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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부엉 Feb 29. 2020

내 일과 삶을 회고한다는 것

새로운 루틴 '회고하기' 를 실천하고 나서 느낀 생각들

매주 일요일 저녁은 회고하는 시간

올해 들어서 새로 생긴 습관이 있다면 바로 회고하기다. 매주 일요일 저녁이면 조용한 음악과 차 한 잔을 떠놓고 한 주를 되돌아보며 회고 노트를 작성한다. 

이번주에 인상 깊었던 일, 내가 해낸 것과 경험한 것, 그날그날의 상태와 기분은 어땠는지, 이번주에 칭찬해줄 만한 일은 무엇인지, 어떤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는지, 그리고 다음주는 어떤 일을 준비해야하는지. 

30분 남짓한 시간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온전히 내 마음에 집중하게 된다. 화면 속 텍스트가 아닌, 펜으로 노트에 꾹꾹 적어나가는 것도 이렇게 해야 마음의 소리가 더 잘 들리기 때문이다. 노트북으로 끝이 없는 빈 화면을 채우고자 하면, 텍스트에도 끝이 없어지게 된다. 선별하거나 고심할 것도 없이 일단 주절주절 쓰고 지우고… 그런데 한정된 공간의 페이퍼와 함께라면 생각은 달라진다. 한 자 한 자 마음을 다해 채우게 되는 것. 

“이번 주에 인상 깊었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라는 질문에, 잠시 침묵의 시간을 갖고 문장을 적어나가는 그 찰나의 타임이 나를 회고의 시간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빌라선샤인 워크북의 회고노트


기록하지 않으면 없는 일이 되어버릴 수 있다

지난 두 달간 써온 회고일기를 오늘 다시 읽어보았다. 얼핏 일기와 비슷해보이긴 하지만 조금 더 객관적이고 디테일하다는 측면에서 확연히 다르다. 나의 복잡다단한 감정을 쏟아내는 내면일기가 아니라, 명확한 질문을 두고 ‘나’ 라는 청자에게 쓰는 외면일기에 가깝다. 내가 무엇을 잘했고 부족했는지, 다음 단계로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몇 주간의 기록을 쭉 훑어보니, 내가 일과 삶에 어떤 방향성을 지니고 싶어하는지가 보이고,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보여서 뿌듯했다. 

그래서 기록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행위를 기록함으로써 나는 한번 더 기억하게 된다. 그 기억이 또다른 행동을 낳게 되는 것이고. 

별거 없는 우리의 삶이라지만 기록하는 순간 별것이 아니게 된다. 기록하지 않으면 없는 일이 되어버릴 수 있다. 그리고 이토록 자잘한 나의 일과 삶은 내가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회고하기는 내 일과 삶에 동사를 만드는 일

몇몇 여성들이 그렇듯, 나에게도 겸손의 손사레를 치는 버릇이 있다. 누군가가 칭찬을 해주면 에이 아니에요 이것까지 했으면 더 좋았을텐데요 라며 아쉬운 점을 먼저 찾는다. 당당하게 자랑할 만 한데도 이상하게 자기검열이 먼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생각하는데도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데, 회고하기는 이런 생각을 타파하는데 좋은 도구이다.

한 발자국 떨어져나와 내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과정적인 측면을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결과론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이 모든 물음에 답을 하다보면 적어도 ‘이건 다들 하는거지’ 혹은 ‘이건 아무것도 아닌데…’ 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된다. 

회고하기는 평범한 인간의 일주일 속에서 그냥 흘러갈법한 경험을 붙잡고 기록하고 기억하게 한다. 그냥 정신없이 일했다- 라는 경험을 뜯어보다가 의외의 지점을 발견하고 새로운 동사를 붙여주는 것. 회고하기는 이렇게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내 일과 삶에 동사를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아무도 관심없을지라도) 나만의 서사를 내가 기록해 나가는 것이고. 


회고노트를 작성한 뒤로부터 나는 일상을 대하는 컨디션이 조금 좋아졌다. 짜증나고 무의미해 보이는 경험들이 알맹이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때문이랄까. 그것이 설사 근거없는 것이라 해도 내가 나를 기록해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무언가를 꾸준히 해본 경험이 별로 없는데, 회고노트는 앞으로도 쭉 계속 함께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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