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No vs 프로Yes-밸류업 실천전략》
직장생활이 괴로운 당신에게 필요한 절대 원칙
by 박대한
“나를 위해 일한다는 것”,
아들러 심리학을 빌어
아들러는 오늘날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 한다.
당신의 ‘일’은 안녕한가요?
당신의 직업은 안녕하신가요?
기시미 이치로 작가의 “나를 위해 일한다는 것” 책에 이런 글귀가 있다.
'일하는 것이 즐겁지 않은 당신',
'직장 내 인간관계 때문에 괴로운 당신',
'밀려드는 일에 짓눌린 당신'.
우리의 삶은 하루 중 일과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구조다. 매일매일이 일과 관계되어 있고 그 속에서의 인간관계속에 늘 노출되어 있다. 하루 일과 속에서 직장 내 인간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들 모두! 이러한 일과 인간관계에 대한 해답을 못 찾고 있는 당신에게 필요한 원칙은 무엇이 있을까?
아침마다 지옥 철이라고 불리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의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는가? 모두가 대부분이 지쳐있고 우울해 보이기도 하고 침울하고 표정들이 대체적으로 어둡다.
그런데, 우리는 빠른 산업시대를 넘어오면서 이러한 모습들이 당연하고 무심한 듯이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고 있다. 얼마 전에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지 1주일 만에 ‘과로사’로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일요일에 출근하였고 복직 일주일 내내 새벽 출근과 야근, 장관 보고, 국회 출장, 주말근무까지 강행을 하였으며 밤 9시 이전에는 퇴근한 적이 없다고 한다. 열심히 일한 그 5급 공무원의 죽음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그 슬하의 아이들 셋은 졸지에 엄마를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복직하여 일하게 된 '일의 즐거움'이 졸지에 버거움으로 바뀌고 그 버겁고 어려운 것을 이겨 내려다 심장을 멈추게 하였다.
정치권에서도 자정의 목소리가 높아 초과근무에 대한 제재를 비롯, 일하는 시간을 줄이자는 여러 가지 공약도 남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 40시간 근무에 초과근무 월 최대 70시간으로 잔업을 할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을 두고 있지만, 이러한 것들이 어떤 큰 의미가 있을까?
일본에서도 소개된 모 대기업에 근무하던 직장인이 160시간을 야근을 반복하였고, 직장 내에서의 폭언과 동료 간 일명 '왕따'등의 따돌림으로 인해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이러진 끝에 결국 한 달에 두 번 조차도 쉬기 힘든 상황 속에서 과로사하게 되었다는 뉴스도 접하게 된다.
2015년에 있었던 일본 1위의 대형 광고회사 덴쓰의 신입사원이 월 105시간 초과 근무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그는 SNS에서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하다’, ‘자고 싶다는 바람 말고는 감정을 잃었다’는 글을 남겼다고 한다.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 해도 '일이 삶의 전부'가 되면 더 이상 즐겁지 않고 고통스러운 하루하루가 되어가기 십상이다. 하물며 매일매일을 직업으로서만 그 일을 하는 거라면 그 고통은 상상만 해도 마음이 먹먹해질 지경이 된다. 이렇게 일에 대한 우리의 여러 가지 느낌을 우리는 무엇으로 보상받고 매일매일을 고통으로... 또한 매일매일을 일그러진 얼굴로 참고 또 참으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 자신만의 일, 즉 자신만의 독특한 업(業)을 그렇게 무참히 즐겁게 일한 대가로 그렇게 사람들은 우리 곁을 떠나고 있지 않은가???
글로벌 리서치 기업인 '유니버섬'이 세계 직장인 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57개국 중 49위, 과로사가 많은 일본에서 조차도 47위라고 하는데, 이러한 직장 내 에서의 근무환경과 그 일을 대하는 우리 모두의 자세에서 행복감에 대한 지수와 자기 효능감의 지수는 현격히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만의 그 업(業)을 재미있는 일로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재미있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봐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잘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노동의 대가인 '돈'을 벌어야 생활하고 삶을 유지하며 가족들과 회식이라도 한번 하며 웃을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가 잘 살아가기 위해 일하는 지금도 결국 모두가 벌지 않으면 안 되는 자본사회에서 결국 우리는 일을 생계수단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일이란 것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우리는 사회적인 논의와 합의를 통해 우리들만의 '일'은 나만의 업으로 승화시켜야만 한다.
