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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민 Jan 19. 2018

[D+3 세계일주 - 인도, 마날리]

인도, 두 번째 도시 '마날리'

[D+3 세계일酒]

6인 도미토리는 불편했다. 뭔가 사부작 거리면서 짐을 자주 정리하는 나는 사람들의 잠에서 깰까 봐 눈치를 봤다. 

긴장이 다 풀리지 않아 새벽에 일찍 일어났다. 할 일이 없어서 이때부터 본의 아니게 일기를 쓰게 되었다. 

빠하르 간즈 새벽은 참 고요했다. 하늘에서는 비가 내렸고이 더러운 거리는 누가 청소하나 했더니 비가 깨끗하게 거리를 청소해줬다. 

인도의 스위스라는 북부 지역 마날리로 출발하기 위해 다시 배낭을 꾸렸다. 분명히 짐은 늘어나지 않았는데 가방이 더 빵빵해진 기분이다. 뭔가 분실한 것 같고 가방을 싸면 또 넣을게 생기고, 빼면 또 넣을게 생기고. 군대에서 군장 훈련하는는것 같았다. 

도미토리에서 프랑스 청년이 인도를 3달 여행하고 집으로 간다고 했다. 나에게 사기꾼들만 조심하라고 했다. 뭐든 사람들 이인도에 대해 물으면 나에게 사기꾼들을 조심하라고 한다. 프랑스 청년은 일본도 홋카이도부터 오키나와까지 여행을 했다고 한다. 한국에 오고 싶은데 일본보다 비싸고 불친절하다고 다른 여행자들에게 얘기 들어서 별로 안 가고 싶다고 한다. 중국은 자주 간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일본 사이 그 어딘가에 있는 것인가. 

조용했던 빠하르간지는 다시 중학교 때 체육선생님처럼 미처 날뛰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 적응이 된 것인지. 릭샤 경적소리, 개소 똥은 별로 신경도 안 쓰고 라씨 한 잔을 마실수 있게 되었다. 

와우 카페에서 동행자의 마날리의 버스 티켓의 문제가 생겨 좀 대기하면서 식사를 했다. 아직까지 인도 음식은 너무 입에 잘 맞는다. 아임 슈퍼 카레 맨. 

마날리, 레에서 체류할 경비를 환전하고 있었는데 누가 밖에서 큰소리로 싸우고 있었다. 환전소 아저씨는 소리를 지르는 남자가 조금 머리가 이상해서 누군가 박수를 치는 걸 들으며 가서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친다고 했다. 누군가 박수를 쳐서 그 광인을 자극한 것이다. 근데 그 광인은 하루 종일 빠하르간지를 보수 없이 청소하는 굿맨이라고 했다. 환전소 주인은 그 광인을 환전소로 불렀고 진정시켰다. 웃으면서 나에게 박수를 쳐보라고 했고 난 고개를 저으며 나왔다. 모든 여행기를 적을 수 없다. 하지만 환전소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있다. 

하늘은 꾸물거렸지만 설마 비가 또 오겠어라고 생각하며 오토릭샤를 타고 붉은 성(레드포트)으로 출발! 도착하기 전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고 일단 나무 밑으로 피했다. 우산을 사려면 건너편 시장으로 엄청 난소 나기를 맞으며 가야 했고, 우산을 얻는 대신 난 가방 속 카메라 및 전자기기를 다 버려야 할 것 같았다. 언제 그칠지 모르는 소나기를 앞에 두고 결정해야 했다. 그래! 비와도 상관없는 인도 국립박물관으로 가자!

비 오는 날 릭샤는 아주 기세 당당하다. 흥정의 여지가 일단 없다. 비 맞은 생쥐가 된 나는 흥정을 처음으로 포기했다. 

"두유 노우 인도 내셔널 뮤지움?" 

"서, 오브콜르 노 프라블럼"

역시 인도에서 노 프라블럼은 프라블럼이다. 

도착했다고 돈을 지불하려는 순간 혹시 몰라 GPS를 켜보니 '인도 사이언스 뮤지엄'이었다. 

모르면서 아무 곳이나 내려주려고 했다. 난 지도를 보여주며 인도 내셔널 뮤지엄으로 가자고 했고 귀찮은 듯한 표정으로 다시 방향을 이동했다. 

노프 러블 럼은 이 자식아 프러블럼이다. 

