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엉부엉 Jan 24. 2023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에 의미 같은 건 없어

어린 룰루 밀러가 아버지에게 인생의 의미가 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의미 같은 건 없어!!!'라고 답한다. 개개인의 인생이 특별해 보이지만, 실상 그들 또한 개미 하나에 지나지 않는 미물일 뿐이라며,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자를 언제나 경계하라고 조언한다. 아버지는 허무주의를 직시하고 있지만 불행하지는 않다.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혼돈뿐이라는 명제를 받아들이며 그저 그의 행복을 찾아 뚜벅뚜벅 걸어갈 뿐이다. 그러나 어린 룰루 밀러에게 허무주의를 직시한다는 건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럼 삶을 지속할 이유가 무엇인 건지,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는지, 그 원동력은 무엇인지. 정답을 찾지 못한 채 살아가다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학자의 인생을 탐구하게 된다. 그의 일생을 살펴보면 혹시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만 같아서 말이다.


한 사람을 계속 나아가도록 만드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책의 초반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전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물고기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과학자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어류의 1/5은 데이비드와 그의 동료들이 밝혀냈을 정도로 일생을 바쳐 물고기 연구에 몰두했다. 그러나 그의 인생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형을 일찍이 떠나보내 상실감에 빠지기도 했으며, 학자로 인정받기 시작했던 시기에는 화재와 대지진으로 연구 표본을 모두 날려버리기도 했고, 개인사로는 자식을 셋이나 잃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몇 십 년간 수집한 표본이 날아간 순간에도 좌절하지 않고 해결책을 찾아냈으며 이윽고 바로 실행해나갔다. 심지어 부인을 떠나보냈을 때도 금방 재혼을 해버렸다(?).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힘, 혼돈 속에서도 그는 계속해서 질서를 찾아내려 애썼고, 룰루 밀러는 그 힘의 원천이 '긍정의 방패'라고 보았다. 모든 것은 잘 풀릴 것이고, 나는 충분히 그만한 능력이 되기 때문에 언젠가는 이루리라는 긍정의 방패는 자기 기만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내 인생은 잘될 거야, 나는 성공할 거야 혹은 나는 이 자리를 지킬만한 자격과 능력이 있다는 일종의 의미 부여, 그것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뒤틀린 시선

그렇지만 데이비드의 인생에는 엄청난 결함이 있었다. 첫 번째는 그가 어떤 여인의 의문사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스탠포드 초대 총장이라는 본인의 직위를 위협하던 여인을 독살했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데이비드가 독살했을 가능성과 그렇지 않을 가능성 모두를 염두에 두고 서술하고 있으나, 그의 청부살인 의혹은 매우 합리적인 의심으로 해석된다. 두 번째는 데이비드가 우생학의 열렬한 지지자였다는 것이다. 국가 발전을 위해 범죄자나 매춘부 등을 부적합자로 규정하고 그들을 불임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고, 심지어 부적격자의 불임 합법화를 일부 주에서 법제화시키는 엄청난 오류를 낳기도 하였다.

그가 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는 '자연 속에는 거대한 사다리가 존재한다'라는 관념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가장 고등한 생명체이고, 그 밑에는 하등한 생명체들이 사다리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생명은 위계질서대로 진화해왔다는 것이다. 모든 생명에는 경중이 있다는 것, 그런 관점에서 '나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어'라는 선민의식과 자기 기만이 나왔으며, 동시에 '나와 같은 사람 혹은 생명체가 아니면 그럴 자격이 없어'라는 결론으로 귀결된 것이다. 밀러는 이 지점이 데이비드가 다윈의 진화론을 매우 잘못 해석한 지점이라고 꼽는다. 진화론은 모든 생명의 진화가 같은 선상에서 출발하지 않음을 전제한다. 생태계가 다양한 생명체로 이루어진 이유는 각자가 처한 상황과 환경에 맞게 진화해온 결과라는 것인데, 그는 여기에 사다리를 도입해 진화의 꼭짓점이 인류라고 잘못 해석한 것이다. 또한 유전적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DNA의 결합을 전제로 하는데, 데이비드는 되려 동일한 유전자로 고립시키고 있다는 오류를 범한다. 이는 진화적으로 매우 비과학적이라는 게 룰루의 주장이다. 윤리적인 관점뿐만 아니라 과학적인 관점에서도 우생학은 학문에서 배제된 이유가 있음을 설명한다.

