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욱 소설집
[점 두 개]
여러명의 인물들이 이 한편의 소설에 나오는데, 소설의 진행 방식은 ‘한 사람이 말 하는 방식’이라서, 누가 누구인지 헛갈린다. 술주정뱅이 남자도 나오는것 같고, 또 토니라는 검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한 남자도 나오는것 같고, 누가 누구이고,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메세지가 강한 작품은 아니다. 뭔가 주저리 주저리 말은 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하나의 뭔가로 엮어내는 무엇인가는 없는것 같다. (아니면 독자인 내가 그걸 못 잡아냈을 수도 있지.)
이 소설에는 천사인 남자가, 하늘로 떠 오르려고 했는데, 그걸 목격한 사람은 자살하려는 모양으로 착각함.
맘에 드는 표현들 [리디북스, 전자책 버전 쪽수 표기]
-당신 목소리는 낮은 구름 같아서 듣기에 좋았지. 178/488
-당신은 흐릿하게 웃는 얼굴을 가진 사람. 뜨겁지 않아서 안온한 사람. 적절한 거리를 알아서 평화로운 사람. 그후로 나는 당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조금씩 고마워하는 사람이 되었네. 179/488
-당신이 이 목소리를 들을 즈음에는 영영, 우리는 만나지 못할 거야. 내가 당신 앞의 허공에 떠서 당신을 바라보아도 당신은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겠지. 서운해라. 그래도 지나간 시간이 모여 있는 세계가 어딘가에는 있을 거예요. 그 시간들이 다시 돌아올 세계 역시. 181/488
죽음에 대한 이야기, 역상에 대한 이야기, 들뢰즈, 철학, 경제, 자본주의, 등등 소재들은 많음.
*제목: 큰점 두개, 이건 뭘 의미하는 걸까? 작가는 왜 이렇게 여러 인물을 한 명의 독백 형태로 (굳이 혼란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썼을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것 같긴 한데 말이다......
[유명한 정희]
이 책에서 (이 책을 다 읽지 않은 상태이지만) 가장 쇼킹하고, 깊고, 어둡고, 조금은 섬뜩한 소설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나타나는 죽음, 자살, 우울함, 그런 감정들은 다른 소설에서도 느껴진다. 또한 정치, 한국의 현대사, 이런 것에도 아주 작가가 말하고 싶은 부분, 현대사의 어떤 부분이 작가를 많이 건드리는 것 같은데, 꼭 집어서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 소설에서 ‘살의’는 박정희의 죽음 혹음 혹은 현대 정치 역사와 연결해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고서는, 그냥 초등학생 남자 아이가 친구한테 살의와 적의를 느낀 다는 것, ‘너는 망령이 들거야’라고 저주를 퍼붓는 무시무시함 이런걸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저주가 삼십년이 흘러 ‘정희’라는 인물이 느끼는 타인에 대한 살의와 자살로 이어진 게 아닐까 싶다.
이와 연관된 문장:
-고무 물통에서 천천히 머리를 꺼냈다. 그 순간, 왜 였을까? 내 친구는 빨간 물통에 고개를 넣은 채 숨을 참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을 뿐인데, 그랬을 뿐인데, 나는 그에게 갑작스럽고도 격렬한 반감과 적의를 느꼈다. 그 반감과 적의가 너무 맹렬해서 나는 나 자신에게 경악했다. (중략) 대체 어떤 반감, 정의가 나를 사로 잡았던가? 229
시니컬함, 아재 개그 스러움, 같은 것도 느껴진다. 개인적 취향인데, 나는 이 유머 코드가 맞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런 이상한 시시껄렁한, 재미없는 유머를 자꾸 자꾸 드러내는걸까? 소설은 무척 어둡고 진지하고 깊고 무거운데, 후움. 그와 맞지 않는 것 같아 보이는 뭔가 '깨작거리는 듯한' 유머가 여기저기에서, 그러니까 되게 히스테릭한 웃음처럼, 마치 조롱하거나 비웃거나 시니컬하게 낄낄, 키득키득 거리는 웃음처럼 느껴진다.
[밑줄그은 문장들]
-묵념을 하면, 묵념을 하는 동안 무언가가 내 곂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그게 좋다.
정희는 덧붙여 말했다. 그래서 나는 구름에 대해 묵념한 적도 있고 우리 집 마당의 사철나무에 대해 묵념을 한 적도 있고 거리에서 죽은 비둘기 앞에서도…… 221/471
인생이란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에 툭, 끊기기도 하는 것이다. 227
몰랐던 표현: 악머구리를 끓는 중학교 시절 229
떠올랐던 단어들: 사관학교, 전체주의, 군대, 한국의 70년대, 80년대
[혹자가 말하길]
뭔가 위트가 있고, 그 위트가 때로는 좀 뭔가 ‘아재개그’스러워서, 도무지 독자인 나와는 코드가 안 맞네. 라고 좀 갑갑해 할려고 치면, 이야기가 다시 조금 재미있어지고, 그랬다. 뭔가 소설과 시소를 타는 기분이었다. 주인공 이름이 ‘염’인 것은, 뭔가 계속해서 작가의 화두, 머릿속에 죽음이라는 소재가 붕붕 떠다니고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귀신 이야기. 죽음. 사람의 죽음. 어쩌면 죽은자와 산자가 같이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것에 대해 능청맞게 쓴 것 같다. 뭔가 소설이 귀여운 구석이 있다.
‘유명한 정희’에 비해서 훨씬 가벼운 느낌, 경쾌한 기분이 살짝 있다. 죽음이 소재이고 무겁고 진지한 면도 있고, 또 좀 짜증에 가까울 정도로 독자인 나와는 코드가 안 맞는, 좀 말도 안되는 농담이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뭔가 귀여운 데가 있는 소설임.
[밑줄그은 문장들]
-낯익은 등을 가진 사람이 구부정한 자세로 걷고 있으면 그게 누구든 아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마련이었다. 그런 게 고향이라고 염은 생각하고 있었다 279
-(상략) 그러면 혹자도 지우와 염을 바라보았고 웃는 낯을 지었다. 웃는 낯이라고는 했지만 얼굴의 근육들이 제멋대로 일그러진 모습이어서 ‘웃는다’는 신호를 빼면 결코 웃는다고 말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웃고 잇는 혹자의 등 뒤로 햇살이 흘러 들어와서 허공에 떠 있는 먼지들이 하나하나 투명하게 보였다. 그 모습이 어쩐지 환하고 아름다워서 지우와 염은 뭔가에 홀린 기분이 되었다. (묘사가 참 좋다) 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