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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메 Dec 08. 2020

세 번째 단어 : 확실하다

물렁한 나에게도 확실한 것이 있을까

신기한 경험을 자주 한다. 사소하게는 나는 '나는 올리브 안 좋아해'라고 말을 하면 언제부턴가 올리브가 맛있게 느껴졌고, '나는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야'라고 하면 감정에 솔직하지도 잘 다루지도 못하는 상황이 꼭 생겼다. 마치 위에서 누군가가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시험에 들게라도 하는 듯 말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세상에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생각했다. 그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을 뿐이라고. 그렇게 흐르는 대로 모든 것을 내버려 두니 세상의 이치를 깨우친 것 같은 착각도 했다. 그러다 한 문장을 만났다.


" 모든 것을 다 인정한다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과 같다."


흔들리는 나는  마치 물과 같았다

 

유독 이 문장이 와 닿았던 이유는 만사에 그러려니 하는 태도에 나도 물렸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친구의 고민에도 그냥 될 대로 되라고 해라는 말밖에 못 하던 나는 사실 자꾸 변하는 나의 상황과 가치관에 맞서나 갈 용기가 없어 정의하기를 포기한 것이었다.


모든 것은 변한다. 나는 단단하다고 믿었던 시절엔 그런 내가 오만해 보여서 유연해지길 마음먹었다. 너무나 유연해져 형체가 사라질 것 같은 지금은 또다시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해진 것이다. 다만, 이 모든 상황을 나의 기준에서 정의하고 생각하는 과정을 포기한다면 나는 흔들림의 과정조차 인지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자주 번복하고 흔들리는 나를 발견한다. 어제도 그렇다. 하루 종일 이성에 치우쳐 내년 수입을 얼마나 내야 할지, 수익성, 마케팅과 같은 단어들에 휩쓸리다 침대에 누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잠이 오지 않아 집어 든 책은 너무나 감성적이어서 내가 낮에한 생각들이 사실 뭐가 중요할까라는 생각에 까지 이끌었다. 감성과 이성, 현실과 이상에서 균형을 찾지 못해 한참 허덕인 뒤에 잠이 들었다. 

계속 흔들리다 보면 언젠가 잘 깎여있지 않을까?

마침 새벽에 내가 읽은 책 제목도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였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내 믿음은 보란 듯이 깨지고,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내 모습은 어느 순간 홀연히 사라진다. 지금 나의 생각, 꿈, 의미들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상황들에 또다시 흔들릴 거다. 정답은 없다며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만 모순과 번복하는 삶을 즐기는 것. 그게 지금 내가 내릴 수 있는 정답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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