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구멍을 메우는 법 - 집을 나가야 합니다.
최근 들어 내게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밖에서건 안에서건 조금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고, 여전히 그 잔해들이 내 머릿속에서 부유물들처럼 부웅 떠 다닌다. 그 잔해물 때문에, 가끔은 잠을 자다가 벌떡 벌떡 일어나서, 분개하기도 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그런 생각이 들면 나도 모르게 내 몸과 마음이 땅밑으로 자꾸 가라 앉는 기분이었다. 사실, 지금도 조금씩 가라앉기도 한다. 겉으론 멀쩡하다. 직장에 가면 하하호호 잘도 웃는다. 그런데 혼자 차에 있으면 그렇게 슬프더라.
그렇게 점점 무거워지는 나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나는 글을 쓰기로 한다. 힘든 일이 닥칠수록 나는 가장 나 다워져야 한다. 그렇게 나 다운 길, 나 다운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나를 괴롭히던 잔해물이나 부유물들은 가루가 되어 사라지지 않을까. ‘가장 나 답게 사는 법’을 생각해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조금 답이 나오는 것 같다.
나는 그래도 사람을 좋아하지만, 또 나만의 공간과 시간이 있어야 한다. 마치 이기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자기만의 방’은 내게 일종의 조건이다. 나라는 사람이 있기 위한 조건. 물건으로 치자면 ‘이것을 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저것’이다. 나는 이렇게 사람들을 모르는 커피숍에 앉아 글을 쓸 때, 가장 나 답다.
나는 글을 쓰면서 나를 찾고, 나를 표현한다. 그리고 남의 글을 읽으면서, 혹은 남의 목소리로 다른 작가가 쓴 문장을 들으면서, 마음이 울컥해지고, 동감을 얻고, 힘을 얻고, 영감을 얻는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 글을 쓰는 사람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문장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뭔가를 할 때, 나는 나 다워진다. 그들의 에너지를 받으면서 더 나 다워진다.
나는 본연적으로 내가 나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강박적 믿음이 있다. 그게 안되면 마치 내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먹을 밥값은 내가 낸다. 이건 뭔가 내게 신조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남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기 보다, 독립적인 사람이다. 월세를 내가 낼 때, 나는 나 다운 것 같다. 알고 있다. 이것이 얼마나 스스로를 피곤하게 하는 지 말이다. 그냥 둘이 살 때, 옆사람 마음을 잘 맞춰 주면서, 그렇게 사는 것도 답인데, 그냥 그건 내 답은 아니라는 거다.
나는 정말 여행이 좋다. 유럽은 그렇게 잘도 쉽게 쉽게 막 돌아다녔는데, 이 어마어마한 땅덩어리, 미국은 어렵다. 미국에 산지 올해로 꼬박 십년인데, 미국 여행은 뭔가 피곤하다. 아무래도 차로 계속 움직여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나 혼자 장거리 운전은 안해봐서 그런것 같다. 그리고 교통 사고에 대한 무서운 공포가 있다. 그러다보니 자꾸 움츠러 들고, 그러다 보니 생활 반경이 좁아진다. 아아아…… 이러면 안된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왜 나 스스로를 가두나 말이다. 내가 사는 이 작은 도시에도 공항이라는게 있으니 공항을 이용하고, 우버를 타고서라도 여행을 하겠다.
