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경쟁적이고 힘들어. 요새 나온 뉴진스 봤어? 걔네 막내가 15살이래. 여자는 젊고 예쁜 게 최고인 이 사회... 안타깝고 숨 막힌다."
주말에 만난 친구는 한 시간 내리 힘없는 푸념을 내뱉었다. 처음엔 무엇이 이 친구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같이 고민하다, 듣다 보니 내 숨도 조여 오는 듯한 감정에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네가 너를 힘들게 하고 있는걸 수 있어. 그런 관념이 사회에서 지배적인 건 사실일 수 있지. 근데 그걸 삶의 잣대로 받아들이는 건 너의 몫이니까"
말을 많이 한 날은 항상 걷는다. 이날도 어김없이 버스정류장 6개를 먼저 내려 내리 걸었다. 하지만 그날은 뭔가 달랐다. 나도 모르게 판단과 평가를 내린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이른 건 비슷했지만 어째서 입을 연 것에 대한 후회나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라는 다짐이 평소처럼 서지 않았다.
지난 몇 년 내가 배운 것 중에 가장 중요한 사실은 모든 일은 내 책임이라는 것이다. 마음이 맞지 않는 친구를 10년째 옆에 두는 것, 게으른 것, 싫은 상황에서 웃어버리는 것 등 모든 일은 내 책임이다. 물론 부족함 없이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내가, 신체도 정신도 모두 건강하게 태어나 이미 많은 것을 누린 내가 하는 이런 말은 한없이 연약하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이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진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모든 일을 내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건 어렵다. 무겁고 고독하다. 하지만 내 책임이란 말엔 내가 다 바꿀 수 있다는 뜻이 포함되어있다. 한국 사회가 경쟁적이고 얄팍한 미의식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중의 잣대를 삶의 잣대로 받아들일 것인가는 나의 선택이고 책임이다. 이걸 온전히 받아들이는 순간 다음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가 어렴풋이 보인다. 처음 회사를 퇴사하며 대리님이 내게 해 준 말이 있다.
"상황을 바꾸는 건 용감한 선택이고 존중해. 하지만 네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야"
그때는 무슨 말인지 모르고 퇴사가 잘못된 선택이라고 말씀하시는 듯해 서운했다. 하지만, 이제야 조금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회사에서 감당할 수없을 만큼의 업무가 오는 일도, 사랑하는 사람과 어설프게 헤어져야 했던 일도,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겠어서 한참을 흐리멍덩하게 있던 날들도 다 나의 선택이다. 일주일을 고스란히 슬픈 감정에 취하고 세상을 원망하며 절망에 빠지는 순간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다 지나가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음은 어떤 행동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지 알아가는 것. 다 내 책임이었던 걸 알고 다음은 어떻게 해야 나 다운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살펴보는 것 딱 그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