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아포스티유와 공증'

미국에서 법적 서류 할때의 심리적 위축감

by 달순


요즘 같은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대에,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야!'라고 말하면 뒤쳐지는 걸까?

우리에겐 영어를 한국어로 쉽게 번역해 주는 챗 지피티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살면서 영어로 된 법적 서류를 하는 것은, 그 일이 끝나지 않는 이상 신경을 건드리는 일이다. 이렇게 어리버리해도 되는걸까. 실제로 나는 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린 미국에서 월급 받는 사람인데, 이리 어리버리해서 나중에 연금이나 제대로 타 먹을 수 있을까? 내가 이런 말을 했더니 그 친구도 그런다. '사실 나도 그 걱정을 해.'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아직 석달이 채워지지 않았고, 남은 서류 작업과 뒷 일들이 남아 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이다. 상속 관련 서류 작업이다. 한국의 법무사는 '반드시 한인 공증인을 찾으셔야 합니다'라고 강력하게 말했다. 그러나, 꼭 그래야 했을까? 내 주변에 있는 똘똘한 한인은 굳이 한인 공증인을 찾지 않았고, 공증도 받고, 본인이 번역을 하고 국무부에 가서 서류도 다 했다고 한다. 미국에 살지만 서류를 잘 하는 사람들은 저렇게 본인이 알아서 척척 영주권도 신청하고, 시민권도 신청하고, 상속 관련 서류도 만들더라. 아, 왜 나는 그게 잘 안될까? 안되는 것도 싫지만, 자책하는게 더 싫다. 그래, 결국 나는 이 마음을 타파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거다. 타지에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쫄아드는 마음을 타파하자!

한국의 법무사가 먼저 서류를 만들고, 그 서류를 공증을 받아야 했고, 공증받은 서류를 아포스티유 받아야 했고, 마지막으로 완성된 그 서류를 다시 한국의 법무사에게 보내야 했다. 그냥 그 모든 과정들이 좀 어렵게만 느껴졌다. 안 해 봐서 그랬다. 그리고 믿을 수 있는, 도와줄 누군가가 없다고 마음에서 자꾸 징징거렸다.

한국 법무사에게서 이메일로 첨부 파일이 도착했다. 그 서류를 제대로 읽는데에도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법적인 서류를 구체적인 설명 없이 툭, 보내놓고, 마지막 장에 설명 문구가 있었다. 몇 번을 본 다음에야 알게 되었다.

1번 서류가 있고, 그 서류의 견본이 바로 뒤에 있고, 2번 서류가 있고, 그 서류에 해당하는 일종의 예시 '견본'이 또 있었다. 그 서류들을 공증 받아야 했다.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법무사가 공증을 받으라고 한 서류중에 그가 만들어주지 않고 그냥 이름만 주고, 그걸 공증 받으세요. 라고 한 것도 있었다. 예컨대 그 서류들은 이런 것들이다. 내 주소가 여기 라는 것. 등.

그리고 공증해 줄 사람을 찾기 위해 인터넷 바다를 잠시 헤매었다. 한인 공증이라는 검색어로 주변 지역을 검색했다. 몇명이 쭉 떴다. 그 자료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얼마나 오래된 자료인지, 이런 것들도 차분하게 꼼꼼하게 따져야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냥 이 모든 일들이 빨리 '처리'되기만을 바랬다. 그래서 전화번호를 눌렀다. 당연히 몇 개의 번호는 없는 번호이기도 하고, 바빠서 그런지 전화를 안 받기도 하더라. 그리고 연결된 두 사람이 있었다. 첫번째 통화가 된 목소리는 내 또래의 여자 목소리였다. 그런데 참 그냥 굉장히 사무적이고 딱딱했다.

"공증은 제가 하는거고요, 저는 장당 얼마를 받습니다. 그런데 번역은 그냥 번역기 돌려서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아포스티유는 그건 제가 해 드릴 수 있는게 아니니 본인이 직접 하셔야 해요."

