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생실습 이야기
들어가기 - 누군가의 답글에 대하여, 미국 교사의 언어 자질에 관하여
최근에 쓴 글에 대해 새벽녁에 누군가의 답글이 있었다. '아메리카 교육을 망칠려고 작정을 했군' 내 글에 대한 그의 소견이었다. 화가 나기도 했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것 같았다. 적어도 미국 교단에 서려면 미쿡인의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교사의 기본 자질에 대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2외국어로 영어를 쓰는 미국에 사는 사람은 교사가 되어선 안되는가? 나 역시 이 질문에 대해 많이 고민을 했다. 나의 당시 결론은 1.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면 문제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일단 도전해 보자. 2. 정규 교사가 되면 좋겠지만 안된다면 대체교사도 답이 될 수 있다. 3. 자격증은 못 써먹으면 억울하겠지만, 그래도 그걸 얻는 과정에서 배우는 바가 있겠지. 이런 자기 합리화같은 나만의 답을 가지고 공부를 시작했다. 이야기를 확장시킨다면 '문과 출신이 미국에 와서 자신의 문과적 성향을 버리고 싶지 않다면 교육 분야는 나쁘지 않다'이다. 실제로 미국에 와서 중학교 수학 교사 자리는 한인들이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미국인들은 '넌 아시안이니까 수학을 잘 할거야. 그렇지?'와 같은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 미신을 철떡같이 믿고있다.
온라인 수업 그리고 인턴쉽
만만하게 보았던 온라인 수업은 꽤나 많은 시간이 들었다. 그래도 되돌아 생각해 보면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다. 온라인으로나마 미국에서 배움의 길이 트였다는 건 무척 소중한 재산이다. 미국에 이민을 와서 무작정 '뭔가 자리를 잡겠지'라는 생각만큼 무모한 것도 없다. 나는 이 주립대학교 학생이 되기 전 테솔 자격증을 땄고, 또 남편의 권유로 부동산 수업을 듣기도 했다. 당시 나의 마인드셋은 '그래도 내가 원하는 것, 그래도 내 적성과 가까운 일을 찾아보자'였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그 다음에 할 일은 인턴쉽 학교에서 한 학기씩 총 2학기동안 인턴쉽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인턴쉽과 교생실습의 차이는 교생실습에서는 내가 더 많은 분량으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며, 인턴쉽은 그 전단계로 학교 분위기, 교실 환경에 익숙해 지는 일이었다. 다음 글은 2016년 12월 첫 주 토요일 중앙일보 문학 칼럼에 실린 내 글이다.
"브래들리의 웃음" 2016년 12월 10일 토요일자 달라스 중앙일보 조소현 문학 칼럼
12월이 시작되었고, 2016년이 끝나가려고 한다. 올 해를 되돌아 보면, 나 역시 다른 이민자처럼 늘 적응하고, 적응을 못하면 다시 적응을 하는 것을 배우면서 시간과 함께 변화해간다. 그 변화가 성숙함과 노련함이 되기를 바라며 나의 첫 인턴쉽 학기를 정리해 보겠다.
콜로라도의 십이월 바람은 나를 웅크리게 한다. 나는 웅크린 몸으로 발걸음을 종종거리며 인턴쉽 학교로 향했다. 오늘은 나의 인턴쉽 첫학기가 끝나는 날이다. 아무도 공식적으로 축하해 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스스로에게 잘했다, 이만큼 여기까지 잘 왔다. 라고 스스로 칭찬해 주고싶다. 도서관에 앉아 교수님의 숙제를 읽고, 해석하고, 리포트를 써 내는 일은 교실 현장에서 아이들과 부딪히며 교실 바닥에 앉기도 하고, 쭈그리기도 하고, 서기도 하고, 목소리를 크게 하며 “조용히 좀 하자!”라고 말하거나 “산수 문제에 집중하세요!”라고 말하는 일에 비해 상상 외로 고급스럽고 고요한 일이었다.
한 학기 동안 인턴쉽을 통해 얻은 결론은 내가 더욱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 미국에서 태어나 자라지 않은 아시안이 미국의 공립 초등학교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멘토 선생과 교실 학생들에게 말을 걸고, 내가 먼저 다가가서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거야? 나한테 보여줄수 있어?” 라고 묻는 등의 대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 소극적이고 조용히 있으면 오해받고 기억에서 사라지기 쉽상이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다양한 모양의 선입견을 내 스스로 벗기지 않으면 영원히 벗겨지지 않는다. 돌이켜 보건대, 나의 첫 태도는 말이 많지 않았고, 조용히 교실에서 관찰을 주로 했으며, 멘토 선생에게 말을 먼저 걸 여유도 없었다. 멘토 선생은 아이들을 훈계하고 학습 분위기를 조성하느라 모든 열과 성을 다 하고 있었기에, 그녀와 몇 마디 나누기 위해서 나는 늘 전체 수업이 끝날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내 모습에서 적극성을 발견한 멘토 선생님도 나의 질문에 질 높은 답을 주었다. 오 년을 이 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멘토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과연 오 년 후에 저 선생님처럼 학생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수업을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하며 그녀의 모습을 많이 따라 배우려고 했다.
인턴쉽을 통한 두 번째 결론은, 의외로 시간이 많은 것을 해결해 준다는 점이다. 나의 가장 큰 불안은 네이티브 언어가 아닌데, 내가 학생들의 말을 못알아 들으면 어쩌나? 였다. 그런데 의사소통은 책과책의 대화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대화이기에, 학생들을 파악하면서 대화가 수월해졌다. 시간이 쌓이면서 아이들에 대한 파악이 늘었고, 이 학생과 어떤 식으로 대화를 해야 하는지 조금씩 나 스스로 배워갈 수 있었다.
어제는 유난히도 눈이 소복히 쌓이고도 또 쌓였다. 영하 십오도 였지만, 마지막 인턴쉽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나느 경험을 쌓기 위해, 앞으로도 월요일에 이교실에 가서 자원봉사로써 보조교사를 하기로 했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는 우리반 학생 브래들리와 어머니가 함께 탔다. 브래들리는 여덟살 아이의 순수함을 두 눈에 가득 담고 있는 것 처럼 눈이 초롱초롱하고, 인턴쉽동안 나를 몇번이나 안아주었다. 브래들리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조금 인지 능력 속도가 늦었다. 버스안에서 브래들리에게 덧셈 질문을 하면서 집으로 왔다. 버스에서 먼저 내린 브래들리는 나에게 눈보다 환한 웃음을 건네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 이 아이의 웃음이 내 인턴쉽의 선물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