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크리스마스마다 설레는 이유
크리스마스 시즌은 아니지만
보육원에서 보낸 크리스마스를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보육원에서 매년 보낸 크리스마스의 경험 덕분에 나는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이 시기가 오면 어김없이 매년 설렌다.
11월부터는 캐럴을 듣고 크리스마스트리도 장식한다. 성탄절의 분위기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커서 느낀 것이지만 어렸을 때의 경험은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기분을 아직까지도 고스란히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다. 어렸을 때 보육원에서 경험한 크리스마스가 얼마나 특별한 일들이었는지 말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보육원의 크리스마스라고 했을 때
어떤 것을 떠올렸는가?
각자의 경험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소소한 파티 같은 것을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것이라 예상해 본다.
내가 있던 보육원은 근처에 미군 부대가 상주하고 있는 지역이었다. 때문에 미군 부대에서 자원봉사로 보육원에 방문하여 아이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가는 경우가 많다. (주로 미군이 온다.)
반대로 보육원에 아이들이 미군부대에 초정을 받아 군부대 안으로 들어가서 미군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참고로 미군 부대 역시 군부대이기 때문에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이상 출입할 수 없다. 보육원의 경우 초청을 받아서 들어가기 때문에 가능하다.
매년 여러 행사들이 있지만 미국 본토에서 그렇듯 크리스마스는 미군부대에서 준비를 많이 해서 아이들을 초정하는 행사 중 하나였다.
물론 준비를 많이 하는 만큼 우리들도 기대하는 행사 중 하니이기도 했다.
그 이유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을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12월 초쯤 되면 보육원에 생활지도 선생님들이 아이들 명단을 만들어서 한 명씩 가지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물어본다.
이 시기는 1년 중 유일하게 우리가 가지고 싶은 선물을 받을 수 있는 날이기 때문에 당시 꽤나 과한 선물들을 적었던 기억이 있다.
예를 들어서 X박스, 닌텐도, 플레이스테이션, MP3 등등 당시에 고가로 생각되던 전자 기기들을 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우리가 원하는 선물 리스트는 미군 부대에 군인들에게 전달되고, 군인들은 한 명씩 아이들의 선물을 맡아서 준비했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미군 부대 안에서 미군 봉사자 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미군 봉사자분들 한 분당 아동이 한 명씩 배정된다.
우리들은 우리를 담당하게 된 미군 봉사자 분들과 지정된 군부대 여러 장소들을 돌아다니며 놀고 여러 경험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미군 부대 안은 꽤 크고
많은 것들이 있다.
꽤 큰 부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안에 꽤 많은 것들이 있다.
볼링장, 휴게 공간, 수영장, 체육관에는 테스장과 헬스 공간, 커다란 농구장도 있어서 놀거리가 정말 많았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맛있는 먹거리들이었다.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전 세계에 다양한 음식들과 간식들을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지만 당시는 1990년~2000년대 초였기 때문에 미국의 음식과 간식거리는 흔치 않았다.
미국 본토의 햄버거와 피자부터 시작해서 달달하고 짭짤한 간식들까지 마음껏 맛볼 수 있다. 아직까지도 생각나서 종종 사 먹는 간식들도 있다.
추후에 핼러윈데이에 대한 이야기나 바비큐파티에 대한 글을 적을 때도 이야기하겠지만 한번 미군부대에 들어갔다 나오면 진짜 과장이 아니라 100리터 쓰레기봉투만 한 크기에 봉지에 초콜릿이나 간식들을 가득 담아서 올 수 있었다. 그만한 양의 간식을 1인당 1 봉지씩 가지고 올 수 있다.
아무튼 그렇게 놀고 식사까지 마치고 나면 저녁쯤이 되는데 커다란 휴게 공간으로 모두 모인다.
휴게 공간은 해리포터의 그린핀도르 기숙사처럼 따뜻한 느낌이며 크기만 엄청나게 크다고 생각하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공간에 가운데에는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장식되어있으며 누군가를 위한 의자 2개가 준비되어 있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고 있으면 어디선가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린다.
허. 허. 허
메리-크리스마스-!
그렇다. 산타 할아버지의 등장이다.
물론 어렸을 때도 산타를 믿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를 무르익게 만드는 주인공의 등장인 것이다. 이때부터는 모두 눈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선물 타임이기 때문이다.
산타 할아버지는 등장해서 트리 옆에 의자 한쪽에 앉는다. 잠시 뒤 보육 교사 선생님 한 분이 나와서 아이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면 선물 전달식을 가지게 된다.
미군 봉사자분들은 담당한 아이가 호명되면 같이 가운데로 나와서 직접 아이를 위해 준비한 선물을 전달한다. 그렇게 친구들이 한 명씩 호명되어 나가서 선물을 받고 들어올 때마다 내 설렘은 더 커졌다.
드디어 내 차례이다.
보육원에서 첫 크리스마스에 나를 담당하셨던 분은 나이가 꽤 있으신 분이셨는데 당시에 어떤 선물을 적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받았던 선물은 아직까지도 기억난다.
내 생애 첫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당시에 내가 받았던 선물은 필름 카메라였다.
필름 카메라와 함께 3개의 필름을 받았다. 당시 카메라를 선물 받았던 사람은 한 명도 없었으며 이후에도 없었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다.
당시 내가 원했던 선물은 아니었지만 엄청 만족스러웠고 친구들에게 자랑했던 기억도 있다. 나를 담당하셨던 봉사자분은 바디랭귀지와 영어로 나에게 필름 카메라 사용법을 알려주셨고, 나는 눈치껏 이해했다.
그렇게 모든 아이들이 선물을 받고 담당하는 봉사자분들과 잠시 시간을 가지게 된다.
나는 그 시간 동안 첫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신 아저씨와 선물 받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고 당시에 선생님께 부탁하여 인화까지 했던 기억이 있다.
다만 이후 보육원에서 나올 때 어디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많이 아쉬웠다.
이후에도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미군부대에 초대를 받아서 방문했으며 많은 봉사자분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사실 당시에는 어리기도 했고 그렇게 아무런 대가 없는 봉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성인이 된 이후 나는 보육원에서 보낸 크리스마스를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한다. 어린 시절을 보육원에서 보내지 않았다면 해볼 수 없는 특별한 경험과 어린 시절에 소중한 감성을 만들어주었으니 말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보육원에서는 미국 영화에서나 볼법한 크리스마스를 매년 보내왔다. 매년 캐럴을 듣고 선물을 받으며 멋진 음식들을 먹었다.
올해에도 크리스마스가 온다면 멋진 추억들을 회상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보내게 되지 되지 않을까?
이번에는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