는 것.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쇼핑몰 일로 인해 지난 5월에 한국에 방문을 했었고 2주 동안 서울에 머물며 틈틈이 담아온 장면들을 구성해서 파리 사람들에게 소개할 수 있었다는 것은 내게 있어 의미가 있는 작업이었고 좋은 경험이었다.



8명의 아티스들이 모여서 각자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자리였었는데 흑백으로 담아낸 나의 서울 이야기 속에서 열두 장의 사진들을 추렸었고, 전시를 하면서 앞으로 담아가고 싶은 사진의 방향을 감지하게 된, 의외의 소득도 있었다.

아무리 완벽을 추구한다고 해도 그건 오로지 어설픈 자기 기준에서의 완벽일 뿐이기에, 그것은 결국, '우물 안의 개구리'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는 걸 아는데 이번에도 나는 사전에 지인들에게조차 전시회 이야기를 하지도 못했고 초대도 하지 않은 채, 우연하게 나의 사진을 보러 와 준 이들과 소통을 했던 아쉬움은 있었다.

하지만 나의 목소리를 담은 사진을 유심히 봐주는 사람들과 만난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았으며 앞으로도 사진을 찍는 일에 더 깊게 들어갈듯하다.



사진전이 끝이 나고, 의미 있었던 나의 경력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게 아쉬워 페북에 몇 줄 기록과 함께 핸드폰 카메라로 담은 전시회 때의 사진 몇 장을 올렸더니 몇몇의 지인분들이 격려와 축하를 주셨다. 너무나 감사했다.



첫 사진 전시회를 얼떨결에 끝냈고 11월과 12월에 걸쳐 또 한 번의 전시 기회가 주어졌다. 

일처리 속도가 빠르지 못한 나는 해야 할 일들이 제 모양은 잘 잡아서 마무리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데 멀티스테이킹이지 못한 내가 살짝 원망스럽긴 하다. 

감사한 일이 다양했던 2019년, 자랑할 만큼 커다란 결실은 아니지만 나의 일상에 이러한 일들과 진전이 있었다고, 나를 아시는 분들에게 나누고 싶은 이야기였다. 

이제 또 11월의 전시를 준비해 가며 일과 공부에도 적절하게 정신력을 분배해서 살아가기를 내게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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