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미인 saga

부베의 연인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by 무체


튀니지의 작은 항구도시에서 태어나 세계적인 영화 아이콘으로 성장한 여인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1960년대 영화계를 장악했던 그녀는 단순한 미모를 넘어 깊이 있는 연기와 품격으로 전 세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60년대, 세계 영화계에는 세 명의 여신이 있었다. 미국의 MM(마릴린 먼로), 프랑스의 BB(브리지트 바르도), 그리고 이탈리아의 CC(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이 세 여배우는 각자의 나라를 대표하는 성적 매력의 상징이었지만, 클라우디아는 다른 두 여배우와는 확연히 달랐다.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는 단순히 섹시함만으로 승부하지 않았다. 압도적인 아름다움과 현숙함을 겸비한 그녀는 관능적인 이미지를 표현하면서도 결코 상의를 노출하거나 나체로 등장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신조를 이렇게 표현했다.

"저는 여배우가 되기 위해 스캔들과 고백이 필요하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저는 영화에서 저 자신이나 심지어 제 몸을 드러낸 적이 없습니다. 배우에게 신비주의는 매우 중요하니까요."


브리지트 바르도가 100명이 넘는 남자와 교제한 것으로 알려진 반면, 클라우디아는 비교적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그녀는 상업적인 스타보다 작품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원했고, 이러한 태도는 그녀를 단순한 성적 아이콘이 아닌 존경받는 예술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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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4월 15일,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튀니지의 라 굴레트에서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Claude Joséphine Rose Cardinale)가 태어났다. 프랑스인 아버지와 이탈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18세가 될 때까지 이탈리아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후에 이탈리아 영화계의 대표 아이콘이 되었다.

튀니지에서 그녀는 현명한 아내가 되는 것이 당연시되는 보수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그러나 어린 클라우디아는 전형적인 소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말괄량이였고 괄괄한 목소리에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갔다. 남자아이들과 주먹다짐을 하며 자랐고, 여자도 남자아이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린 시절 그녀의 꿈은 아프리카 대륙으로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나 탐험가였다. 그러나 운명은 그녀를 전혀 다른 길로 이끌었다.


클라우디아가 영화계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14세 때인 1952년, 프랑스 감독 르네 보티에가 다큐멘터리 영화에 출연할 아랍 소녀를 찾기 위해 그녀의 학교를 방문했다. 이슬람 부모들이 자녀들의 출연을 허락하지 않자, 감독은 아랍인과 비슷한 외모의 유럽 소녀를 찾게 되었고, 클라우디아를 발견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그녀는 단 몇 초 출연했지만, 그 짧은 순간에 관객과 심사위원들을 사로잡았다. 이집트 출신의 스타 오마 샤리프가 그녀를 알아보고 감독에게 영화 <고하>에 출연시키자고 제안했을 정도였다.

16세였던 1957년에는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지역 미인대회에서 그녀와 여동생은 무대 근처에서 복권을 팔고 있었는데, 심사위원 중 한 명이 갑자기 클라우디아를 대회 우승자로 발표했다. 그녀는 참가자도 아니었지만, 엉겁결에 무대 위로 끌려가 어깨에 띠를 두르고 수상을 하게 되었다.

미인대회 우승 상품으로 베니스 영화제를 방문할 기회를 얻었지만, 당시 그녀는 배우가 되고 싶지 않았다. 언어 문제도 있었고,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17세 소녀 클라우디아는 3개월 동안 "배우 놀이"를 해본 후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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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클라우디아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여행지에서 그녀를 따라온 10살 연상의 프랑스 남자에 의해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겁에 질린 그녀는 부모에게 말하지 못했고, 생계를 위해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때 영화 제작자 Franco Cristaldi가 그녀에게 7년 계약을 제안했다. 계약 조건은 머리카락을 자르지 말 것, 살찌지 말 것, 그리고 결혼하지 말 것이었다. 그녀는 계약에 서명했고, 좋은 역할들을 맡기 시작했다. 하지만 임신 7개월이 되어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그녀는 프랑코에게 상황을 털어놓았다. 놀랍게도 그는 그녀를 도왔다. 프랑코는 1958년 10월 그녀를 영국으로 보내 출산하게 했고, 그곳에서 아들 패트릭이 태어났다. 아이는 클라우디아의 어머니가 키웠고, 8살이 될 때까지 그녀의 동생으로 알려졌다.