참, 그냥 그 짧은 통화만으로도 훔, 뭔가 안 맞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별로였다. 그리고 결정적인건 나는 그 Secretary of State 국무부에 가고 싶지 않았다. 새크라멘토에 있는 국무부에 가야 아포스티유를 할 수 있다. 아포스티유는 '이 서류가 이 나라에서 만들어진 진짜 서류임'을 증명 하는 거란다. 그런데 그걸 하려면 적어도 서너시간은 운전을 해야 했고, 모르는 곳을 운전하는 것은 더욱더 쉽지 않은 일이니까 말이다. 그래, 돈이면 해결이 되겠지. 그런 마음으로 다음 번호를 눌렀다. 남자였다. 그 남자는 아는 체를 많이 했다. 어, 그거 우리가 해 드릴 수 있어요. 나는 그의 경험에 의지하기로 했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가격 흥정까지 하게 되었고, 전화 통화 상으로는 '공증과 아포스티유까지 이백 팔십불에 해 드릴게요' 였다. 그 때는 순진하게, 그 돈이면 이 사람이 모오든 작업을 다 알아서 척척 해 주겠지! 라고 생각했다. 통화를 한 그 주 일요일에 그 사람을 만나기로 했다. 김씨라고 부르자. 미국에서 한인을 상대로 공증을 해 주는 김씨. 얼굴도 모르는 김씨에게 나는 한국의 법무사가 보낸 서류를 이메일로 보냈다. 그때부터 불안이 커졌다. 아, 얼굴도 모르는 사람한테, 이런 중요한 서류를 보내는 게 말이 되나? 여기엔 내 개인정보가 많이 들어 있는데 말야. 하지만 뭐, 이미 보내 버린 걸 취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의 사무실은 구글 지도에 나와있지 않았다. 젠장할. 하지만 그의 사무실에 도착하자 불안이 가라앉았다. 구글 지도에만 없을 뿐, 진짜 사무실이었고, 오랫동안 이런 일을 한 사람처럼 보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일흔이 넘으셨고, 이 지역에서 세금 보고일도 하고, 리얼터 (부동산 중개인) 일도 하고, 곁다리 같은 일로 이 공증 일도 하는 것이었다. 일처리 속도는 상당히 느렸다. 일 초에 클릭을 한 번 하는 것 처럼 들렸다. 속으로 묻고 또 물었지만 나는 그냥 우두커니 앉아서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두 시간이 서너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그의 비서처럼 서류의 오탈자를 보거나, 모양이 이상한걸 지적하고 있었다. 속으론 좀 그랬지만, 티내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그 날 그 일을 해치워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두 시간동안 이 일흔이 넘은 김씨는 머리를 굴린것 같았다. 통화상으로는 그가 아포스티유를 처리해 주기로 했는데, 나한테 그러더라. "이제 이렇게 공증해 드린 이 서류를 여기 국무부에 우편으로 보내면 되요." 그러면서 봉투를 주고 이런 저런 것들을 알려줬다. 이 서류에 해당하는 우표를 사라. 그리고 이 서류에 해당하는 아포스티유 값은 백이십불이다. 체크 있냐? 아, 있구나! 그럼 그걸 여기에 써서 같이 우편으로 부쳐라. 그럼 거기에서 도장같은걸 다 찍어서 너희 집으로 보내줄거다.

만약 내가 좀 더 영민하고, 그 자리에서 뭔가를 빨리 빨리 캐치하고 또순이었다면, "잠깐만요! 280불에 아포스티유 까지 다 해주시기로 한 거아니었어요? 이걸 제가 해야 하면 120불은 또 따로 제가 내야 하는거잖아요. 좀 이상한대요?" 라고 말했을까? 그럼 김씨는 내게 "나는 서비스를 말한거지, 아포스티유 비용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는대요?" 라고 받아치지 않았을까? 아무튼, 현실에서의 나는 그냥 일처리를 마치고 싶어서 그가 하라는 대로 했다.

어제 우체국에 갔고, 서류를 부쳤다. 아아아. 그런데 아뿔싸! 오늘 아침, 출근을 하는데, 바로 그 체크 (미국식 수표)가 떡, 하니 식탁 위에 있더라.

결국, 국무부에 전화를 했다. '그럼, 그 서류를 추적해서, 서류가 도착했다고 하면, 그로부터 24시간 뒤에 우리한테 전화하세요. 따로 체크를 부치지 마세요.' 그리고 나는 서류의 추적 번호로 추적했지만, '추적이 불가능한 번호입니다'라는 붉은 글씨만 나왔다. 다시 김씨에게 젼화했다. "허허. 그런일은 나는 없었는대요? 그럼, 그러지 말고, 그냥 수표를 한 장 부쳐요. (중략) 혹시 서류가 안 돌아오면 내가 다시 서류를 해 줄 수 있어요." 마지막 말에 안심이 되었다.

그냥 나는 나를 자책하지 않을거다. 나의 불안에 대해서도 그냥 넘어갈 거다. 일은 어떻게든 진행이 될것이다.

이 글을 카페에서 다 쓰고 집에 가려는데, 가방에 또 떡하니 'USPS 영수증'이 있었다. 그 영수증에 있는 트래킹 번호는 내가 알고있는 번호와 달랐다! 아, 글을 쓰니 또 뭔가 한 개가 해결되었다!

[이미지 출처: Photo by Markus Spisk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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