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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순 Apr 02. 2022

삼개월간 엄마와 함께 살기 후기

2022년 봄, 캘리포니아에서 

약 구십일 간의 여정 

거의 구십일이다. 엄마와 함께 둘이서 생활한 시간이. 왜 나는 이 90일을 생각하면서 미국의 리얼리티 쇼 '90days Fiance 구십일 약혼녀' 제목이 자꾸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삼개월은 한 사람이 평생의 배우자를 결정할 수 있는 짧으면 짧고, 또 길면 긴 시간이다. 그 시간동안 이 정도면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았고, 이 정도면 그래도 서로에게 덜 상처를 주었으며, 이 정도면 엄마도 한국에 돌아가서 '딸네 집에서 잘~있다 왔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내 기준에는), 이 정도면 나도 내 재정에 큰 압박감을 받지 않으면서 균형있게 지냈다. 그랬다. 나는 혼자 살때는 '남편도 멀리 있는데, 친정 식구들도 멀리 있는데, 나 혼자 즐기면 안되겠지.' 이런 마음으로, 뭘 사먹어도 소심하게 덜 비싼 것만 사려고 했다. 그러나 이제 내게는 든든한 엄마가 있으니, 엄마와 함께 라는 구실로 이것 저것 맛난 것도 먹어보고,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곳에도 도전했다. 

이제 다음주에 엄마가 이 곳 캘리포니아에서 한국으로 돌아가시니, 조금이라도 마음속에 이러한 생각과 소재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을때, 미루고 미루었던 '글쓰기'를  해 보고자 한다. 

#생각해 보니, 어쩌면 가장 길었던 동거 기간 

생각해 봤더니, 엄마와 내가 단 둘이서, 약 90일을 한 집에서 생활했던 적이 언제였던가? 마흔이 넘은 내 기억 속에 살아있는 대답은 '내가 대학교에 가기 전까지 나의 고향 도시 아파트'가 아니었나 싶다. 나는 스무살이 되기 전까지, 지방의 한 중소도시 아파트에서 살았었다. 그 곳에 가면 '아, 고향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하는 찐 향수어린 마음은 사실 좀 잘 들지 않는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때 엄마는 너무도 열심히 돈을 버시느라 바쁘셨고, 나는 성장을 하느라 (학교에 가고, 과외를 받거나 학원에 가고, 그것도 아니면 독서실에 갔었다.) 어떤 인생에 대한 대화를 나눈 건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당시 십대와 사십대였던 나와 엄마가, 이 곳 캘리포니아의 작은 아파트에서 사십대가 된 딸과 칠십이 가까워지는 엄마가 구십일 동안 인생과 삶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대담처럼 진행한 건 아니다. 그래도 이 구십일의 시간이 우리 두 사람만의 어떤 '쫀쫀한' 시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사는 이 도시가 주는 고요함과 자연 덕분이 아닐까 한다. 깨끗한 공기, 집 밖을 나가면 만날 수 있는 이름을 알 수 없지만 예쁜 꽃과 나무들. 여기에서 엄마가 위로를 받고, 스스로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셨으면 한다.  


내가 배운 것 

엄마와의 구십일간 내가 배운건 많다. 우선 칠십이 가까워지심에도 정정하고 코끼리 다리 만큼이나 튼튼한 몸을 갖고 계시다는 거다. 그 몸은 그냥 집에 있고, 누워만 있으면 절대로 만들어 질 수 없는, 강박에 가까운 자기 관리와 자기 주문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엄마는 한국에 있을 때에도 그렇게 했다면서, 그건 마치 본인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것인양, 바닷가나 산에 갈 때, 아무튼 어떤 '땅의 영험한 기운'을 받을 수만 있다면 당연하다는 듯이 운동화와 양말을 턱턱 벗어재꼈다. 그리고 비스듬한 팔자걸음으로 천천히 걷는것 같은데도, 막상 나 역시 맨발로 걸었을 때는 그 속도가 '하루 이틀 맨발로 걸어본 사람이 아님'을 한 눈에 탁, 알수 있게 하는 그런 맨발치곤 상당한 걸음걸이로 걸으셨다. 

-"@@씨 어머님은 미국 안 심심해 하세요?" 

내가 주변 한인들에게 '친정 엄마가 여기 미국에 와 계세요.' 라고 하면 바로 나오는 첫번째 대답은 '와, 엄마랑 같이 있어서 넘 좋겠어요.'와 두 번째 질문이 저것이다. 하긴. 미국은, 적어도 내가 경험한 미국은 '무엇을 해도 시간이 남고, 심심한 곳. 그래서 어떻게든 좀 발악을 해서라도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오히려 엄마는 반대였다. 나는 하루를 오직 돈벌이에만 에너지의 80을  쓰는 것 같은데, 엄마는 생산적으로 알차게 사셨다. 그러니까 그녀의 '일상 시계, 루틴'은 놀라울 정도로 딱, 자리가 잡혀 있고 그래서 단단한 것이었다. 그런 일상들이 모여, 그런 정신력이 모여 오늘날의 엄마를 만들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엄마의 루틴은 오전에 딸을 위해 사과깎아 주고, 오트밀 우유 담아 주고, 꿀물 만들어주고, 견과류와 프로 바이오틱을 모두 담아 도시락 가방에 싸서 8시 전에 나를 출근 시킨다. 오전은 좀 여유롭게 보내다가, 오후에 다시 딸래미가 밥을 얻어 먹으로 꾸역꾸역 집으로 돌아오면, 이것 저것 이리저리 뚝딱뚝딱 만들어 밥을 먹인 다음, 설겆이까지 하고, 그때부터는 밖으로 나간다. 밖으로 나가서 바닷가건 길이건 십리건 이십리건 무작정 마구 걷는다. 그리고 '땅과의 접속'이 가능한 어떤 신성한 기운을 느끼면 그때부터는 훌러덩 벗어서 맨발로 걸으시는 것이다. 저녁에는 노동자 모드가 되어 온라인으로 일을 하신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그 '강인한 정신력'은 옆에서 지켜봐도 놀라운 힘을 갖고 있다. 그 힘으로 엄마는 저녁에 일도 하고, 거의 매일 시도 쓰시고, 또 딸을 위해 식사준비까지 하고, 맨발 걷기를 하루도 빠지지 않으시는 그야말로 원더우먼의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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