인도 국립 박물관은 볼 것이 참 많았다. 눈과 머리가 너무 즐거웠다. 온몸은 젖었고 차가운 에어컨 바람에 머리가 조금 아프고 추웠지만 학구의 열정으로 모두 불살라버렸다. 다행히 대기업의 후원으로 최근에 한국 오디오 가이드가 생겼고, 박물관에서는 무료로 대여해줬다. 오예. 

5시에 마날리행 버스를 탑승해야 하는데 동행자 핸드폰의 문제가 생겨 조금 빠르게 박물관을 나와서 아쉬웠다. 모든 일은 장단점이 있는 것이다. 

비는 멈췄고 거리는 다시 뜨거워졌다. 빠하르간지에 도착하 여과 일상 점 거리를 지나며 인도 블랙체리를 한 봉지 샀다. 처음 먹어봤는데 달지 않고 드라이했으며 타닌이 많이 느껴졌다. 동행자들은 한 입 먹고 버리고 난 혼자 이 맛은 뭘까하고 계속 먹었다. 

생각보다 과일의 양이 많았다. 지나가던 인도 사람도 하나 주고, 핸드폰 가게 직원도 하나 주고, 나에게 마약을 팔려고 하던 사람도 하나 줬다. 마약 판매상은 은근히 말을 계속 걸며 자연스럽게 내 과일봉지에 손을 넣었고 난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구걸을 하려는 아이들이 나에게 와서 그들에게 과일을 줬다. 과일 대신 돈을 달라고 하여 난 나도 돈이 없어 과일을 먹는다는 제스처를 취하자 날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과일을 받아먹다 달지 않은지 퉤 뱉었다. 그리고 다시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표정으로 다시 돈을 요구했고, 난 더 불쌍한 표정으로 과일을 먹자 뒤돌아서 어딘가로 뛰어갔다.

아직 과일이 조금 남았다. 인도 아이 한 명에게 과일을 주자, 친구 둘을 더 데리고 왔다. 한 개씩 주니깐 더 달라고 해서 두 개씩 줬다. 더 달라고 하다가 그냥 내 과일 봉지를 가져가 버렸다. 인도와 서처음으로 강도를 당했다. 눈뜨고 과일을 뺏겼다. 

생각해보니 레드와인으로 과일을 만들면 포도가 아니라 이런 맛이 아닐까 생각했다. 과일을 많이 사 먹고 싶지만 배부르면 억지로 않기로 했다. 난 시간이 많다. 

길거리 음식의 유혹을 계속 견디고 있다. 머리 속의 악마인 지천사인지 모르지만 나에게 반복적으로 얘기한다. "지금 안 먹으면 못 먹어, 먹는 게 남는 거야, 배불러도 먹을 수 있잖아" 

최고로 미음이 가장 약해졌을 때 화로에 숯으로 구운 옥수수가 눈으로 들어왔다. 왠지 건강해 보였다. 

가격은 20루피 사백 원, 와이낫, 바로 구매. 

적당힌 온도의 숯으로 표면을 거칠게 익히고 알갱이 속은 반 익힘 정도로 식감도 즐겁고 맛도 좋다. 그 옥수수 겉에 레몬으로 소금을 찍어 벅벅 정성스럽게 발라 옥수수 껍질로 감싸서 건네준다. 그 모습은 마치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나에게 다가왔다. 

한 입 먹는데 "와 이거 진짜 맛있네" 오랜만에 자랑하고 싶은 맛이었다. 그 뒤로 눈에 보이 면사 먹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먹고 있고 먹을 것이다. 아임 슈퍼 옥수수 킬러. 

코리안타임이 있듯 인도 타임도 있다. 근데 인도 타임이 더 나쁜 새끼는 분명하다. 마날리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5시에 택시 픽업이 오기로 했으나, 5시 40분 픽업. 버스는 6시 출발이었는데 7시 30분에 출발했다. 

마날리 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고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오로지 내 주머니에 땀에 축축하게 젖어있는 손으로 마구 휘갈겨쓴 버스 티켓이었다. 옥수수 하나를 더 사 먹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혹시 먼저 버스가 떠난 게 아닐까 걱정스라운 마음이었으나 옥수수는 진짜 맛있었다. 

