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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메 Jan 14. 2023

네 번째 수업 : 친절하게 쓰기

이번 주는 유난히 일이 많았고, 게다가 글쓰기 주제가 술이었고, 나는 소주 한 잔에도 토하는 사람인 탓에 언제나 그렇듯 또 글쓰기가 싫었다.



사람들은 왜 술을 좋아하나 생각해 봤다. 평소엔 늘 딱딱한 이성의 상태로 존재한다. 그러다 한 잔 두 잔 들어오는 술로 마법에 걸리듯 (혹은 풀리듯) 감정에 솔직한 10살짜리 아이로 돌아가는 거다.



실없는 농담에 친하지도 않은 옆사람 턱턱 치면서 웃고, 누구에게도 못할 말이라 믿던 수치스러운 일을 자연스럽게 풀어둔다. 어떤 답이 돌아올까 잠시 이성이 돌아오지만, 그저 '미친'이라는 두 글자로 평가가 끝이 나는 그런 상황들. 게다가 그 밤만 지나면 기억은 10년도 더 된 일처럼 희미해진다.



그래... 사람들은 이래서 술을 좋아하는 거고 나는 이래서 술을 싫어하는 거다. 나도 모르게 핸드폰 액정이 나가있고, 모르는 사람이 나를 알고, 버스 종점에서 내리기 일쑤인 통제력 잃은 상황을 나는 극도로 싫어한다.



어쨌든 글을 써야 했기에 술과 비슷한 대상이 있는지 생각해 봤다.



한 사람이 떠올랐다.



친하지도 않은 내게 안락사에 대해 말했던 이상한 사람. 너무나 사적인 이야기를 불쑥, 그것도 누군가 억지로 재생시킨 것 마냥 뚝딱거리며 하는 사람. 내가 만취해야만 하는 행동을 말간 대낮에 내게 해대는 사람.



그 사람은 자꾸 알고 싶지 않은 비밀 몇 알 내놓았다. 처음엔 어떤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당황스럽기만 하다, 비밀은 이상하게 받으면 빚지는 기분이라 나도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하는 이야기 몇 개를 나눴다.



그렇게 그 사람과 알고 지낸 지 4년. 자연스럽게 각자의 생활에 서로의 모습이 묻어났다. 그 사람은 꽤 밝아졌고, 나는 엉망진창인 모습을 꺼내는 데 조금 익숙해졌다.



그러다 이런 생각까지 닿았다. 아 이 사람이 나한테 온 건, 그것도 죽음을 선택하는 안락사를 이야기하며 나한테 온건, 온갖 밝은 척하며 시들어가고 있던 나를 오히려 살리러 온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꽤 멋진 생각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이 이야기를 과제로 쓰기로 마음먹고 제출까지 막힘없었다. 어쩌면 선생님이 이번 글이 제일 좋다고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수업에 참석했다.



"누메 학생은 비약이 지나쳐요. 신비약이라고 부르겠어요"



글이 친절하지 않다는 말이었다. 너무 비약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돼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평. 선생님은 이런 글은 읽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은 못난 글이라 했다.



도대체 4년이란 시간을 어떻게 1,000자로 줄인단 말인가 볼멘소리가 마음에 일었다. 수업을 들으며 처음으로 선생님 말이 가르침이 아닌 잔소리로 들렸다. 내 생각이 다 맞아! 하며 넘기려다 주변 다른 학생들 표정을 봤다.



내 글을 이해하려는 듯 열심히 펜을 쥐고 따라가다 이내 갸우뚱하는 모습.



그제야 글이 불친절한 게 뭔지 느꼈다. 내가 그 사람을 만나며 느꼈던 이상한 해방감을 타인에게 선물하는데 실패했구나. 아 또 선생님이 맞는 말씀을 하셨구나.



결국 난 친절한 글을 써야 한다. 그러자 이내 정신이 아득해졌다. 천성이 불친절한 탓에 글이 친절해지려면 긴 시간이 필요할 거다.



그럼에도 안 쓰고는 못 배기기에 또 친절한 글을 만들어내려 부단히 시간을 쓰겠구나.



나는 원래 싫어하고 못하는 건 가차 없이 버리는 사람이다. 글쓰기는 나한테 정말 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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