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게 많습니다. 브랜드, 공간, 물건 다 좋지만 가장은 사람입니다. 문득 좋아하는 사람 덕질을 글로 남겨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저의 덕질이 여러분의 덕질로도 이어지면 그것 또한 기쁜 일이 될 테니까요. 저의 첫 번째 덕질 대상은 지난해 6월 타계하신 故임지호 셰프입니다.
"새해니까 데이터도 좀 배우고, 그래 영어..영어는 올해 꼭 잡는거야."
배울 것도 배우는 방법도 넘치는 세상입니다. 좋은 점도 있지만 배움의 끝이 흐지부지 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이런 제게 임지호 셰프의 배움에 대한 열정과 우직한 태도는 어떻게 인생을 꾸려나갈지 힌트를 주었습니다.
길을 걷다 걸인에게 물어봤습니다. “내가 당신처럼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걸인이 답했어요. “기술 하나 배워라" 그 길로 요리를 배웠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그냥 했어요.
걸인에게 인생 조언을 들은 젊은날의 임지호 셰프는 무작정 식당에 들어가 양식, 일식, 한식 분식까지 닥치는 대로 배웠다고 합니다. 그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연탄 일화로도 전해집니다. 그는 유명한 식당의 주방을 보기 위해 연탄 배달을 했는데 그 기간이 무려 8년. 나르는 경지도 달인에 이르러 TV에 연탄의 달인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냥 단순한 일이 아니에요. 나를 정리하는 시간이고 나를 추스르는 시간이고 나를 수행하는 시간이에요.
무슨 일이든 수행하는 마음으로 행하기에 그는 요리도 연탄 나르기도 달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그 역시 처음 시작할 때는 해야 할 것이 많아 압도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단 시작을 하면 그 양은 보이지 않고 오직 지금 해야 할 것에만 몰입한다고 해요.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몰입해서 할 것.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집중이 어려운 제게 많은 귀감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항상 말해요.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기회가 오기 전 먼저 노력을 해라. 끝끝내 기회가 오지 않아도 괜찮다. 이미 너는 그 경지에 이르렀으니
왜 내겐 기회가 주어지지 않지? 왜 내겐 좋아하는 일이 없지? 여러 이유로 세상을 원망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런 원망은 어떤 힘도 없죠. 꿈을 위해 먼저 그에 걸맞은 노력을 하는 것. 아마 개인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임지호 셰프 하면 자연주의 요리, 자연주의 요리하면 임지호 셰프인데요. 한의사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어려서부터 자연의 모든 재료가 생명을 살리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고 배웠습니다. 건강한 재료와 최소한의 조리. 흔히 떠오르는 자연주의 요리법입니다. 하지만, 그의 자연주의 철학에는 한 가지 키워드가 더 있습니다. 바로 ‘에너지'입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디언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계곡이 있어요. 수많은 물과 벌레들이 놀던 곳이지요. 수천 년의 시간과 이야기를 담은 그 계곡의 조약돌로 익혀낸 음식을 만들어 먹습니다.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게 아니지요. 이 몸에 온전히 그 생명력과 이야기를 묻는 것입니다.
그는 현대사회 음식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되며 자극적으로 변했다고 말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의식적으로 음식의 본질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좋은 기억과 자연이 주는 강인함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음식을 감사하게 먹는 것. 여러 핑계로 자극적인 음식만 찾게 되는 것을 경계해야겠다 생각했어요.
요리에 대한 열정과 자연주의 음식 철학으로 많은 사람들을 위로했던 임지호 셰프. 강인하고도 올곧은 그를 움직이게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그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었다고 회고합니다.
임지호 셰프에겐 3명의 어머니가 있습니다. 낳아주신 어머니와 길러주신 어머니 또 길에서 만난 어머니인데요. 어린 시절 생모와 이별해야 했던 그는 평생 생모를 찾기 위해 길에서 방황을 합니다.
그는 결국 그에게 길거리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어머니였고 사랑이었음을 깨닫습니다. 그와 어머니에 대한 사랑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영화 <밥 정(2020)>에도 잘 그려져 있는데요. 특히, 세 어머니를 그리며 108가지 음식을 차려내는 그의 모습을 보며 음식 역시 사랑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느꼈습니다.
사랑과 우직함으로 멋진 요리 철학을 피워낸 임지호 셰프. 그의 모습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한 시기의 우리에게 많은 귀감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