요즘은 차라리 주중이 고맙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쨌든 출근을 하고 일을 시작하면, 적어도 머릿속 잡생각들이 사라지니까 말이다. 그리고 어쨌든 사람들과 이리 저리 말을 섞고, 일을 하고, 서 있고, 걸어 다니고, 말을 하고, 웃고 떠들고, 조금 신경질이 나고, 뭐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다 가 있으니까 말이다. 저녁은 조금은 힘들 때도 있다. 혼자 먹는 저녁은 양조절이 잘 안된다. 어떤 직장 동료는 몸매관리를 위해 저녁을 그냥 대충 때운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 꽤 된다. 그리고 그게 어떨 땐 맞기도 하고, 어떨 땐 틀리기도 하다. 주중의 저녁은 나는 씻고, 먹고, 쉰다. 그래도 사실 시간이 조금은 남는다. 그렇게 남는 시간을 뭔가를 만들고, 생산하고, 그렇게 하진 않는다. 쉬는 것도 절대적으로 중요하니까 말이다. 내 일은 단기간에 돈을 많이 벌 수 없다. 그래서 장기간 굼벵이처럼 느릿느릿, 혹은 잘 쉬어 주면서, 조곤조곤 말하듯이 살면 된다. 그것이 나의 평범하고 평화롭고 고요하고 조금은 지루한 평일 저녁이다.
주말에는 게으름과 싸워야 하고, 머릿속 잔해들과 싸워야 하고, 그리고 다시 다가오는 평일을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해 몸을 움직여야 한다. 게으름과 싸우고 머릿속 잔해들과 싸우기 위해서 나는 여러 실수와 실패를 했다.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 수업을 신청했다가, 하루만에 뒤로 나자빠졌다. 현재의 나처럼 마음이 흔들흔들 거리고, 붕괴되기 쉽고, 그런 상태에서 뭔가 새로운 걸 더하면, 그 결과는 실패였다. 그런데 마음에 구멍이 뻥, 뚫리다 보니,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이리 저리 꽝꽝 부딪히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그 새로운 경험들이라는 것이 좀 손해보는 일들이 많다. 내 마음이 그러니까. 이미 손해본 마음을 자꾸 보상하고 싶어서, 뭔가를 벌이는데, 그러다보니 여기 저기 멍이 들면서도 쉽게 멈추지 못한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이전에는 해 보지 않았던 것을 해 보았다. 좀 수강료가 비싼 필라테스를 신청했고, 한번 수강했는데, 나머지는 수강하지 못했고, 환불도 잘 돌려받지 못했다. 억울한 마음이 막 들었지만, 내 잘못도 있고, 성급하게 결정한 내 실수가 크지. 나의 성급한 마음. 그것이 가장 큰 오류다. 마음이 성급하고, 성이 나 있고, 화가 가라앉지 않았고, 뭔가 억울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슬픈 마음이 컸다. 자꾸 눈물도 막 났고, 그냥 뭐가 그렇게 슬프고 그랬는지, 질질 짜기도 했고, 그런 시간이 길기도 했다. 그래서 혼자 있는게 좋지 않았다. 그래서 뭐든지 막 하려고 했던 건 아닐까. 필라테스고. 온라인 수업이고……. 이 실패에 대해서 후회하나? 후회가 된다. 제대로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식으로라도, 나의 이 개인적 위기를 잘 넘어가려했던, 버티려 했던 나의 노력에 점수를 주겠다.
이번 주말은 등산 재개를 했다. 등산이라고 거창한 명사를 붙이기 무안할 정도로 한국인에게는 가벼운 산책 정도겠지만, 나는 굳이 등산이라는 표현을 쓰겠다. 그런 건강한 취미 활동을 혼자, 잘 한 나를 칭찬해 줘야 하니 말이다. 역시, 혼자 잘 놀아야, 다른 사람과도 잘 놀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엔프제라서, 기본적으로 관계 지향적인 사람이고, 그러다 보니 관계에 에너지를 얻기도 하지만, 또 많이 쓰기도 해서, 나만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혼자하는 산책만큼 상쾌한 것도 없다. 등산버디buddy가 없는 건 아니다. 다음주에는 그 친구를 데리고 올 것이다. 산책에 가까운 등산을 했고, 혼밥을 했고, 지금은 스벅에서 커피를 기다리고 있다. 이 곳에도 봄이 왔으니, 아이스 라떼다. 이렇게 나는 약간의 소비를 하면서, 나의 마음을 달래고, 휴식을 취한다. 맞다. 인생은 그래도 살아 볼만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