로컬버스보다 조금 좋은 버스가 더 먼발치에 보이고 사람들이 부랴부랴 탑승하고 있었다. 이때 촉이 제대로 왔다. 사람은 영적인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거 내 마날리 가는 버스 맞지 개자식들아" 크록스를 질질 끌고 가서 검표원에게 버스 티켓을 보여줬다. 그러니깐 나한테 어디에 있었냐고 짜증을 내며 5분 뒤 출발한다고 빨리 짐 가져오라고 했다. 하 욕을 안 할 수가 없다. 

버스를 탑승했다. 버스는 생각보다 편해 보였다. 난 이제 이 버스를 타고 18시간 동안 북인도로 올라간다 생각하니 즐겁지 않았다. 중국 여행에서 6시간 동안 버스 안에 있던 시간이 평생 살아온 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졌었다. 

검표원은 나에게 자리를 안내했고, 짐을 다 올리고 위험한 낭떠러지가 많다는 얘기를 듣고 목숨만은 살고자 안전벨트를 매고 좌석 시트를 조절하고 있었는데 자리를 잘못 알려줬다고 일어나라고 했다. 아주 밝게 웃으며 "노프라블람"이라고 얘기했다. 노프라블람 이 자식아

좌석이 여유가 많았는데 아시아 여자 옆에 자리로 안내했다. 인도 남자 강한 체취의 참 교육을 받는 것보다는 상황이 좋지만 계속해서 영어로 일 얘기를 하는 것 같고 좀 까탈스러워 보이는 모습에 얌전히 앉아 들고 와서 읽지도 않는 책을 한 권 꺼내서 책을 한 장 넘기자 버스는 출발했다. 18시간 동안 간다. 18 내 추간판

버스에서 만난 그녀는 내가 가려는 목적지인 레 leh에서 태어나 지금은 델리에서 공간 인테리어 및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레로 가려고 마날리를 간다고 하자 그녀는 활짝 웃었다. 

처음 본 인상과 참 많이 달랐다. 

통성명을 하고 나이를 물었는데 자기가 몇 살로 보이냐고 해서 세상의 모든 여자를 기분을 좋게 할 수 있는 말 어려 보인다고 했다. 난 넌 어려 보이고 29살 정도 되는 것 같다고 하자. 처음 본 인상응 다시 나에게 보여줬다. 25살이라고 했다. 이런 젠장. 

심심한 버스 안에서 그녀와 참 많은 대화를 나눴고 4개 국어가 가능한 그녀는 나에게 영어로 힌디어를 알려줬다. 영어, 티뱃어도 알려줬다. 난 아직도 그녀를 티쳐라고 부른다. 

적당히 한국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아서 얘기를 하기 좋았다. 그녀는 여행 필수 힌디어와 힌디어, 티뱃어 욕도 알려줬다. 나도 그녀에게 한국어 욕을 알려줬다. 핸드폰 메모장에 각 나라의 마더 퍼커를 적으며 조용한 버스에서 킥킥거렸다. 

그녀는 한국 영화 드라마를 보며 궁금했었다며 왜 한국 여자는 다 남자를 "오빠"라고 부르냐고 했다. 

오빠 뜻이 뭐냐고 했다. 그래서 난 오빠는 친오빠도 오빠, 동네 오빠도 오빠, 학교 오빠도 오빠, 남자 친구도 오빠, 남편도 오빠라고 알려주니 참 난감한 표정을 졌구나도 참 난감했다. 내가 영어만 더 잘했으면 네이버 오빠랑 맛집에 대해 설명해줬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내가 알려준 한국어는 치맥, 냉면, 오빠, 다양한 욕들 그리고 기모찌에 대해 알려줬다. 어쩌다가 일본과 한국 문화 얘기를 하다가 이렇게 되어버렸다. 난 그녀에게 한국 남자랑 얘기하다가 아유 기모찌 했을 때 당황하면 포르노 마니아라고 농담 삼아 얘기했고 그녀는 나중에 한국 남자를 만나면 시도해본다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잠이 들었고 난 계속 협곡을 지나는 버스 안에 있었다. 


*술 마시고 노래하던 외국 친구 들도다 들어가서 자고 잠이 안와 바시싯 숙소 테라스에서 비 오는 마날리를 바라보며 여행기를 정리하는데, 바람 때문에 이따금 얼굴로 스치는 빗방울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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