우리는 통상 처음 만난 상대방에게 인사를 한 후 '어떤 일을 하시나요?'라고 묻듯 일상적인 대화에서 또한 일을 땔래야 땔 수가 없는 자기 자신을 대변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 '일'인 '업(業)'에 대하여 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때때로 직장에서 우리는 괴로움을 항상 안고 살아간다. '나는 이 일을 왜 하는 걸까?', '좋아서 하는 걸까', '그냥 해야 하니까 조직에서 하라고 하니까 하는 걸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필자가 공공분야에서 근무할 당시에도 아니 현재에도 많은 행정직과 일반직, 기술직종 등 모든 일들이 인사상 '전보'를 가게 되는데, 그것이 매우 합리적이지 않을 때도 있는 게 종종 발생한다. 3~4년에 한 번씩 전보를 내는데 일이 익숙해지려고 할 때, 또는 좀 더 전문적 이려고 하면 다른 부서로 배치가 되기 일쑤다. 이것이 결국 나만의 기술과 나만의 업(業)을 가진 이들이 오래 종사하면서 평생직장에서 내몰리거나 직장을 버리는 중요한 이유로 작용할 수도 있다.
ICT 벤처기업을 창업했던 필자는 ICT 개발 공학자이며, 민간 대기업 등에서 온라인서비스전략과 O2O전략기획과 개발, 서비스기획과 시스템 관리자로 근무한 경험을 통해 공공분야 기관 정보화 부서에서 2년 즈음에 뜬금없는 인사처의 전보 발령을 받게 된다. 전산 직렬이었기에 다른 전산실로 전보가 될 줄 알았으나 뜬금없는 대민 최 접점에 있는 사업부서로 발령이 나게 된다. 전산 ICT를 하던 경력자인 나를, 한 부서에 년 수가 차지도 않았는데 전보를 내었다.
대민 접촉부서에다 시민행정업무를 하는 부서에 배속받게 된다. 그리고 모든 전 부서의 여러 가지 회계처리도 수기로 처리해야 하는 등 일의 난이도는 높지 않으나, 무척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잔업이 많으며 현장에 나가서 지원도 해야 하는 전혀 경험이 없는 그런 부서인 것이다.
물론 직장에서 각 부서나 팀들에 대한 옥석을 가릴 수는 없지만 전문성 있는 인재를 단순 수작업과 부서 잔무를 처리해 주고 회계처리를 하는 그런 단순직으로 발령을 내는 것은 무척 문제가 심각하다고 본 것이다. 이때 만약 인사상으로 볼 때도 매칭이 맞지 않다 생각하여 부서장 등에게 고충상담이라도 하는 날엔 조직의 날카로운 눈으로부터 일명 '따'를 당하게 되고 인사상 승진과 기타 조직에서의 이해관계를 넘은 구설수에 대한 불이익을 몽땅 본인이 책임지고 감당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 현재 수많은 직장에서의 현실적인 모습이다.