한 사람이 얼마나 입체적인 면모를 가질 수 있는지, 왜 비판적 관점이 항상 동반되어야 하는지, 그렇지 않을 때 우리가 어떤 오류를 범할 수 있는지 데이비드를 통해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의 판단은 정확하기 어렵고, 그렇기에 함부로 확신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이 세상이 내가 아는 세상이 아닐 수 있다는 열린 자세, 그것이 데이비드의 일대기에서 느낀 지점이다. 그리고 이 메시지를 함축해 놓은 듯한 마지막 반전이 한 번 더 나오는데, 그것은 사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발견이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20세기 말 분류학자들은 사실 '어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다. 생명체를 하나로 범주화하기 위해서는 그 하위에 속하는 모든 생명체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포유류는 젖을 내어 새끼를 키우는 동물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포유류에 속한 모든 생명체는 이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어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비늘로 덮여 물속에서 사는 생명체라고 외피로 특정하기에는 걸리는 부분이 너무 많다. 이 책에 나온 소, 연어, 폐어를 두 분류로 나누어보라는 예시가 딱 그러하다. 외피에 집중해 보면 인간의 직관상, 소//연어, 폐어로 나누겠으나 사실 연어와 폐어 사이에는 비늘이라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폐를 이용해 숨을 쉰다는 관점에서 보면 소, 폐어//연어로 나누는 게 맞는다는 것이다(연어는 아가미로 숨을 쉬기 때문). 이렇듯 하나의 공통된 특징으로 묶을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는 이미 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이는 정설이라고 한다. 데이비드 조던이 일생을 받쳐 연구한 물고기는 학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분류였다는 것이다.

밀러는 이 지점에서 범주화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지, 과연 우리 사회가 들이미는 정신적/도덕적 척도는 타당한 것인지, 나아가 데이비드가 주장한 생명체의 사다리는 얼마나 허구로 가득한 관념이었는지를 짚어낸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그어놓은 어떤 선 너머에 새로운 생명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우리가 모르는 다른 세계는 있지만, 그것은 여전히 이 세계 안에 있다는 것이 이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인 것이다.

밀러는 이제 인정한다. 세계는 혼돈으로 가득한 것이 맞고, 우리가 함부로 질서를 부여하고 범주화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그녀는 불확실성 속에서 희망을 본다. 어쩌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허무주의를 직시하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고, 전에 없던 관계를 맺을 수도 있으며, 새로운 타인에게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배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이 너무너무 좋다고 느꼈던 이유는 바로 이 지점 때문이었다. 지난주에 봤던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와도 같은 맥락이라는 점에서 온 우주가 나에게 희망을 건네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우연히 집어 든 영화였고 우연히 골라본 책이었는데 같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니.

책을 덮고 나서 아! 넘 좋다...! 근데 이걸 뭐라고 표현하지... 뭐가 좋은 거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아서 리뷰로 정리해 보니, 이제 조금 생각이 정리가 된다. 이 세계는 혼돈과 허무로 가득하기 때문에 삶에 고통이 동반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너무 다행인 것은 우리가 그토록 찾는 희망은 역설적이게도 혼돈의 불확실성에서 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굳이 애써서 세상을 핑크빛 필터로 볼 필요는 없다. 다만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선을 긋지 말자. 경계를 흐릿하게 둘 때 & 그리고 모두에게 다정하게 굴 때, 새로운 사건과 새로운 사람이 찾아오고 그것이 높은 확률로 삶의 의미를 부여해 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일과 삶을 회고한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