14살 연상인 프랑코는 점차 클라우디아와 비공식적인 연애 관계로 발전했다. 그들은 비밀리에 결혼했고, 프랑코는 패트릭을 자신의 호적에 올렸다. 나중에 클라우디아의 아들 존재가 대중에게 알려졌을 때, 패트릭도 충격을 받았고 모자 관계는 순탄치 않았다.


임신 중에도 클라우디아는 세 편의 영화를 찍었다. 오마 샤리프와 함께한 <고하>와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와 주연한 <형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초기에는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허스키하고 프랑스 억양이 강하다는 이유로 더빙된 목소리로 출연했다. 이미 압도적인 아름다움으로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클라우디아는 영화 학교에 등록하여 연기 수업을 받으며 전문성을 키웠다. 그녀의 헌신은 점차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세계적으로 얼굴을 알리게 되면서 프랑스의 브리지트 바르도와 자주 비교되었다. "올리브 스킨을 가진 다크 버전의 브리지트 바르도"라고 묘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두 여배우는 관능적인 이미지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1971년 두 배우는 공동 주연한 영화를 찍은 후 절친이 되었고, 함께 동물 보호와 불우한 아이들을 돕는 사회활동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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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의 전성기는 1963년 <부베의 연인> 이후 시작되었다. 이 영화로 그녀는 이탈리아 최고의 여배우로 자리매김했고, 약 10년간 이탈리아에서 대체 불가능한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다. 같은 해 <핑크 판다>로 할리우드에도 진출했다. 공동 출연한 데이비드 니븐은 그녀를 "이탈리아의 스파게티 다음으로 탄생한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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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안정된 커리어를 가진 클라우디아는 젊은 감독 파스콸레 스퀴티에리와 사랑에 빠졌다. 그는 이미 아내와 세 아이가 있었다. 정직한 성격의 그녀는 남편 프랑코에게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했다. 격분한 프랑코는 자해까지 하며 클라우디아의 경력을 파괴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는 질투심에 불타 파스콸레의 영화 촬영을 방해했고, 결국 젊은 감독의 작품 제작이 금지되기에 이르렀다. 파스콸레는 자신의 불행을 클라우디아 탓으로 돌리기도 했지만, 두 사람은 헤어지지 않았다.

3년 후, 상황은 점차 나아졌다. 스퀴티에리는 좋은 영화를 찍게 되었고, 클라우디아는 그와의 사이에서 딸을 낳아 자신의 이름을 물려주었다. 흥미롭게도, 딸을 낳기 두 달 전에 그녀의 아들 패트릭이 딸을 낳아 클라우디아는 할머니가 되었다.

클라우디아와 파스콸레는 28년간 사실혼 관계로 함께 살았다. 그녀는 그를 "유일하고 위대한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2013년, 파스콸레는 29살 연하의 배우와 결혼했고 2017년에 세상을 떠났다.


15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한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는 78세가 되어도 연기를 계속했다. 그녀는 나이 듦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성형수술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시간을 멈추게 할 수는 없어요, " 그녀는 말했다. "저는 성형을 하나도 하지 않았으며 얼굴 주름을 펼 생각도 한 적이 없어요.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은 결코 항복하지 않고 매우 활동적으로 남아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영화배우로 독보적인 존경을 받아온 그녀는 개인적인 삶이 아닌 작품으로만 판단받기를 원했다. 현재 87세인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는 여전히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때때로 사회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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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는 단순한 미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아름다움과 지성, 품격을 겸비한 진정한 배우였다. 어려운 시기에도 결코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원칙을 지켜온 그녀는, 스타덤의 화려함 속에서도 결코 자신을 잃지 않았다.

그녀의 삶은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았다. 미인대회에 참가하지 않고 우승한 소녀, 임신의 비밀을 안고 스타가 된 여성,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여배우, 그리고 나이의 흔적을 당당히 받아들인 노배우까지.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는 시대를 초월한 우아함으로 영화 역사에 자신만의 흔적을 남겼다.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60년대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그녀가 외적 아름다움을 넘어 내면의 강인함과 진정성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의 유산은 단순한 미의 기준을 넘어, 진정한 예술가의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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