물론 인사상 조직에서의 고심이 왜 없겠는가? 허나 이런 일상적 배치들이 곧 인재의 누수와 결핍을 동반하게 되어 사기와 효능감에 문제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며 직장에서의 자신이 지켜오고 꾸준히 실행해 왔던 전문 분야에 대한 업(業)이 누수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재미있게 뜻깊게 일하고 싶어서 선택한 일에서 행복지수, 자기효능감이 떨어져 직장을 등지거나 버티다가 과로사 등으로 안타까운 결말이 나기도 하지만, 인사 상 직무에 적합한 인재들의 적절한 배치 원칙이 어긋나게 되어 결국,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제일 자신 있고 제일 잘하며 오랜 기간 숙련된 그 업(業)을 등지게 되거나 빠른 기술의 습성상 곧 다른 일반적인 직원들과 별반 차이가 없게 된다. 그 일의 특성에 대해 적합한 직원들이 분명 있음에도 고질적인 원칙을 조직에서 강요하는 바람에 그러한 미스 매칭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다시 원 경력에 맞는 기술에 맞는 보직을 받는다 해도 이해하고 회복하는 데에도 수많은 시간이 걸리며 그간의 세월 동안 많은 걸 놓친 것을 만회하기에는 여간해선 그 어려움을 말하기도 힘이 드는 것이 현실이다. 자신만의 자신 있는 잘하는 업(業), 그리고 남이 따라 할 수 없는 업(業)을 가지고 있더라고 결국 이러한 직장 내 구조적인 난맥상에서 우리는 괴로움을 참고 인내하면서 직장을 출근하고 야근하면서 싫든 좋든 표정 관리하면서 직장 내 직원들과 업무적으로 부딪히며 그렇게 또 그렇게 일을 마치고 퇴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일이란 것, 업(業)이란 것은 결국 '나를 위해 일한다는 것' 일 테고 그 일은, 그 업(業)은 내가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것이 최고의 업(業)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 나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을 말한다.
직장 내 상사와 부하직원, 동료 등 인간관계가 어려운 수많은 직장인들도 무수히 나와 같은 경험을 할 것이다. 억지로 나에게 맞는 직장 사람과 대화가 편하기 때문에 결국 업무적인 것을 떠나 한 직장 내에서 많은 이들과 얘기를 나누기는 무척 어렵다. 그렇기에 직장인들의 마음은 황폐화되고 자신만의 이기심만으로 타인을 바라보게 되는 실수를 저지르게도 되는 것이다. 경쟁적인 직장 내에서의 사람 관계는 더더욱 어렵다. 모두에게 사랑을 받을 수는 없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나를 좋아하며 호감을 가진 직장 내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다.
‘아쉬워 말자.’ 그것은 그냥 인간관계에서 흔히 만들어지기 쉬운 순리이며 그것은 당연한 결과이므로 '집착'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려울 때 그 사람을 계속 투영하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거나 행동에 옮겨야 한다.
"오늘 업무를 퍼펙트하게 끝내고 빨리 퇴근해서 야구장에 가야지 야호!" 이렇게 한다거나
"오늘은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맛난 피자나 치킨을 먹으면서 영화를 봐야지..." 하는 이런 즐거운 상상들을 하면서 하루하루의 새로움을 부여하고 일을 부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또한, 직장생활이 괴로운 당신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직장 동료든 그 누구에서든 '미움'을 받을 수도 있다는 '받아들임'이다. '미움을 받고 있다.', '인정을 받고 있지 못하다', '그들을 위해 사는 것이 당신의 인생인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즉, 타인을 의식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 당신이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그러한 일들이라면 생각의 꼬리를 싹둑~ 무 자르듯 잘라내기 바란다.
당신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낄 때가 가장 행복한 업을 하고 있다고 느낄 때라면 그 직장 내에서의 일들인 그 업의 숙제를 마무리하고 자신만의 업(業) 속에 빠져서 당신만의 가치를 업(UP) 시킬 준비를 이제 서서히 준비해야 한다.
자신을 가치 있게 만들고 잘살기 위해 하는 '일' = 업(業)을 가치 있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당신에겐 그 직장이 의미 있게 받아들여질 수 없기에 자신의 현재 위치에서 또 다른 점프의 기회를 노려야 한다.
일한다는 것은 살아간다는 것이다. 일한다는 것을 통상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일하지 못하게 될 때를 고려해 그 의미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거기까지 시야를 넓혀 생각했을 때, 일하는 것은 산다는 것과 뜻을 같이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사는 거라면 일하는 것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 일함으로써 불행해진다면 그것이 설령 막대한 부를 가져다준다 해도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시미 이치로 '나를 위해 일한다는 것' 본문 중)
-Company Builder기술창업 교육 R&D 연구 벤처투자 심사평가 자문, 엑셀러레이터, 기술창업 스카우터 CEO멘털 심리 멘토, 출간작품《회사에 다녀도 프리랜서처럼 일하라》《내멋대로 사는 게 뭐 어때서》
by 박대한(더멘토스 | 더멘토스랩 | 대한테크노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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